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활터, 먼저 땅을 보고 바람을 읽는 자리 서울 관악구 관악정 활터. 집궁의 첫 원칙은 ‘선찰지형’이다. 땅의 형세와 습윤 상태를 먼저 읽어야 그 위를 흐르는 바람도 이해할 수 있다.
한무영
삼한사온은 통계가 아니라 리듬
삼한사온은 과학 공식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써온 말이었다는 사실은, 겨울이 지금보다 완만한 리듬을 가졌다는 증거다. 추우면 며칠은 추웠고, 풀리면 며칠은 풀렸다. 그래서 겨울옷은 하루를 버텼다. 지금의 겨울은 다르다. 추위와 따뜻함이 이어지지 않고 충돌한다. 계절은 리듬을 잃고, 날씨는 점프한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거에 물이 많았다는 사실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마을 곳곳에 있던 얕은 우물을 보면 된다. 얕은 우물은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시설이 아니다. 비가 오고, 눈이 녹고, 물이 땅 표면 가까이에 머물 때 자연스럽게 차오르던 물이다. 그 우물들이 말랐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지하 깊은 곳의 문제가 아니라, 땅 표면에서부터 물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우물이 먼저 말랐고, 그 다음 계절의 완충이 사라졌다.
과거의 겨울 땅은 눈과 서리, 토양 속 수분을 품고 있었다. 이 물들은 낮에 받은 열을 저장했다가 밤과 다음 날에 천천히 내놓는 완충 장치였다. 그래서 추위는 덜 날카로웠고, 따뜻함은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의 땅은 다르다. 물은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간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사라진다. 토양은 겨울에도 건조하다. 땅이 입던 옷을 벗은 셈이다. 옷을 벗은 몸이 외부 온도에 바로 반응하듯, 물이 사라진 땅은 공기의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그래서 날씨는 완충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다.
탄소는 틀리지 않다, 다만 충분하지 않을 뿐
탄소는 중요하다. 장기적인 평균 기온 상승을 설명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겪는 문제는 평균이 아니라 진폭이다. 너무 자주, 너무 급격히 바뀌는 체감의 문제다. 이 단기 변동성과 극단을 설명하는 데에는 물과 땅의 상태가 빠져 있다. 탄소가 기후의 방향이라면, 물은 기후의 완충 장치다. 두 설명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기후를 말할 때 우리는 늘 하늘을 본다. 탄소를 말하고, 기온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땅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고, 숫자로 단순화하기 어렵고, 관리의 책임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날씨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땅의 상태에서 결정된다.
물은 단지 마시는 자원이 아니다. 흘려보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물은 기후의 완충 장치이며, 계절의 기억이다. 삼한사온이 사라진 것은 겨울이 덜 추워져서가 아니다. 겨울 땅에서 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하늘에서 시작되지만, 우리가 느끼는 날씨는 땅의 물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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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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