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이래 기념사업회)와 유족 등이 31일 오후 2시, 배문선 사무국장의 사회로 이관술 선생이 1950년 불법 학살당한 골령골 학살지 현장에서 고유제를 봉행했다.
심규상
사건의 발단은 7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5월, 미군정 경찰은 조선공산당을 무력화시키고 대중적 지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조선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발행해 당 자금으로 썼다는 혐의를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관술 선생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불법 구금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당시 사법부는 피고인들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재판 대신 '사법살인'을 선택했다. 이관술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재판 절차도 없이 이곳 골령골로 끌려와 차디찬 주검이 되었다.
"사건명, '미군정 통화 위조 조작 사건'으로 부르자"
손문호 기념사업회 회장은 고유문을 통해 "79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은 사실을 알리고 같은 사건으로 수감되고 학살당한 송언필을 비롯한 영령을 위로드린다"며 재심의 의미를 강조했다.
실제 이번 재심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대한민국 헌법 제정 전인 1946년 미군정기 사건에도 현재의 증거 법칙을 적용, 사법적 과오에 대해 검찰과 재판부가 고개를 숙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이래 기념사업회)와 유족 등은 31일 오후 2시, 이관술 선생이 1950년 불법 학살당한 골령골 학살지 현장에서 고유제를 봉행했다. 이날전미경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장이 "오늘을 계기로 산내 골령골을 빨갱이가 묻힌 골짜기라는 오명이 싹 씻겨나가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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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문호 기념사업회 회장이 고유문을 통해 “역사 속에 법도와 정의가 꺾이고 상잔이 거듭됐으나 이를 바로잡기 위한 분투가 있었다”며 재심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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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허상수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정판사 사건은 미군정의, 미군정에 의한, 미군정을 위한 조작 사건"이라며 "범죄 수익까지 미군정이 가져간 일로 이 순간부터 사건명을 '미군정 통화 위조 조작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선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앞장서 온 외손녀 손옥희씨와 외손자 손용석씨도 영전 앞에 섰다. 손옥희 씨는 "오늘 무죄 판결을 알리는 기쁜 날이지만 자꾸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그동안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고인의 유지를 계승해 나가는 일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전미경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장은 "오늘을 계기로 산내 골령골이 '빨갱이가 묻힌 골짜기'라는 오명이 싹 씻겨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유제 참석자들도 고유문을 통해 "하늘에 걸리고 땅에 박힌 비원에 우리의 수고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선생과 함께 이곳에 잠든 송언필 선생 등 수많은 영령의 넋을 달랬다.
다 함께 외친 "'조선 민족 만세"

▲ 선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서온 외손녀인 손옥희 씨와 외손자이 손용석 씨도 영전 앞에섰다. 손옥희씨는 "오늘 무죄판결을 알리는 기쁜 날이지만 자꾸 눈물이 난나"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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