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작은 반딧불이 내 손에 앉았다.
전갑남
그 어떤 수식어로도 담기 힘든 자연의 아름다움! 어느새 내 손바닥에도 사뿐히 왔다가 훨훨 날아간다. 계속 빛이 켜져 있는 게 아니라 깜박, 깜박, 깜박! 신비감을 자아낸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가 지상으로 쏟아지듯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소년의 손짓은 마치 빛의 군단을 지휘하는 마법사의 지팡이 같았다.
우리를 매료시킨 그 눈부신 광휘는 사실 반딧불이의 치열하고도 짧은 구애의 몸짓이었다. 몸속의 루시페린(Luciferin)이 산소와 만나 만들어내는 이 빛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빛으로 전환하는 열기 없는 '차가운 빛'이다.
성충이 되면 입이 퇴화하여 오직 이슬만 머금으며 번식에 전념하는 반딧불이는 2주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그 찰나의 시간을 온몸으로 불사르는 생명력이 경이롭다 못해 엄숙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보았던 고향의 그것보다 크기는 작고 앙증맞았지만, 청정 1급수와 맹그로브 숲의 습도가 빚어낸 이 장관은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했다.
숲에서 울려 퍼진 "메리 크리스마스"
누군가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창하자, 숲은 금세 크리스마스트리로 변모했다. 맹그로브 나무마다 빼곡히 내려앉은 빛의 조각들이 점멸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성탄절의 축복이었다. 때마침 일행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 정중식 '나는 반딧불' 가사가 귓가에 머문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ㅡ 정중식 <나는 반딧불>
스스로 별인 줄 알았으나 실은 보잘것없는 벌레임을 깨달아도,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기에 괜찮다는 가사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난한 선비가 반딧불이 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형설지공(螢雪지功)'의 고사를 떠올리며, 작은 생명체가 건네는 위로에 온 마음을 맡겼다.
가슴에 새긴 빛의 잔상
어둠은 깊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난 밤이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습한 공기와 맹그로브 숲의 향기, 그리고 손바닥 위에서 잠시 머물다 간 차가운 불빛의 촉감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 수많은 반딧불이 마법에 걸린 듯 모여들었다.
전갑남
현실로 돌아온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마리마리!"를 외치던 우리의 목소리와 은하수처럼 흐르던 반딧불이의 군무가 아른거린다.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별이었던 반딧불이처럼, 우리네 삶도 매 순간 뜨겁게 반짝이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공유하기
코타키나발루의 밤, 어둠보다 빛나는 기억을 새기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