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은 국가 의료방사선 관리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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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의료방사선 관리 체계의 부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직업성 피폭은 국가가 기록과 관리를 통해 일정 부분 통제한다. 그러나 환자의 의료 피폭은 '각 병원' '각 검사' '각 진료과' 단위로 흩어져 있다. 디지털 영상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검사별 선량 정보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환경이 되었음에도, 환자는 자신의 누적 선량이 얼마인지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CT를 찍은 병원, 치과 파노라마를 찍은 치과, 유방촬영을 한 검진기관을 각각 찾아가 따로따로 묻고 기록해야 한다면, 사실상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환자 선량 기록은 DRL 운영의 기초이자, 무엇보다 '환자의 알 권리'와 '이해에 근거한 동의'의 토대다. 정보가 없으면 동의는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방사선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진료부서와 검사부서를 분리해 책임을 명확히 하고, 진료부서는 검사 의뢰 시 정당성과 대체 가능성, 예상 선량과 위험을 설명해야 한다. 검사부서는 장비의 안전성과 프로토콜의 적정성을 확보하고, 환자별 선량 정보가 자동으로 기록·축적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권고'가 아니라 '의무'다. 정당화 과정이 의사의 마음속 판단으로 끝나지 않고, 기록으로 남아 검증 가능해야 한다. 최적화 또한 "장비가 알아서 한다"가 아니라, 표준 프로토콜과 교육, 전문인력 참여를 통해 실제 선량이 줄어드는 구조여야 한다.
특히 영유아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예방접종수첩이 아이의 건강 이력을 사회가 함께 관리하는 도구라면, 영유아 의료방사선 관리 수첩은 아이의 방사선 노출 이력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영유아는 스스로 검사 여부를 결정할 수 없고, 보호자는 의료 권위 앞에서 취약해지기 쉽다. 그래서 더더욱 국가가 기록과 설명, 대체 검사 우선 원칙, 반복 촬영 제한을 제도화해야 한다.
영유아 의료방사선 관리 수첩은 단지 종이 한 권이 아니라, 국가적 선량 기록 체계와 연결된 '권리의 증표'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떤 검사를 했고, 대략 어느 정도의 선량이었는지, 누적 선량은 어느 정도인지, 다음 검사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보호자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까지 담아야 한다. 이 수첩은 보호자에게 "검사를 거부하라"가 아니라 "필요성을 질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구여야 한다.
교육도 빠질 수 없다. 의료진에게는 환자에게 선량과 위험을 설명하는 역량, 대체 검사를 고려하는 임상 판단, 소아 전용 프로토콜을 적용하는 기술, 납 차폐 등 보호 조치를 안내하는 절차가 체계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시민에게는 의료방사선이 무조건 위험하니 피하라는 공포가 아니라, 검사 선택에서 스스로 질문하고 기록을 요구할 수 있는 실천 지식이 전달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촬영은 했는데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매년 "의료 방사선 피폭량이 증가했다"는 보도를 반복해서 보게 될 뿐이다.
의료방사선은 현대 의학의 중요한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방사능에 취약한 영유아가 불필요한 피폭의 부담을 떠안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 이제 우리는 '병원 안의 방사선'을 개인의 선택과 의료진의 선의에만 맡겨두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국가적 의료방사선 관리 체계를 만들고, 영유아 의료방사선 관리 수첩을 도입하자. 기록과 설명, 정당화와 최적화, 책임과 감독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자. 그때 비로소 CT는 '필수 조건'이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 선택될 수 있는 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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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찍어야지"... 영유아에게 이래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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