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만든 축의금 내는 이미지 이점록
부조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혼례나 장례 같은 큰일을 치를 때 곡식과 노동으로 서로의 삶을 거들던 문화가 오늘날 봉투로 바뀌었을 뿐, 그것은 한국인만의 독특한 '관계의 언어'였다. 문제는 직장을 떠난 '현역 이후'부터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 사이는 인생에서 대소사가 가장 잦은 시기다.
자녀의 혼사와 부모님의 송별 등 안팎의 대소사가 몰려온다. 수입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지출은 오히려 느는, 그야말로 은퇴자의 '보릿고개'다. 현역 시절 무심히 넘기던 경조사 문자 한 통에도 선뜻 답을 못 하고 한참이나 손을 멈추게 되는 이유다.
달라진 것은 통장 잔고만이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속도도 느려졌다. 예전에는 일정표를 보며 "또 있네" 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면, 지금은 문자 한 통에도 조심스러움이 먼저 고개를 든다. 기쁜 일엔 기꺼이 웃어주고 싶고, 슬픈 일엔 진심으로 곁을 지키고 싶다. 다만 그 마음이 늘 봉투의 두께로만 재단되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휴대전화에는 벌써 청첩장과 부고장이 연달아 도착해 있다. 은퇴 후의 삶은 수입이 줄어든 만큼 사람이 더 소중해진다. 생활은 단순해졌다. 덜 사고, 덜 먹고, 덜 떠난다. 그러나 차마 줄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 사이의 예의다. 특히 인생 2막에 접어들면 발걸음은 예식장보다 장례식장으로 더 자주 향한다.
냉정하게 말해, 은퇴자에게 경조사비는 더 이상 '뿌린 대로 거두는' 투자가 아니다. 현역 시절 이해관계로 얽혀 부조했던 이들은 내가 은퇴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의 경조사를 모른 척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부조금이 세금 고지서처럼 느껴지고, 은퇴자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키우는 이 현실은 분명 건강하지 않다. 그렇다고 수백 년 이어진 전통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경조사 문자를 받을 때마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얼마를 해야 하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할까'를 먼저 떠올리는 연습이다. 봉투의 액수보다 얼굴 도장이, 숫자보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먼저 기억에 남는 관계를 꿈꾼다. 어쩌면 인생 2막은 더 많이 베푸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더 깊게 '다정해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경조사비에도 과감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적게 주고 적게 받기.' 부담이 아니라 위안이 되는 축하와 위로, 봉투보다 손이 먼저 내밀어지는 사회라면 예고 없는 경조사 소식도 덜 두려울 것이다.
부조(扶助)가 지출이 아닌 연결의 기회가 되려면, 이제 우리 스스로 봉투의 무게를 덜어낼 용기를 내야 한다. 올 한 해, 나는 봉투는 가볍게, 마음은 두터운 발걸음으로 사람들을 마주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인생 2막의 품격이자 다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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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공직에 몸담고 퇴직했습니다.
지금은 은퇴 이후의 삶을 다시 배우는 60대 인턴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 2막의 의미를 발견하는 글을 씁니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장년과 노년의 삶을 기록하며,
나이 들어서도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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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의 보릿고개, 부조금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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