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

등록 2026.01.05 08:11수정 2026.01.05 08:11
0
원고료로 응원
3년 전, 나는 한 출판사와 처음으로 계약을 했지만, 출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두 달 전, 새로 쓴 원고로 다른 출판사와 다시 계약을 했다. 이번에는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첫 계약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은 언제 나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나는 출판사와 의논한 방향에 맞춰서 원고를 고치는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겨우 쓰고 나면 작위적이거나 교훈적인 글이 되고 말았다. 그런 중에 사람들의 인사를 들으면 기쁘기보다 조급해졌다. 출간 일정은 계속 미뤄지다 결국 계약은 파기되었고,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지금 두 번째 계약을 하고 원고를 다듬다 보니 3년 전보다 안정적으로 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편집자의 조언이 부담스럽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는 걸 느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확장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짚어주어서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3년 전 책이 나오지 못한 이유는 처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처음이라 편집자의 말을 평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미흡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걸 자책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은 편집자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3년 전에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면, 지금은 책이 안 나와도 괜찮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다. 체념이 아니라 보루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책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니까. 첫 계약이 불발되었지만, 쓰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째 계약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계약이나 출판보다 지켜내야 하는 보루는 쓰고 싶은 마음과 쓸 수 있는 몸인지 모른다.

첫 계약을 했을 때도, 계약이 파기되었을 때도, 그리고 두 번째 계약을 했을 때도 나는 문우들과 함께 한길문고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왔다. 크게 낙심하지 하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과 나눈 온기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함께하는 동안 '쓰고 싶은 마음'은 식지 않고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는지도.

 2025 제 1회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 수상작품집
2025 제 1회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 수상작품집 김준정

12월 둘째 주 토요일, 한길문고에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제1회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 수상식과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출간한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린 날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한길문고에서 올해 처음 마련한 3000자 소설 수필 공모전의 수상자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 성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부녀가 나란히 수상해 많은 이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샀다. 아버지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한길문고는 집과 가까워서 아이들과 자주 오는 놀이터 같은 곳인데, 상까지 받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그의 초등학생 딸아이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꿈이 작가인데요, 앞으로 훌륭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다.

 군산시민이 소개하는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
군산시민이 소개하는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 김준정

이날 함께 출간기념회를 연 <한길통신: 모두의 군산 이야기>는 군산시민들이 추억과 사연이 깃든 장소를 군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책이다. 2025년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활동한 최영건 소설가와 군산에서 글을 쓰는 작가 17명이 참여했고, 총 21편의 글이 실렸다. 나도 그중 한 꼭지를 썼다.

책 작업을 함께한 사람들이 '군산기억상'이라는 상을 받기 위해 한 명씩 단상 앞으로 나왔다.

"한동안 글을 못쓰고 있었는데, 오늘을 계기로 다시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합가를 앞두고 있는데, 시어머니와의 생활을 써봐야겠어요."
"제 글이 책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에요. 새로운 길이 열린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의 소감을 듣는 동안, 그날 내린 비처럼 마음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어느 날 씨앗 같은 생각이 생긴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건 아닌 것 같다.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부족한 일이 있다는 걸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면 애가 타고, 자책하다가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마음에 생긴 씨앗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온기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자라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첫책계약 #출간 #한길문고 #계약파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노인 일자리 첫 급여 받은 날, 통장 확인하고 깜짝 놀란 이유 노인 일자리 첫 급여 받은 날, 통장 확인하고 깜짝 놀란 이유
  2. 2 "우린들 새 잡고 싶어 잡겠나" 어민 절망 속 바다새 1만 마리의 죽음 "우린들 새 잡고 싶어 잡겠나" 어민 절망 속 바다새 1만 마리의 죽음
  3. 3 바다 위 흉물처럼...관광객마저 탄식한 동해안의 '상처' 바다 위 흉물처럼...관광객마저 탄식한 동해안의 '상처'
  4. 4 SNS에 "평생 무주택자" 공개하자 순식간에 벌어진 일 SNS에 "평생 무주택자" 공개하자 순식간에 벌어진 일
  5. 5 "젊은 처녀 수입" 이후 전국에서 벌어진 일... 이게 한국의 실체 "젊은 처녀 수입" 이후 전국에서 벌어진 일... 이게 한국의 실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