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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

[섬을 지키는 문장]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이야기

등록 2025.12.30 10:07수정 2025.12.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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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신공항 건설 논의 속에서 섬의 역사와 생태,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지워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연재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연구자가 함께 가덕도를 다녀온 후 기획되었습니다. 매회 필진이 릴레이 형식으로 원고를 이어받아, 섬의 다양한 풍경과 장소성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가 성장 중심의 논리에 가려진 가치들을 되묻는 연대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기자말]
 국수봉에서 내려오는 길
국수봉에서 내려오는 길 이희우

가덕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윤은성 시인 덕분이었다. 그가 SNS에 올린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 투쟁 관련 게시물을 봤던 것이다. 그러던 지난 8월, 작가들과 함께 가덕도 답사를 간다는 사회학 연구자 조민서의 연락을 받고 즉흥적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가덕도에 도착해서는 신공항 건설 반대 운동에 투신하고 계신 김현욱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졸속으로 추진되는 신공항 건설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태적·환경적으로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는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설명해 주었다. 그 후 여럿이 함께 국수봉에 올라 동백나무를 비롯한 식물을 만지고 철새를 비롯한 동물들의 소리를 들었다. 하산해서 저녁을 먹으면서는 서울과 부산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러 작가와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보는 가덕도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그것을 다시 말로 나누며 느낀 연결의 감각에 벅찬 감동까지 느꼈다.


지금껏 생태나 환경에 대해 갖고 있던 추상적인 지향이 훨씬 또렷해지는 듯했다. 공항이 들어선다면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많은 것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질 터였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면, 국수봉을 비롯해 몇 개의 산을 허물어 그 흙을 활주로를 짓는 데 쓴다고 한다. 그 엄청난 양의 흙으로 가덕도 앞바다를 메운다고.

가덕도에서 느낀 감동은 여전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가덕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공항 건설이 얼마나 많은 폐해와 위험을 낳는지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김형로 작가의 글을 참고하면 좋다). 원래 이 지면에서는 가덕도의 한 장소를 이야기하기로 되어 있으나,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덕도 신공항을 기대하는 아버지의 마음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 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지금 한국에서 환경운동의 쟁점이 되는 여러 장소 중 가덕도가 부산이라 더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가덕도에서 일박이일 일정을 함께한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 본가에 들렀다. 오랜만에 부산에 간 김에 부모님을 뵈려 한 것이다. 아버지가 어쩐 일로 내려왔느냐 물으시기에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작가, 활동가와 가덕도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감지한 반응은 난감함이었다. "환경도 중요하지만…"으로 시작되어 이어지는 말에서 나는 아버지가 가덕도 신공항에 정말이지 큰 기대를 걸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을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생태나 환경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상'이었고, 줄어드는 부산의 일자리나 인구는 눈앞의 '현실'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부산에서 살아오셨다. 부산은 여전히 대도시지만, 아버지는 오랫동안 부산이 쇠퇴하고 있다고 느껴오신 듯하다. 나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산 지 이미 십 년이 넘었다. 내게도 나름의 애향심이 있지만 스스로 부산 사람이라고 하긴 머쓱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느껴온 쇠퇴의 기운, '젊은 사람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나 허전함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고향이자 터전인 부산이 부흥했으면 하는 마음을 쉽게 재단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지역발전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건너왔을 뿐인데,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아 황망했다. 공항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황망함을 더 키웠다.


아버지는 고향이자 터전인 부산이 부흥하기를 바라며, 그 관련 사업에 관심을, 애착을, 재산의 일부를 투자한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이 크게 부흥하는 미래를 담은 장밋빛 그림에 필요한 퍼즐 한 조각이다. 그런 애착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이렇게 묻게 됐다. 어째서 경제발전의 약속이 생태적 가치보다 훨씬 굳건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것으로 여겨질까. 어째서 고향에 대한 사랑이 곧 고향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고 마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환경운동의 쟁점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생태나 환경이라는 가치가 지역발전 혹은 지역 경제라는 명분과 충돌하는 구도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가덕도에서 '환경보호'라는 보편적 가치와 '지역발전'이라는 지역적 가치가 충돌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공항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라는 주민들도 많다. 이유는 다양하다. 터전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예상되는 공해 때문에, 생명과 환경에 대한 염려 때문에. 나는 가덕도에서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거나 적어도 건설을 원하지 않는 부산의 작가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민들의 의견을 결집하고 재현하는 이야기, 이론, 정치적 세력은 거의 없어 보였다.

반대로 신공항 건설을 포괄하는 발전 서사는 주민들의 의견을 강하게 결집하고, 그만큼 주민들을 잘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서사 역시 빈틈이 많고 불투명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애착, 희망이 적극적으로 빈틈을 채워 주고 있다.

지금 경제성장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세계에 대한 이해를 조직하는 유일한 이념이자 서사처럼 보인다. 계속 발전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고 끝내 소멸될 것이다. 이 단순하고 직선적인 발전 서사는 환경, 생물다양성, 지속성, 돌봄 같은 다른 생태적·사회적 가치들을 무시한 채 오직 한 방향의 변화만이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런 지배적 틀 속에서 고향에 대한 사랑은 고향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곧장 치환되어 버리고 만다. 그에 반대하거나 대립하는 이야기들은 흩어져 있고 그만큼 약하다. 약하기 때문에 종종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 역시 '환경'이 중요하긴 해도 당장 지역의 문제와는 동떨어진 가치라고 보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상에 함께 거주하는 생명들, 이를테면 끝도 없이 펼쳐진 동백나무들, 매해 가덕도에 돌아오는 철새들이 정말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일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이익이라는 지상명령에 대항할 만한 어떤 가치도 부재한다는 푸념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가치나 이념이 정말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흩어져 있는 것이다. 아직 없는 것은 그런 가치와 이념들을 엮고 꿰어 커다란 그림으로 모아낼 이야기다.

가령 나는 어떻게 아버지에게 가덕도에 있는 한 그루의 동백나무부터 미래 세대의 거주가능성에 이르는 거대한 차원의 문제까지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당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향이자 터전에 대한 애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을 사랑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고, 그곳을 살만한 공간으로 가꾸어가는 다른 길도 있다고 설득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것이 가덕도에 다녀오고 나서 내가 부딪힌 문제였다.

나는 아직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고 여전히 설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단지 도덕적 당위를 내세워 비난하는 것으로는 타인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이야기니까. 지배적인 서사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필자 소개] 이희우: 202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이다.
#가덕도 #섬을지키는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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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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