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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칭찬하고 싶은 일... 90대 아버지를 외롭지 않게 한 것

가족 사랑으로 버틴 한 해... 끈끈한 유대가 행복을 키운다

등록 2025.12.31 10:10수정 2025.12.3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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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병원을 다녀오면 손부터 씻어요."

29일 올해 마지막으로 이비인후과를 모시고 다녀와 한숨 돌리는데 아버지가 화장실을 나오며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손을 씻으라는 것은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하는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노환의 아버지(96)를 여러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있다. 내 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벌써 몇 년째다. 항상 긴장하지만 올해도 아버지 건강이 그만하시니 다행이다. 아버지가 우리 곁에 꿋꿋하게 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따로 없다.

간밤에 꿈속에서 아버지가 곤히 주무시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꿈에서 깨어나 불이 켜진 아버지 방을 들어가 동태를 살폈다. 숨소리는 희미하지만 오르내리는 가슴과 배를 보며 안도했다. 매일 나의 일과는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아버지가 겨울 새 옷을 입고 웃고 있다.
아버지가 겨울 새 옷을 입고 웃고 있다. 이혁진

건강한 아버지가 우리 집 행복

아버지는 고령으로 노화와 함께 여러 '퇴행성 변화'들이 있지만 스스로 잘 관리하고 있다. 자신의 몸과 건강을 챙겨 죽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고 늘 강조하신다. 이 말의 무게를 잘 새기고 있지만 나는 매사 아버지 걱정이다.

아버지는 경로당을 오가며 하루 3천보를 걷는다. 걷기만 잘해도 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다. 남들은 내가 아버지를 모시며 힘들 거라고 말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하루 5번씩 복용하는 약을 정확히 지키고 식사도 그런대로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령이기에 혼자 생활하기는 무리다. 우리 부부의 손길이 필요하다. 평소 가족 외에는 간병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병원 가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어딘가 불편하고 아프다고 말하면 일단 안심이다. 삶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이다.

 아버지가 달력의 메모를 수첩에 필사하고 있다.
아버지가 달력의 메모를 수첩에 필사하고 있다. 이혁진

아버지는 보청기를 끼어도 거의 안 들리고 눈은 거의 실명 수준이지만 부자지간의 소통에는 막힘이 없다. 우리는 대화 중 손짓과 필담 등 '비언어적 수단'을 반 이상 동원한다. 아버지 인지력과 판단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기억력은 나보다 한 수 위다.


그러나 건망증은 자주 있다. 아버지 연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실수를 탓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버지가 전깃불을 끄지 않거나 수돗물을 완전히 끄지 않으면 내가 대신 끈다. 결코 건망증이 심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70대인 나도 깜빡할 때가 많다.

인격이 황폐화되고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치매 어르신에 비하면 아버지는 매우 건강한 편이다. 아버지는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늘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고 덕담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께 신중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올해 잘했다고 내가 칭찬하는 것

아버지께 가끔 가족을 위한 '기도와 묵상'을 요청한다. 그 이유는 가족 구성원이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걸 상기하고 이를 통해 아버지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기도는 자존감을 높이고 외로움도 없애준다.

올해 내가 잘한 것이라면 경로당에 무사히(?) 다녀오는 아버지를 외롭지 않게 따뜻하게 맞는 일이다. 경로당에서 점심을 드시고 잠깐 쉬다가 매일 1시 40분 정도면 귀가하신다. 현관에 들어서는 아버지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등을 두드리면 하루가 행복하다.

 아버지가 경로당을 가시고 있다.
아버지가 경로당을 가시고 있다. 이혁진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기쁘다. 아내의 운동은 아버지와 나 때문에 받는 극도의 스프레스를 푸는 시간이다. 나도 곁에서 응원하고 있다. 아내 덕분에 우리 집은 웃을 일이 많고 정서적으로 편하다.

몇 년째 투병하는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하는 가족들도 '행복 서포터스'다. 결국 올 한 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서로 건강을 기원하며 위로하며 산 것이 행복이었다. 바깥에서 일을 하다가도 서둘러 귀가하고 싶은 마음이 올해는 유달리 많았다.

우리 집 세 식구는 올해 하루하루를 희망과 기대 속에 살았다. 끈끈한 유대가 행복한 가정의 비결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행복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면 <오마이뉴스>에 소소한 일상을 전하는 지금 이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욕심을 버리고 슬픈 일에서도 행복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자신의 시련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변을 보면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내년엔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버지 말마따나 외출하고 돌아와 손부터 깨끗이 씻어 건강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더도 말고 올해처럼 살면 좋겠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일 테니까.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노환 #고령 #아버지 #행복서포터즈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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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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