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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30주기... "슬픈 노래인데, 이상하게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든다"

고 김광석 30주기, 노래는 기억이 되고 무대는 그 기억을 펼친다

등록 2026.01.06 09:21수정 2026.01.0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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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가객 김광석의 부조 김광석의 노래는 이제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그리움의 기억이자 언어가 됐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의 부조 김광석의 노래는 이제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그리움의 기억이자 언어가 됐다. 엘피스토리

영원한 가객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된다. 1996년 1월 6일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그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라디오와 플레이리스트를 넘어 무대 위에서 다시 불리고, 해마다 1월이면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김광석의 노래는 이제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그리움의 기억이자 언어가 됐다.

30주기,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추모


올해 1월 6일을 전후해 추모의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이어진다. 고향 대구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공연과 시민 참여형 추모가 열리고,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도 음악인과 관객이 함께하는 헌정 무대가 마련된다. 공식·비공식 행사를 가리지 않고, 소규모 공연과 자발적 모임까지 더해지며 김광석의 이름은 다시 호명된다. 추모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이다.

어쿠스틱 뮤지컬로 옮겨진 노래

김광석의 노래는 음반을 넘어 연극과 뮤지컬로 재해석되어 왔다. 특정 인물의 생애를 재현하기보다, 노래가 품은 정서를 이야기로 엮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른바 '주크박스' 형식의 공연들이 등장하며, 그의 노래는 인물의 서사와 관객의 기억을 잇는 매개가 됐다.

이 흐름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공연이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2012년 대구 초연 이후 〈바람으로의 여행〉으로 제목을 바꿔 현재까지 13년간 이어지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이 공연은 화려한 장치보다 노래와 이야기의 힘에 집중해 왔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맞닿는 방식은 김광석의 콘서트와도 닮아 있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2012년 대구 초연 이후 〈바람으로의 여행〉으로 제목을 바꿔 현재까지 13년간 이어지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이 공연은 화려한 장치보다 노래와 이야기의 힘에 집중해 왔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맞닿는 방식은 김광석의 콘서트와도 닮아 있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2012년 대구 초연 이후 〈바람으로의 여행〉으로 제목을 바꿔 현재까지 13년간 이어지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이 공연은 화려한 장치보다 노래와 이야기의 힘에 집중해 왔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의 호흡이 맞닿는 방식은 김광석의 콘서트와도 닮아 있다. Photo by SA-Imag

13년을 버틴 진정성


이 공연이 장기간 사랑 받아온 이유는 분명하다. 김광석을 '재현'하기보다 그의 노래가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는지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 인물의 삶을 따라가지만 관객 각자의 기억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같은 장면에서도 관객의 반응은 다르다.

누군가는 〈내 사람이여〉에서, 누군가는 〈서른 즈음에〉에서, 또 다른 이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서 눈물을 흘린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서 오가는 말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내 이야기 같았다."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는 특정 세대에 국한된 반응이 아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 관객의 연령대는 폭넓다. 김광석의 노래가 세대를 건너 살아 있다는 방증이다.

100회 넘게 객석을 지킨 한 관객의 이야기

이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수십 번, 심지어 100번 넘게 관람한 관객이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김광석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를 요청하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다.

"저는 팬이라기보다, 여기에 오면 숨을 고를 수 있어서 옵니다."

그가 전하는 김광석과의 인연은 남달랐다. 대구에서 전파사와 양복점을 사이에 두고 오가던 아버지 세대의 인연에서 시작된 관계였던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김광석을 '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김광석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파사 바로 옆 양복점에서 숙식하며 일을 배웠고, 타지에서 고생하던 아버지를 김광석의 가족이 형제처럼 보살펴주었다고. 김광석이 다섯 살 무렵,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인연은 이어졌고 그의 가족도 서울로 이사하며 두 집안의 인연은 각별했다.

김광석이 명지대학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을 무렵, 아버지는 어린 그를 데리고 길거리 공연을 보러 갔다. '동물원' 시절에는 녹음테이프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노래를 알렸고, 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김광석이 항상 KFC 치킨을 사다 주던 기억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95년 1월 4일,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 날 밤 결국 세상을 떠났다. 1월 6일 장례식장에 김광석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내 사람이여〉였다. 당시 김광석은 리메이크 앨범을 준비 중이었고 그 곡이 수록될 예정이라며 노래를 들려줬다고 한다. 경황이 없던 상황에서 김광석은 장례 비용까지 내주었다고.

그는 훗날 <바람으로의 여행>을 보며 장례식장에서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놀란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이 사연을 알 리 없는데 말이다. 그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늘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다시 부르기 2집 앨범 자켓 김광석 노래 '내 사람이여'가 수록된 다시 부르기 2집 앨범 자켓
▲다시 부르기 2집 앨범 자켓 김광석 노래 '내 사람이여'가 수록된 다시 부르기 2집 앨범 자켓 다시부르기 제작자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꼭 1년이 되던 날, 그는 뉴스 속보를 통해 김광석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두 번의 상실은 그를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삶의 균형은 무너졌고,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꿈도 내려놓게 됐다고. 그는 이 시기를 "완전히 무너졌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를 추모하며 <내 사람이여>를 불렀던 광석이 형이 일 년 후 1월 6일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그렇게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김광석과 나눈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말은 '씨앗의 온도'에 관한 것이었다.

"씨앗이 땅속에서 버티는 온도가 있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기 전, 딱 그 온도를 지나야 싹이 나와. 너도 언젠가는 핀다."

그 말을 하며 김광석은 노래 〈일어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힘든 누군가를 위해 쓴 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는 분명히 그 시절의 자신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내 사람이여〉는 아버지의 기억으로, 〈일어나〉는 김광석과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두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는 지금도 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김광석의 노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광석형 노래는 슬퍼요. 목소리도, 가사도 슬퍼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들어요. 슬픈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이제는 그의 죽음보다, 그의 노래가 왜 아직도 불리는지 말하고 싶어요."

김광석과의 인연을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존재는 알리지 않겠다고 했다.

김광석 노래로 만든 스토리텔링 시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이 공연되는 스튜디오블루 로비에 김광석 노래 제목으로 스토리텔링한 시가 레터링으로 붙어있다.
▲김광석 노래로 만든 스토리텔링 시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이 공연되는 스튜디오블루 로비에 김광석 노래 제목으로 스토리텔링한 시가 레터링으로 붙어있다. 엘피스토리

추억이자 기억, 연민이자 사랑

김광석의 노래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청춘의 배경음악이고, 누군가에게는 상실을 견디게 한 버팀목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나게 한 문장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추억이자 기억이고, 연민이며 사랑이며 그리움이다.

30년이 지났지만 김광석은 과거형이 아니다. 노래는 여전히 불리고 무대는 그 노래를 현재로 옮긴다. 해마다 1월이 되면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아직도 그의 노래를 부르는가.'

답은 단순하다. 그 노래가 아직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30주기는 끝이 아니라 확인의 시간이다. 그의 노래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다시 그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의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권미강씨는 <바람으로의 여행> 홍보팀장입니다.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김광석 #뮤지컬바람으로의여행 #김광석다시부르기 #엘피스토리 #김광석3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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