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놀러 간다는 중학생 딸, 불안감은 이때 사라졌다

날 것 그대로의 자유를 만끽한 아이... 스스로 찾아낸 균형,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등록 2026.01.03 18:58수정 2026.01.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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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번 주말에 홍대 갈게."

주중 저녁 식사 자리에서 중학생 딸이 한 말이다. 당연히 친구들이랑 가는 줄 알았다. 이맘 때 아이들은 혼자보다 무리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혼자 간다고 한다.


젓가락을 든 손이 멈췄다. 한시간 반 거리의 홍대를 혼자 간다고?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친구들이 안 놀아주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아이가 외톨이가 된 걸까.

"친구들은? 같이 안 가?"
"친구들은 학원 가. 나는 혼자 가고 싶어서."

아이는 태연했다. 오히려 내가 놀라는 게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혼자 가는 아이의 뒷모습

토요일 오전, 아이는 샤워와 메이크업을 꼼꼼히 끝내고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붙어 아이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쫓았다. 이어폰을 끼고 혼자 걷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초등학교 때는 주말마다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땐 시끄럽다고 속으로 한숨 쉬었는데 이제 그런 날이 없으니 집이 너무 조용했다. 아이는 방에만 있거나 혼자 밖에 나갔다. 마음이 불안했다. 두 시간 쯤 지나서 나는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왜?"
"아니, 그냥.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지금 뭐 해?"
"팝업 스토어 보는 중.
"혼자?"
"응."
"…재밌어?"
"응, 너무 좋아. 엄마 나중에 사진 보낼게."


아이 목소리는 생기가 넘쳤다. 오히려 내 전화가 귀찮은 듯했다. 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멀쩡했다.

몇 장의 그림이 준 안도감

아이의 선택을 받은 굿즈 캐릭터별로 그림 몇 장이 들어있다
▲아이의 선택을 받은 굿즈 캐릭터별로 그림 몇 장이 들어있다 최은영

생각보다 빠른 오후 3시 쯤, 아이가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벗으며 신나게 말을 쏟아냈다.

"엄마, 나 오늘 진짜 좋았어."

그러면서 휴대폰으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줬다. 인형, 키링, 피규어, 포스터. 하나같이 예쁘고 신기했다. 그런데 가격표도 함께 찍혀 있었다. 작은 키링이 2만 원, 인형은 5만 원이 넘었다. 인형 두개만 샀어도 10만 원이네 하면서 얘가 돈을 어떻게 쓸지 걱정이 됐지만 잔소리 안 하는 척, 슬쩍 물어봤다.

"와, 비싸다. 이거 샀어?"
"아니, 사진만 찍었어. 너무 비싸서."

안 샀다는데 안도하면서 뜨끔하는 내 마음은 뭘까. 그때 아이가 손바닥보다 조금 큰 봉투를 꺼냈다.

"이거는 샀어."

봉투 안에는 캐릭터 그림이 몇 장 들어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6천 원이었다. 아이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아이는 5만 원 짜리 인형을 포기하고 6천 원 짜리 그림을 선택했다. 그 모습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기특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름 경제관념이 있구나. 그때 구원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친구들이랑 있으면 친구들 보고 싶은 것도 같이 봐야 하고, 친구가 가자는 데 따라가야 하잖아. 근데 혼자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어서 좋았어."

아침에 혼자 간다고 했을 때의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혼자 있는 시간의 다른 이름

친구가 많아야 인기 있는 아이고, 주말마다 약속이 있어야 잘 지내는 아이처럼 보인다.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이 종종 건강한 사춘기처럼 여겨진다. 아이의 말은 그 흐름을 단숨에 거스른다. 아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결이 매우 다르다. 달라서 낯설고, 달라서 안도됐다.

아이가 '혼자 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 건 친구가 없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외로움을 감추려고 한 변명도 아니었다. 그저 날것의 자유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나만의 속도로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나이대의 독립심을 이렇게 배우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균형을 찾아낸다. 다만, 그 공간을 먼저 허락해주는 건 여전히 부모의 몫이었다. 마치 자전거 뒤에서 손을 놓으면 아이가 스스로 페달을 밟아나가듯, 아이들은 작은 자유만 주어지면 어떤 시간이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갔다. 하지만 처음 한 번은 부모가 믿고 보내줘야 했다. 그 신뢰 안에서 혼자 걸어보고, 혼자 선택해보고, 혼자 즐거워해 볼 때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간다.

아마 다음번에도 아이는 내게 "혼자 갈게"라는 말을 할 것이고, 나는 또 순간 불안해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이날을 떠올릴 거다. 아이가 혼자 채운 시간만큼, 나는 기다리는 법을 새로 배웠다. 그렇게 아이는 혼자가 되었고, 나는 아이를 믿는 사람이 되어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반갑다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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