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대교가 보이는 풍경 소록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그린 드로잉. 전날 한센병박물관과 구제탑에서 마주한 기록을 지나, 다음 날 아침의 풍경을 마주했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는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의 통로처럼 종이 위에 놓였다.
박수정
다음 날 아침, 소록대교가 시야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섰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물 위로 길게 놓여 있었고, 그 아래로 바다는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스케치북에 옮겼다. 선을 긋는 동안, 다리는 점점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의 통로처럼 보였다.
소록대교는 이동의 편의를 넘어,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소록도의 시간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었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다리가 놓였다고 해서 이해까지 함께 건너온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생각했다.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라고. 편견과 무지, 외면과 침묵을 넘어서는 일 말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 박물관이었다. 이곳에서 소록도의 이야기는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얻는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이 섬으로 건너온 두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전시 벽면의 연표에는 그들이 소록도에서 보낸 43년의 시간이 담담하게 이어져 있다.
'가슴에 품은 소록도 43년.' 이 문장은 두 사람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들의 선택은 영웅적인 결단이라기보다 매일의 반복이었다. 새벽마다 데운 우유로 건넸다는 첫 인사,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대하려 했던 태도. 전시는 그 시간을 미화하지 않고, 삶의 결로 기록한다.
전시 한편에 걸린 시 '소록도 작은할매 마가렛'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기록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과 관계의 층위가 시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저문 날짜들의 마지막 발길'이라는 구절은, 떠남조차 이 섬의 시간 안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날 내가 남긴 그림은 소록대교가 보이는 풍경 한 장이었다. 행사 제목처럼, 고흥의 풍경은 실제로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그림은 풍경을 담았다기보다 처음 가본 섬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서 있었는지를 기록한 흔적에 가깝다.
소록도를 기억하는 일은 한 장소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기록을 보고, 질문 앞에 멈추고, 풍경을 건너, 다시 사람에게 이르는 태도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처음 가본 소록도는 그렇게 내 안에 남았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더 또렷한 질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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