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온은 어디로 갔을까

[물이란 무엇인가 ⑧] 활터와 말라버린 우물에서 찾은 겨울의 답

등록 2026.01.04 11:16수정 2026.01.04 11:16
0
원고료로 응원
어제는 매우 추웠고, 오늘은 갑자기 따뜻해졌다. 이제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다. 예보는 맞았지만, 몸은 더 혼란스럽다. 아침에 입은 옷이 낮을 버티지 못하고, 낮의 옷차림이 밤을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날씨를 '기후변화'라고 부르지만, 그 말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남는다. 질문은 단순하다. 왜 요즘 겨울은 이렇게 '튈까'?

사막은 낮에 뜨겁고 밤에 차갑다. 이 현상의 이유를 두고 큰 논쟁은 없다. 물이 없기 때문이다. 수증기와 토양 수분이 적은 곳에서는 낮에 받은 열을 저장할 곳이 없다. 태양이 지면 온도는 곧장 떨어진다. 이 설명에는 복잡한 이론이 필요 없다. '물의 부재'라는 조건 하나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요즘 우리의 겨울은, 왜 사막을 닮아가고 있을까?

며칠 전 활터에서 85세 강 고문님을 만났다. 활을 쏘기 전, 그는 늘 같은 순서를 지킨다고 했다. 선찰지형, 후관풍세. 먼저 땅을 살피고, 그 다음 바람을 본다는 뜻이다. 이 원칙에서 '지형'은 단순한 높낮이가 아니다. 땅의 질감, 습기, 배수, 물기가 모두 포함된다. 물이 어떻게 머무는지가 곧 바람의 흐름을 만든다는 인식이다. 그는 이 순서를 50년 넘게 몸으로 지켜온 사람이다. 요즘 겨울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겨울이 더 추웠지. 그래도 이렇게 하루 만에 바뀌지는 않았어." 설명도, 원인 규명도 없었다. 다만 기억이 있었다.

겨울 활터, 먼저 땅을 보고 바람을 읽는 자리 서울 관악구 관악정 활터. 집궁의 첫 원칙은 ‘선찰지형’이다. 땅의 형세와 습윤 상태를 먼저 읽어야 그 위를 흐르는 바람도 이해할 수 있다.
▲겨울 활터, 먼저 땅을 보고 바람을 읽는 자리 서울 관악구 관악정 활터. 집궁의 첫 원칙은 ‘선찰지형’이다. 땅의 형세와 습윤 상태를 먼저 읽어야 그 위를 흐르는 바람도 이해할 수 있다. 한무영

삼한사온은 통계가 아니라 리듬

삼한사온은 과학 공식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써온 말이었다는 사실은, 겨울이 지금보다 완만한 리듬을 가졌다는 증거다. 추우면 며칠은 추웠고, 풀리면 며칠은 풀렸다. 그래서 겨울옷은 하루를 버텼다. 지금의 겨울은 다르다. 추위와 따뜻함이 이어지지 않고 충돌한다. 계절은 리듬을 잃고, 날씨는 점프한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거에 물이 많았다는 사실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마을 곳곳에 있던 얕은 우물을 보면 된다. 얕은 우물은 깊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시설이 아니다. 비가 오고, 눈이 녹고, 물이 땅 표면 가까이에 머물 때 자연스럽게 차오르던 물이다. 그 우물들이 말랐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지하 깊은 곳의 문제가 아니라, 땅 표면에서부터 물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우물이 먼저 말랐고, 그 다음 계절의 완충이 사라졌다.

과거의 겨울 땅은 눈과 서리, 토양 속 수분을 품고 있었다. 이 물들은 낮에 받은 열을 저장했다가 밤과 다음 날에 천천히 내놓는 완충 장치였다. 그래서 추위는 덜 날카로웠고, 따뜻함은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지금의 땅은 다르다. 물은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간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사라진다. 토양은 겨울에도 건조하다. 땅이 입던 옷을 벗은 셈이다. 옷을 벗은 몸이 외부 온도에 바로 반응하듯, 물이 사라진 땅은 공기의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그래서 날씨는 완충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다.


탄소는 틀리지 않다, 다만 충분하지 않을 뿐

탄소는 중요하다. 장기적인 평균 기온 상승을 설명한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겪는 문제는 평균이 아니라 진폭이다. 너무 자주, 너무 급격히 바뀌는 체감의 문제다. 이 단기 변동성과 극단을 설명하는 데에는 물과 땅의 상태가 빠져 있다. 탄소가 기후의 방향이라면, 물은 기후의 완충 장치다. 두 설명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기후를 말할 때 우리는 늘 하늘을 본다. 탄소를 말하고, 기온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땅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이지 않고, 숫자로 단순화하기 어렵고, 관리의 책임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날씨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땅의 상태에서 결정된다.

물은 단지 마시는 자원이 아니다. 흘려보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물은 기후의 완충 장치이며, 계절의 기억이다. 삼한사온이 사라진 것은 겨울이 덜 추워져서가 아니다. 겨울 땅에서 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하늘에서 시작되지만, 우리가 느끼는 날씨는 땅의 물이 결정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탄소 감축의 중요성을 낮추려는 취지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체감하는 날씨의 급격한 변화가 하늘의 문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땅과 물의 역할이 거의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썼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사라진 이유를 말라버린 우물에서 찾는 시도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현장을 잇는 하나의 질문이다. 이 글이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기후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삼한사온 #사막의온도변화 #마른우물 #겨울의온도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배우 활동의 마음 3% 정도... 무당으로서 우선 잘하고 싶어" "배우 활동의 마음 3% 정도... 무당으로서 우선 잘하고 싶어"
  2. 2 47년 동안 아내로부터 들은 가장 아픈 말 47년 동안 아내로부터 들은 가장 아픈 말
  3. 3 드라마 '참교육' 속 조폭 소굴이 된 학교... 34년차 교사의 시선 드라마 '참교육' 속 조폭 소굴이 된 학교... 34년차 교사의 시선
  4. 4 뱀이 스르륵, 고라니가 껑충… 여기 신도시 맞아? 뱀이 스르륵, 고라니가 껑충… 여기 신도시 맞아?
  5. 5 '계엄 목적, 북한 도발 유도' 윤석열 징역 30년...변호인단 울먹 '계엄 목적, 북한 도발 유도' 윤석열 징역 30년...변호인단 울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