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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팡' 고객 뺨 때린 꼴인, 쿠팡의 괘씸한 보상안

[주장] 한국인들 감정 잘못 건드린 쿠팡... 쿠팡의 기업윤리와 책임회피 파헤쳐 엄벌해야

등록 2025.12.30 17:22수정 2025.12.3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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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모습.
지난 29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모습. 연합뉴스

루팡(Lupin)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밈(meme)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월급 루팡'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의 책무는 다하지 않은 채 잇속만 챙기는 무임승차자를 일컫는 의미로 통용된다. 맡은 일은 제대로 안 하는 주제에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괴도 아르센 루팡같은 도둑놈 같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아르센 루팡(또는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아르센 루팡 Arsène Lupin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대하는 쿠팡의 대응을 지켜보며 나는 이 '루팡'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키고도 진정성 있는 사죄나 책임은 없었고, 대신 발뺌하고 미국 정치권에 로비해서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얄팍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것으로도 안 되니 보상으로 포장한 기만적인 상술로 고객의 지갑을 다시 노리는 행태를 보면, 그나마 신사의 모습을 보였던 괴도 아르센 루팡보다 더 뻔뻔한 쿠팡의 루팡짓은 도를 넘었다.

사태가 커지자 쿠팡은 최근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자체 조사 결과와 보상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어제(29일) 공시했다. 쿠팡은 보고서에서 "3300만개 계정에 접근이 있었으나, 범인이 실제로 저장한 데이터는 약 3000건에 불과하다"고 명시했다. "회수된 기기 분석 결과, 유출된 데이터가 제3자에게 공유되거나 전송된 증거가 없다"며 제3자 유출도 없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공시에는 한국 민관합동조사단과 규제 당국이 이러한 수치에 대해 '쿠팡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쿠팡이 '셀프 조사'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하며 수천만 명의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와중에, 가해 당사자인 기업이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피해가 경미하다고 축소 발표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즉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부 합동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쿠팡이 사고 범위를 축소 발표한 것은 향후 싸움의 장기화에 대비한 전략이다. 오늘(30일) 오전 '쿠팡 사태 범정부 TF' 팀장인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범위가 3300만 건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게 과연 보상인가

게다가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 고객 3370만명에게 1인당 5만 원, 총 1조6850억 원 규모의 바우처를 지급한다는 보상안은 쿠팡 입장에서는 대규모 자금 투입이겠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조삼모사식 기만에 불과하다. 쿠팡이 지급하겠다는 5만 원 바우처 중 실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로켓배송을 포함한 일반 쇼핑에 쓸 수 있는 금액은 고작 5천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만 원은 이용자가 현저히 적은 쿠팡트래블(2만 원)과 쿠팡뷰티(2만 원) 쿠폰으로 채워졌다. 나머지 5천 원 바우처는 쿠팡이츠에서 쓰도록 했다. 심지어 이 쿠폰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 형식이 대부분이다. 결국 피해를 보상받고 싶으면, 우리 플랫폼에서 여행 상품과 화장품을 고객들이 돈을 보태서 사라는 얘기다. 필자는 쿠팡트래블과 쿠팡뷰티는 이용해본 적도 없다. 보상금을 쓰기 위해 이용하라는 얘기다. 이게 과연 보상인가?


이는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유출 사고라는 위기마저 판촉 기회로 활용하려는 쿠팡의 저열한 마케팅일 뿐이다. 한국 소비자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납작 엎드려 사과를 해야 할 상황에서 계산기를 들고 나와 얄팍한 상술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의 주장하는 '미국 기업' 쿠팡이 한국인들의 감정을 잘못 건드렸다.

더구나 쿠팡의 이런 기만적인 보상안은 분노해서 탈팡(쿠팡 탈퇴)한 고객들에게 뺨을 때리는 꼴이다. 탈팡고객들이 보상받으려면 탈퇴한 쿠팡에 다시 가입해야만 한다. 이런 괘씸한 보상을 근래에 들어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5만 원이라는 허울 좋은 숫자로 탈퇴한 고객마저 다시 자신들이 쳐 놓은 가두리 양식장으로 불러들이려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쿠팡의 기업 윤리는 바닥에 있나 싶을 정도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국정감사장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으로 미국 정가에 로비 자금을 뿌리고 '미국 기업 탄압'한다는 코스프레를 하며 오히려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 쿠팡의 눈에는 한국 소비자들이 현금 인출기로 보이는 것일까? 이익은 한국에서 챙기되 법적·사회적 책임 앞에서는 '미국 기업'이라며 뒤로 숨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5만 원 보상으로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쿠팡 향한 분노 이면의 서글픈 현실

 쿠팡 창업주이자 쿠팡 모회사 쿠팡아이엔씨(Inc)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
쿠팡 창업주이자 쿠팡 모회사 쿠팡아이엔씨(Inc)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하지만 이 분노의 이면에는 서글픈 현실도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쿠팡의 기만적 태도에 탈팡이 속출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특히 아기가 있는 가정의 경우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게 새벽배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 서비스다. 느림의 미학에 적응하면 새벽배송을 멀리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그게 가능한 소비자들의 선택일 뿐, 새벽배송 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거기에 의존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필수 서비스다. 그래서 탈팡운동에 동의하면서도 무력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독과점을 향해 질주하는 속성이 있다. 독과점의 문제는 단순히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할 권리와 떠날 자유를 박탈한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대안이 없는 시장에서 기업은 괴물이 되기 쉽고 책임은 없어진다. 한 기업의 독점을 제어하지 않고 방치한 시장은 야수(Beast)가 되어 결국 소비자를 잡아먹는다. 이를 '야수 자본주의'라고 한다. 오늘의 쿠팡의 모습과 다름없다.

쿠팡이 셀프 조사 결과를 내밀고, 소비자가 자기 돈을 보태야 보상받는 기만적인 보상안으로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어차피 대안 시장이 없으니 떠나지 못할 것이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유리할 때는 한국 기업 흉내를 내고, 불리할 때는 미국 기업 행세를 하는 쿠팡의 본질적인 기업윤리와 책임회피를 철저히 파헤치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를 엄벌해야 한다. 특히 소비자를 우롱하는 '조건부 보상안'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도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나아가 쿠팡이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라는 자본을 기회로 삼아 국내 기업으로 대안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불균형을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독과점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의 총수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자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쿠팡 #루팡 #탈팡 #쿠팡보상 #조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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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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