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선택을 받은 굿즈 캐릭터별로 그림 몇 장이 들어있다
최은영
생각보다 빠른 오후 3시 쯤, 아이가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으며 신나게 말을 쏟아냈다.
"엄마, 나 오늘 진짜 좋았어."
그러면서 휴대폰으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줬다. 인형, 키링, 피규어, 포스터. 하나같이 예쁘고 신기했다. 그런데 가격표도 함께 찍혀 있었다. 작은 키링이 2만 원, 인형은 5만 원이 넘었다. 인형 두개만 샀어도 10만 원이네 하면서 얘가 돈을 어떻게 쓸지 걱정이 됐지만 잔소리 안 하는 척, 슬쩍 물어봤다.
"와, 비싸다. 이거 샀어?"
"아니, 사진만 찍었어. 너무 비싸서."
안 샀다는데 안도하면서 뜨끔하는 내 마음은 뭘까. 그때 아이가 손바닥보다 조금 큰 봉투를 꺼냈다.
"이거는 샀어."
봉투 안에는 캐릭터 그림이 몇 장 들어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6천 원이었다. 아이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아이는 5만 원 짜리 인형을 포기하고 6천 원 짜리 그림을 선택했다. 그 모습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특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름 경제관념이 있구나.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친구들이랑 있으면 친구들 보고 싶은 것도 같이 봐야 하고, 친구가 가자는 데 따라가야 하잖아. 근데 혼자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어서 좋았어."
아침에 혼자 간다고 했을 때의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혼자 있는 시간의 다른 이름
친구가 많아야 인기 있는 아이고, 주말마다 약속이 있어야 잘 지내는 아이처럼 보인다.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이 종종 건강한 사춘기처럼 여겨진다. 아이의 말은 그 흐름을 단숨에 거스른다. 아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결이 매우 다르다. 달라서 낯설고, 달라서 안도됐다.
아이가 '혼자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 건 친구가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외로움을 감추려고 한 변명도 아니었다. 그저 날것의 자유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나만의 속도로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나이대의 독립심을 이렇게 배우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낸다. 다만, 그 공간을 먼저 허락해주는 건 여전히 부모의 몫이었다. 마치 자전거 뒤에서 손을 놓으면 아이가 스스로 페달을 밟아나가듯, 아이들은 작은 자유만 주어지면 어떤 시간이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갔다. 하지만 처음 한 번은 부모가 믿고 보내줘야 했다. 그 신뢰 안에서 혼자 걸어보고, 혼자 선택해보고, 혼자 즐거워해 볼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간다.
아마 다음번에도 아이는 내게 "혼자 갈게"라는 말을 할 것이고, 나는 또 순간 불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날을 떠올릴 거다. 아이가 혼자 채운 시간만큼, 나는 기다리는 법을 새로 배웠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가 되었고, 나는 아이를 믿는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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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러 간다는 중학생 딸, 불안감은 이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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