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1.05 16:42수정 2026.01.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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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중학교 익명 단톡방에 엄마 천 명이 모여 있다.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니 공통 관심사가 많다. 아이와의 관계도 그 중 중요한 소재다. 아이가 눈에 보이면 싸우니 둘 중 하나는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자주 올라온다. 아이에게 퍼붓고 싶었던 날, 톡방 가르침 대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요가원으로 도망갔다.
우연히 만난 요가는 신기했다. 숨만 쉬는데 온몸에서 땀이 났다. 정확히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자세를 유지하니 평소 안 쓰던 근육이 다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날도 아이에게 퍼붓지 못한 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강사님이 "호흡에만 집중하세요"라고 말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이 생각뿐이었다. '쟤가 어쩜 나한테 저럴 수 있지.'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7살 많은 언니가 보여준 것
그때 옆자리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일곱 살 많다는 그 언니는 수업 시작 전부터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배운 기본 자세도 삐걱거리는데 언니는 물 흐르듯 자세를 바꿔갔다.
강사님이 시르시아사나(머리서기) 시범을 보이는데 와, 저게 되나 싶었다. 나는 벽에 기대서 하는 머리서기조차 무서웠다. 그때 옆에 있던 언니가 매트 중앙에 엎드렸다. 언니도 아직 완벽하게 되지 않는데 매일 도전한다고 했다. 언니는 머리와 팔로 삼각형을 만들고,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째에 잠깐 균형을 잡았다가 다시 내려왔다.
"3초 늘었어요!"
강사님이 박수를 쳤다. 언니는 땀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저렇게 몸을 쓴다는 게 감동이었다. 아이와 있던 일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요가원에 갔다.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랬어도 아직 시르샤아사나를 못한다. 벽에 기대서 다리를 올리면 15초 정도는 나도 벽 없이 버틸 수 있다. 옆자리 언니는 이제 벽 없이 올라가서 30초를 버틴다.
신기한 건, 그게 전혀 부럽지 않다는 거다. 못해도 요가하는 시간의 호흡이 너무 좋다. 들숨에 집중하고 날숨에 집중하면 세상에 나와 숨소리밖에 없는 것처럼 고요해진다. "왜 내 말을 안 들어?"가 사라지고 "쉬, 후" 하는 소리만 남는다.

▲요가 수련 시작하기 직전 요가원 공간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이미 차분해지는 게 신기하다
최은영
예비 고1이 된 딸, 시간이라는 축복
딸아이는 이제 예비 고1이 됐다. 확실히 예전만큼의 강렬한 부딪힘은 없다. 시간의 흐름이 축복이라는 걸 이제 안다. 아이도 조금씩 자라고, 나도 조금씩 변한다. 1년 전 나는 아이의 반항에 맞서 싸워 이기려고 했다. 지금 나는 요가 매트 위에서 내 호흡과만 싸운다. 이 싸움은 내가 이길 수도 있는 싸움이다.
아이는 나무처럼 제 속도로 자라고 있다. 나는 그저 물을 주고 햇빛을 가리지 않으면 된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비가 오면 젖으면서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자란다. 나도 요가 매트 위에서 삐걱거리지만 내 방식대로 자란다.
1년 넘게 요가를 하면서 달라진 게 또 있다. 아이가 짜증을 내도 예전처럼 바로 받아치지 않는다. 한 박자 쉬고, 호흡하고, 그다음에 말한다. 그 한 박자에 "쟤도 힘들겠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완벽하진 않다. 가끔은 여전히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예전보단 낫다.
요가에서는 아기 자세(발라아사나)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숨을 고르면 세상 모든 무게를 내려놓는 것 같다. 내 무게가 땅으로 흡수되는 듯한 감각이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딸아이 사춘기를 보내며 나는 요가로 숨 쉬는 법을 배웠다. 아이는 제 속도로 자라고, 나는 내 속도로 유연해진다. 시르샤아사나는 못해도 괜찮다. 숨만 잘 쉬어도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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