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성대 중앙에 뚫려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창구. 남쪽으로 향하고 아래쪽에는 이를 받치는 석재(문틀)가 튀어나와 있다. 이를 통해 들어가야만 상층부로 올라가 별을 관측할 수 있었다. 창은 원통형 구조에서 무게 중심을 분산시키고 공기 내부 순환을 돕는 역할을 했다.
전갑남
여왕이 이토록 정교한 '별 보는 집'을 지은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백성들의 농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야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를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첨성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달력이자, 백성의 삶을 비추는 '민생의 등대'였으리라.
몸체를 이루는 362개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전체적인 단수는 별자리와 달의 운행을 상징한다. 돌 하나를 쌓을 때마다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풍요를 기원했을 여왕의 따뜻한 시선이 천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의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첨성대를 가까이서 대하니 신라인의 지혜에 대한 찬사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아래는 듬직하고 위로 갈수록 우아하게 좁아지는 그 독특한 자태다.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어 대지에 뿌리를 굳건히 내리면서도 시선은 자연스럽게 드높은 하늘을 향하게 만드는 이 형태는, 마치 "내 발은 비록 땅을 딛고 있지만, 마음은 늘 하늘의 뜻을 살피겠다"는 여왕의 다짐처럼 보였다.
또한, 둥근 몸체 위에 네모난 돌(정자석)을 올린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하늘과 땅의 조화를 상징한다. 둥근 하늘의 이치를 배워 네모난 땅 위의 삶을 보살피려 했던 그 마음이 이 작은 돌탑 안에 완벽한 비례로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저 쌓아 올린 몸체로 어떻게 천 년 시간 속에서 지진이란 재앙도 견뎠을까?' 그 속에는 놀라운 반전의 미학이 숨어 있었다. 우선 창문 아래쪽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자갈과 진흙으로 꽉 채워져 있다. 마치 오뚝이처럼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두어 스스로 중심을 잡고 무너지지 않게 한 기초 과학의 산물이다.
밖에서는 유려하고 매끈한 곡선미를 뽐내지만, 안쪽 벽면은 돌 끝이 거칠게 튀어나와 있어 사다리를 지지하거나 사람이 짚고 오를 수 있는 투박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맨 위쪽에는 정자석(井字石)이 엇갈려 끼워져 전체 구조가 뒤틀리지 않게 꽉 잡아주고 있으니, 신라인의 건축술은 천 년 뒤의 후손마저 숙연하게 만든다.
온기를 나누는 기술, 경주가 증명하는 가치
경주를 방문했던 세계의 정상들은 과연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아마도 나처럼 이 작은 도시가 품은 깊은 역사와 사람을 생각한 지혜에 압도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번 APEC 정상들이 논의한 소외 없는 기술의 혜택은, 하늘의 정보를 백성에게 골고루 나누어 농사를 돕고자 했던 첨성대의 따뜻한 배려와 그 뿌리가 맞닿아 있다. 디지털 혁신의 시대 위에서, 천 년 전 백성의 삶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첨성대의 공학은 '진정한 기술은 사람의 소외를 막고 온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되었으리라. 경주는 그 가치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 깨끗하게 가꿔진 첨성대가 있는 경주 동부사적지대에는 연을 날리며 겨울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전갑남
경주의 겨울은 차갑지 않다. 하늘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땅은 고분의 너른 품으로 우리를 보살핀다. 선덕여왕이 하늘을 읽어 땅을 보살피려 했던 그 마음은 지금도 첨성대의 돌 틈 사이사이에, 그리고 대릉원의 부드러운 곡선 위에 흐르고 있다.
첨성대가 읽어낸 하늘이 결국 땅 위의 사람을 향해 있었듯, 나 역시 내가 가진 도구가 누구의 마음을 보살펴야 할지 다시금 되새겨 본다. 세계를 감동하게 한 경주의 저력은 결국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 있음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이어질 다음 경주 여정은 또 어떤 감동으로 내게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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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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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지은 '별 보는 집'의 놀라운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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