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1.05 14:13수정 2026.01.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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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두 곳 정도는 더 안정권에 있는 학교를 넣을 걸 그랬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딸아이의 수시원서 접수를 마치고 자신만만해하던 나였다. 하지만 막상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니 입안에서 맴도는 건 자책뿐이다. 지난가을, 나는 딸의 생활기록부를 굳게 믿었다. 당연히 합격할 거라며 불안해하던 아이를 다독이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확신이 불안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몇 번을 새로고침해도 우리 아이의 합격 조회 화면은 그대로였다. 차마 아이 앞에서 티는 못 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내 탓'이라는 후회는 피할 길이 없었다.
3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준비한 노력이 스무 살의 문턱에서 냉정한 결과로 돌아온다. 그 앞에서 후회는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최근 수많은 수험생의 마음속에 폭풍우가 몰아쳤을 것은 뻔한 현실이다. 곁에서 뒷바라지하며 속앓이 했던 부모의 마음도 그에 못지않다. 고생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서인지 "그 짧은 시간 조금만 더 치열하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사실 이런 냉정함은 수험생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들의 세상도 매한가지다.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혹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우리는 숱한 밤을 지새운다. 어디 그뿐인가. 목돈이 든 통장, 내 집 마련, 승진, 마라톤 완주 메달, 혹은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일까지.
세상에 타고난 천재는 흔치 않다. 우리가 원하는 물리적인 결과물들은 대부분 우직하게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쏟아부은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단순히 좋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투자했느냐에 따라 성취의 여부와 속도가 결정된다. 참으로 냉혹하고도 정직한 이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을 만큼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만을 놓고 지난 시간을 재단한다면, 성실히 달려온 나의 역사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결과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정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꼭 눈에 보이는 합격증이나 자격증이 있어야만 성취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다. 그 치열했던 과정 속에서 자존감은 단단해지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성장한다.
한 번의 실패는 다음번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값진 데이터다. 실패를 통해 얻은 문제 해결 능력, 시간 관리의 지혜, 그리고 다시 계획을 세우는 유연함은 훗날 더 큰 결실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최적의 길을 다시 찾는 힘, 더 넓은 보폭으로 내딛는 힘은 바로 그 실패의 자리에서 나온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서 얻는 성취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다. 부디 내 아이들이 이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의 거창한 성공보다는, 작은 좌절과 극복이 켜켜이 쌓여 만든 단단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더 완벽해진다는 사실을, 어려움을 넘어서는 지혜는 덤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아이들이 몸소 깨닫길 바란다.

▲책상 위 연극 티켓 스탠드 책상 위에 놓인 VIP연극 티켓
AI생성 이미지
"통신사 VIP 연극 초대권 당첨됐어요. 살다 보니 쉽게 얻어지는 것도 있네요."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한 문자가 도착했다. 평소 복권 한 장 당첨된 적 없던 내게 날아든 뜻밖의 행운이었다. 마침 아내와 연극 한 편 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지난 한 해 치열하게 사느라 고생했다며 세상이 건네는 선물 같았다.
세상 모든 일이 땀과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힘 들이지 않고 툭 떨어지는 행운도 있으니 말이다.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은 묵직하고 보람차지만, 가끔은 이렇게 손쉽게 찾아오는 행운 덕분에 인생이 조금 더 살맛 나는 건 아닐까.
새해를 맞아 치열했던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노력한 딸에게도, 그리고 뒷바라지하느라 애쓴 나에게도, 이 우연한 행운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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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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