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9 X 사용자(@kkullrany)가 올린 사진으로 보육원 아이들의 손 글씨를 제품으로 활용하는 '얼라방구' 프로젝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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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 우리가 쓴 문구를 보고 우는 어른도 있었어요. 나는 무심하게 쓴 말인데… 누군가한테 위로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 김우진(20, 가명)씨
"잘 썼다고 생각은 했는데(웃음). 이렇게 SNS나 전시회에서 좋은 반응이 있을 줄 몰랐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문장을 보면서 일상에서 힘을 얻었으면 해요." – 김현진(18, 가명)씨
연말연초 어른들의 시린 마음을 데운 '시인'들이 있다. 지난달 29일 X(트위터)에는 "보육원 아이들이 만든 스티커인데 문구가 너무 좋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스티커에는 아이들이 손글씨로 쓴 "멋진 어른은 행복을 가진 어른이다", "용기는 멀리 있지 않아요 찬장만 열어봐도~", "주변 시선보다 네가 만족했으면 됐어", "실망시켜도 괜찮아", "나는 슬프면 그냥 울겠다"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해당 글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지며 조회수 46만, 좋아요수 5천 개를 기록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보육원 아이들이 시인 같다", "문구가 너무 따뜻하다", "아이들의 문장이 담긴 제품을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느냐"는 관심을 쏟아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인천 부평구 인근 카페에서 문장의 주인공인 김우진(20, 가명)·현진(18, 가명)씨 형제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해피홈 보육원'의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문장이 담긴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얼라방구(아이들의 문방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인 같다'는 세간의 반응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형제는 <오마이뉴스> 독자를 위한 문장을 적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신중히 펜을 쥐었다(기사 하단에 소개).
다음 달 보육원 자립을 앞둔 스무살 우진씨와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고등학생 현진씨는 "때론 어렵고 멋진 말보다 간단한 위로가 통한다"라며 '작고 좋은 말'로 타인을 위로하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들려줬다.
"어른들은 왜?"에 내놓은 아이들의 답

▲ 보육원 아이들의 문장이 담긴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얼라방구(아이들의 문방구)' 프로젝트 활동 자료.
오마이뉴스
이들은 낯설었던 프로젝트의 첫 순간을 떠올렸다. 우진씨는 "갑자기 '너만의 문장을 쓰라'고 하면 너무 어려우니까 어른들의 질문에 우리들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던 그는 "처음에는 장난식으로 '너 돈 많아?'라고 썼다가 다시 고쳤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고민 끝에 고쳐 쓴 답변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하기 싫은 것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꿈에 관한 질문을 받았던 현진씨는 "꿈은 원래 크고 원대하고 달콤하게 쓰는 것"이라고 썼다. 평소 게임 개발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취미로 소설책을 쓰는 현진씨에게 꿈이란 "일단 크게 꿔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문장이 작품으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되는 걸 해보자'는 문장을 적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 2025년 10월 '해피홈 보육원'에서 진행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 활동 모습.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얼라방구'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오마이뉴스
그렇게 어른들의 질문에 쌓인 아이들의 답변은 전시회 작품이자 일상용품 속 디자인 문구로 재탄생했다. 지난달 27~28일 한 교회 공간을 빌려 진행된 '얼라방구' 팝업 스토어에 참석한 우진씨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놀랐다"라며 "내 문구가 담긴 텀블러가 첫 번째로 판매돼 기뻤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우리가 쓴 글을 보고 울고 간 어른도 있었다. 내가 무심하게 쓴 말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구매하고 싶은 제품이 된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문장을 향한 따뜻한 응원 물결은 SNS에서도 이어졌다. 이들은 "그냥 써본 문장에 이렇게 좋은 반응이 있을 줄 몰랐다"라며 "어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단순한 위로라서 많은 분께서 감동 받았다는 말을 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현진씨는 "어른들은 간단한 위로보다 멋진 말을 해주고 싶고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어려운 말을 쓰는 거 같다"라며 "어른들이라고 우리처럼 위로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우진씨 또한 "어른들은 위로의 말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자신이 직접 (위로대로) 행동할 수는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막상 말하는 사람은 없는, '작고 좋은 말'로 '아이들의 가벼운 위로'를 전했다고 생각한다"라며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에 전한 이들의 문장
보육원 아이들의 문장에 위로받은 건 SNS의 어른들만이 아닌 이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어른들이기도 했다. 김현기 해피홈 보육원 사회복지사는 <오마이뉴스>에 "평소 투정도 부리고 때론 철없는 아이들이 이런 문장을 썼다는 것을 보면서 점점 성숙해지고 또 자립할 준비가 되어가는 거 같아 뿌듯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보육원 아이들이 직접 담아낸 이야기라서 보시는 분들께 더 솔직히 와닿았을 거 같다"라며 "보내주신 많은 관심에 감사하다"라고 했다.
'얼라방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성경 목사와 정한별 전도사(교회 '커뮤니티오브니어')는 "해피홈 보육원과 또 다른 그룹홈(아동청소년 공동생활가정) 2곳을 합쳐 총 16명 아이들의 문장을 활용했다"라며 "노인들의 손글씨로 작품을 만드는 '신이어마켙' 대표께 양해를 구해 이를 오마주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수익 사업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서 현장 판매만 진행했는데 뜨거운 반응 덕분에 다른 판매 방편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인천 부평구 인근 카페에서 김우진(20, 가명, 사진 속 오른쪽)씨와 김현진(18, 가명, 사진 속 왼쪽)씨 형제를 만났다.
이진민
인터뷰를 마친 우진씨와 현진씨에게 즉석 제안을 했다. 이 기사를 읽을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적어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괜히 서로 툭툭 치며 헤매던 이들은 금세 진지해졌다. 우진씨는 여러 장의 종이를 쓸 만큼 고심했고, 현진씨는 색연필로 문장을 꾸몄다.
그렇게 써 내려간 우진씨의 문장은 "모든 일의 끝은 마지막이란 의미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니 끝이라고 좌절하지 말고 또 하나의 시작을 향해 나아가보세요"였다. 현진씨의 문장은 "하고 싶은 건 합법이면 다 해라 하나쯤은 되겠지! 울어도 보고 놀기도 하고 원하는 건 언젠가 다 될 거니까 급하진 말고 다 해라!"였다. 그러면서 우진씨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일단 저희 문장을 읽어보시고 만약에 와닿으면 이대로 실천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면 어떨까요?"

▲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인천 부평구 인근 카페에서 김우진(20, 가명)씨를 만났다. 우진씨가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전하는 말을 문장으로 적었다.
이진민

▲ <오마이뉴스>는 지난 2일 인천 부평구 인근 카페에서 김현진(18, 가명)씨를 만났다. 현진씨가 <오마이뉴스> 독자에게 전하는 말을 문장으로 적었다.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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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 이진민 기자입니다 really@ohmynews.com 모든 제보를 다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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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울린 '감동주의' 스티커, 보육원에 시인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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