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실에서 초산의 경우 8시간 이상 진통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안사을
오후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점점 심해지는 진통을 겪는 아내 곁에 최선을 다해 있었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짧게나마 연습해왔던 호흡법을 함께 하며 리듬을 맞춰 주었다. 그런데 이날 마음 깊이 대단히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부터 다섯까지, 또 하나부터 일곱까지 숫자를 세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대신 아파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아무런 효력이 없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있다. 대신 아파줄 수 없기에, 그래서 아내의 고통을 상상 속에서라도 알 수 없기에,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다름 아닌, '육아와 가사에 최선을 다하기'라는 것. 실질적으로 아내를 쉬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실효성 있는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쉬고 싶어질 때마다 진통실 침대 위에서 차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런 소리를 내던 아내를 생각한다. 자고 일어난 직후, 말끔히 치워진 부엌과 뽀송한 상태로 아빠 품에 있는 아이를 보며 산후 우울증 따위는 찾아오지 않은 행복한 표정으로 서 있을 아내를 상상한다.
신생아 졸업 때쯤 생각난 큰어머니의 말씀
첫머리에 아이 생활의 규칙성이 조금 생긴 것 같다고 썼다. 육아 경험이 있는 이는 분명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비교급이지 결코 24시간 동안 그랬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패턴 가운데 반의 반나절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온 첫날을 기억한다. 생후 4일째 되는 날 딱 두 주먹 정도가 되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첫 번째 관문은 기저귀였다. 아이가 처음으로 코앞에서 울기 시작했을 때, 아내와 나는 서로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당황, 놀람, 결연 등의 감정이 눈빛으로 오고 갔다.
"밥 먹을 때 됐나?"
"아닌 것 같은데?"
"기저귀 갈 때 된 건가?"
"그런가 봐!"
"천 기저귀 가져와?"
"...."
"일단 일회용 마저 쓰자!"
"좋아!"
천 기저귀를 쓰기로 했고, 접는 법과 채우는 법 등을 영상을 통해 익혔지만, 첫 번째 마주한 실전의 순간 우리는 병원에서 쓰던 마지막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상상 속 완벽한 손놀림과는 매우 달랐다. 숨이 넘어갈 듯 울면서 버둥거리는 생명체의 아랫도리를 갈아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기저귀를 잡는 손가락에 아이의 살이 꼬집힐까 두려웠다. 드디어 갈아입히고 조심스레 안아 올렸을 때 아이의 울음이 그쳤고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안도의 눈빛이었다.
보통 산후조리원에서 보내는 2주를 별도의 인력도 없이 집에서 온전히 보내는 동안 아이의 표정과 울음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순탄하게 육아의 길을 걷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3주차가 되던 순간 우리의 핑크빛 판단이 여지없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우리가 체득한 해결책을 모두 제공해도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었다. 이전에 듣던 예쁜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진화의 역사가 일부러 그렇게 설계라도 한 듯, 아이의 울음은 커다란 스피커에서 최고 볼륨으로 나오는 소리보다 더 고막을 아프게 울렸다.
아내는 문득 탄생을 축하하는 통화에서 큰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감동적인 문장이었지만 막상 겪으니 더 와닿는다고 했다.
"낳는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야. 자식이 부모를 만드는 거란다."
종종 '하늘이 나의 인내심을 실험하기 위해 이 아이를 보내신 것인가' 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 외에도 울고 보채는 아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원초적이고 어쩌면 철학적이다.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 골몰하기도 하고, 그냥 대충 키우고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힘을 내본다.
육아를 얼마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만나 온 보통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또한 지금 가르치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존중심이 생긴다. 누구나 이렇게 인내의 시간을 거쳤을 것이며, 누구든 한때는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와 더불어, 당연히 받아야 할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영혼에 대한 끝도 없는 측은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가 되어 봐야 진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하던 선배 교사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한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복귀하면 새롭게 만날 아이들이 전보다 더 소중한 영혼으로 보일 것 같다.

▲엎드려 놀기(터미타임) 연습 이제 1개월이 지나서 '엎드려 놀기' 자세를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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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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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진통 후 제왕절개,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 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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