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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선언서 세계에 알린 외국인, 앨버트 테일러는 왜 잊혔나

    [주장] 독립선언서 해외 전파하고 제암리 학살 취재한 외국인 기자의 공적 외면 받아... 서훈 절실해

    등록 2026.01.06 10:27수정 2026.01.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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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포상은 일제하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포상함으로써 그 공훈을 선양하는 사업입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단지 유공자 개인을 선양하는 차원을 넘어 독립운동사를 재정립한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국민의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 주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 관련 공훈전자사료관의 설명입니다. 2025년 11월 17일 기준 독립유공자로 등록된 인원은 1만8665명입니다. 이 가운데 3·1운동 관련 공훈으로 서훈을 받은 이는 6587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인원 중 외국인은 77명입니다.

    대일항쟁기 동안 일어난 3·1운동은 우리나라의 역사·정치·사회적으로 볼 때 군주제에서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으로 체제가 전환되는 계기였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의 자유주의적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3·1운동과 관련한 공훈으로 서훈을 받은 이들이 가장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2025년 11월 현재 독립유공자 가운데 외국인은 77명입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서훈 당시 공적 심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서훈 상향이 거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립유공에 대한 서훈은 무엇보다도 공적이 온전히 반영돼야 합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로 불리면서도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3.1운동 공훈자임에도 말이죠. 그 중 한 분이 바로 '앨버트 테일러' 선생입니다.

     딜쿠샤를 짓고 살았던 앨버트 테일러.
    딜쿠샤를 짓고 살았던 앨버트 테일러. 서울시제공

    딜쿠샤의 주인이 아닌, 독립운동가 앨버트 테일러

    많은 이들이 앨버트 테일러를 떠올릴 때, 부인 메리 테일러와 함께 살았던 종로구 행촌동의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를 먼저 기억합니다. 그리고 딜쿠샤 건축물에 대한 사연을 소개를 많이 하죠. 저는 딜쿠샤보다도 앨버트 테일러 선생 개인과 그의 독립운동 공훈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딜쿠샤에서 전시 중인 자료에 따르면, 1919년 3·1운동 전날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서 발견한 독립선언서를 목숨을 걸고 반출해 전 세계에 타전했습니다. 일제의 철저한 통제 속에 묻힐 뻔했던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태평양을 건너 서방 세계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지와 용기 덕분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는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스코필드 박사 등과 함께 취재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당시 단지 기업인이고 또 'AP특파원'이었기에 당연한 직업적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평가절하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펜 뒤에 숨은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그는 '적국인'이라는 이유로 사우어하우스에 연금되는 고초를 겪었고, 끝내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일제에 맞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다 탄압받은 당사자였음을 증명합니다.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이제는 결단의 시간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베델, 스코필드, 호머 헐버트 등 여러 외국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며 그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일제 침략을 규탄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앨버트 테일러 선생의 공훈이 이들에 비해 뒤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3·1운동이라는 거족적 항쟁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사적 지분은 매우 큽니다. 특히 그가 살았던 집 딜쿠샤는 문화재로 지정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그 집 주인의 독립운동 공로는 외면받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앨버트 테일러 선생은 1948년 미국에서 생을 마감하며 '나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유해는 태평양을 건너와 현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그리운 아버지 곁에 안장돼 있습니다. 죽어서도 한국을 떠나지 못한 그의 깊은 사랑에 대해 이제는 대한민국이 응답할 차례 아닐까요?

    저는 지난 2025년 12월 23일 국가보훈부를 상대로 앨버트 테일러 선생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진행을 국민제안 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새해 1월 초 국가보훈부로부터 공식 답변을 받았으며, 요청 사항을 토대로 면밀한 자료 조사를 거쳐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순서에 따라 공적심사 절차를 준비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다만 국가보훈부가 포상 신청 순서에 따라 외국인 독립유공자의 공적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심사에 임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2026년 3·1절은 앨버트 테일러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최초로 해외에 전파한 지 10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또한 2026년 3월 14일은 그의 탄생 151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가오는 3·1절에는 '기쁜 마음의 궁전'의 주인이었던 앨버트 테일러 선생이 '독립유공자'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되찾아 지하에서나마 진정으로 기뻐하는 생일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유공자 호머 헐버트 박사를 두고 "대한 국민이라면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듯, 3·1독립운동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앨버트 테일러 선생의 공을 기려 하루빨리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딜쿠샤가 아닌 '앨버트 테일러'를 모든 대한 국민들이 기렸으면 합니다.
    #앨버트테일러 #삼일독립운동가 #딜쿠샤 #삼일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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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환경교육사이자 근대사 전문 해설가로 시민들 대상으로 사회환경교육 강사활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에 대한 해설, 태극기의 역사를 해설하는 활동가로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환경과 역사, 역사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시민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환경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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