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 없는 밥상 처음 방문한 처가에서 마주한 상차림. 정성은 가득했지만, 값으로 매길 수는 없었다.
황인수
우리는 사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하나는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규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회적 규범의 세계에서는 돈이 없어도 관계가 유지된다. 이웃의 아이를 잠시 돌봐주고,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고, 휴가 간 동료의 일을 대신 처리해준다. 이때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대신 미안함, 고마움, 연대감 같은 감정이 관계를 떠받친다.
반면 시장 규칙의 세계는 숫자로 움직인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다. 공정함과 등가성이 기준이 되고, 관계는 거래로 정리된다. 문제는 이 두 세계가 종종 같은 자리에서 충돌한다는 데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관계들
다시 장모님의 상차림으로 돌아가보자. 장모님은 사위가 될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50만 원이라는 금액이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회적 규범의 세계가 무너지고 시장 규칙이 개입한다. 정성은 '노동의 대가'가 되고, 관계는 '거래'로 바뀐다. 아마 장모님은 불쾌함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한 번 시장 규칙이 개입한 관계는, 다시 사회적 규범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이런 충돌을 실험으로 보여준다. 그는 변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가난한 퇴직자를 위해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가난한 퇴직자를 위해 5만 원의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주실 수 있습니까?"
변호사들은 비용이 포함된 두 번째 제안보다 첫 번째 무료 제안을 받아들인 비중이 더 높았다. 5만 원이라는 금액이 등장하는 순간, 도움은 '선의'가 아니라 '저가 서비스'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며 어린이집에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가 많아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어린이집은 '시간당 벌금'을 도입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부모들은 더 자주 늦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보육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벌금을 내면 되는 문제"가 됐다. 관계의 기준이 도덕에서 비용으로 바뀐 것이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시장 규칙일까.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사회적 규범으로만 유지될 수 있을까. 특히 사업을 할 때 이 경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고객을 가족처럼 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면, 그 친절은 곧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적 규범을 활용했다면, 그에 맞는 책임도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결혼식 축의금은 사회적 규범일까, 시장 규칙일까. 친구에게 축의금을 건넬 때, 우리는 정말 아무 계산도 하지 않는가. 혹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장부를 한 번쯤 떠올려본 적은 없는가. 답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을 읽고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을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산책길의 풍경, 사소한 행동, 선택의 순간에서 인간과 사회의 구조를 떠올립니다. 설명보다는 관찰을, 결론보다는 질문을 남기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공유하기
장모님의 손맛과 정성에 '가격' 매겼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