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1.06 17:19수정 2026.01.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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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는 다이어리를 펼쳐 숫자를 적는다. 한 해를 마감하는 계좌 잔고를 기록하고 수입과 지출을 정리한다.
돈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계산적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보여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망설이지 않으려 한다. 고정 수입 없이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중년에게 돈은 욕망의 대상이기 전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흔 살까지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하는 날보다 일하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시간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온라인에서 만난 워킹맘 작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저도 집에서 글만 쓰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이 안 되니까. 사실 저는 이게 제일 궁금해요.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시는지? " 그렇게 솔직한 질문은 살면서 처음 받았다. 하지만 누구나 궁금할 법하다. 일정한 직장 없이 어떻게 생활이 가능한지.
지금, 나에게 많은 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살림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마흔 살 이전에 벌어놓은 돈으로 살고 있다. 총 15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고 퇴직했을 때 지방 소도시 기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현금이 있었다.
하지만 내일의 수입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부터 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운 좋게도 신규 분양 중인 공공임대주택에 3순위로 들어갈 수 있었고 보증금 1500만 원을 제외한 모든 현금을 금융권에 분산 예치하며 본격적인 돈 관리에 들어갔다. 안전한 직장 없는 삶을 위해, 그리고 노후를 위해.
당시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유행이었기에 나름 구상한 포트폴리오는 안전자산인 예탁금 70%, 위험군인 주식과 채권에 각각 15%씩 분산 투자했다. 그리고 정부에서 출시하는 비과세 고금리 장기 재형저축을 적극 활용했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7년 만기 재형저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탁금을 분기별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주식은 비교적 안전한 공모주와 우량주 위주로 했고, 채권은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에 소액씩 투자했다.
예탁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았던 주식과 채권이 항상 좋은 성적만을 주는 건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 때는 주식으로 몇백만 원 손실을 봤다. 채권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고 했지만 2012년쯤 1년 단기채권에 투자했던 회사가 만기 하루 전 부도가 난 경험도 있다. 결과적으론 전액 보상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부담을 생각하면 위험군에 속하는 투자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타격이 없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만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하다.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스크'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단어다.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무조건 피하기보다 관리함으로써 위험은 최소화하고 기회는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비과세 및 저율과세 혜택이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ISA는 장점이 많아 재테크에 유용하다. 나는 2016년 3월 출시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계좌를 유지하고 있다. ISA는 신탁형, 일임형, 중개형으로 나뉜다. 신탁형은 예적금 위주의 안정상품이고, 일임형은 금융사가 대신해 주는 방식이다. 중개형은 주식이나 채권 등 다양한 상품을 본인이 직접 운용할 수 있다. 요즘은 대부분 중개형이다. 나 역시 중개형 ISA를 선택해 운용 중이다.
ISA에서는 특판 상품이나 주식을 병행했고, 2년 전부터는 안전자산인 국채를 매입해 연 2회 이자를 지급받고 있다. 국채는 이자 수익뿐 아니라 평가 차익도 기대할 수 있어, 매매 시점을 잘 활용하면 예탁금보다 훨씬 괜찮은 수익을 준다. 다만 주식시장과 금리 변동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참고로 현재는 주식시장이 매우 좋다. ISA의 연간 납입 한도는 2000만 원이며, 총 납입 한도는 1억 원이다. 3년 이상 유지해야 세제 혜택이 확정되며, 최근에는 입출금 기능도 완화되어 활용도가 높아졌다. 절세 측면에선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내 나이 50대 중반, 그래서 15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니 적자 인생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조카들 용돈과 엄마 용돈, 경조사비를 챙길 정도는 된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활도 괜찮다. 다만, 올해 1월, 공공임대주택 재계약을 앞두고 보증금 증액 안내 서류와 주택 임대 기간이 총 30년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정확히 알게 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돈 관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고정 수입이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안정'은 가장 중요한 가치기에 매년 다이어리에 숫자를 기록하며 계좌에 찍히는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돈은 벌 때보다 지킬 때 더 신경이 쓰인다. 그렇기에 숫자를 정리하며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기록은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 시작하는 나에게 일종의 결산이자 예산이다.
그런데 만약 70세에 이 집을 나가야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서 살아야 하는 걸까. 노후의 안정을 위해 돈 관리를 하고 있는 지금 그 답을 혼자 고민하기엔 불안이 컸다.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 주택관리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70세에 집을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라는 거죠?"라고 물었더니 젊은 담당자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그때까지 돈을 열심히 벌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되지 않을까요?"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된다'는 젊은 담당자의 말에 그냥 웃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다이어리에 적힌 숫자들을 바라봤다. 그 숫자들이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는 걸까. 아직 답은 없다. 그럼에도 열심히 벌어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된다는 단순한 말이 최소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준 것 같았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숫자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믿어보기로 했다.
사람마다 새해를 맞는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는 일출을 보고, 누군가는 목표를 세우고, 누군가는 문장을 수집한다. 그러나 나는 숫자를 기록한다. 15년째다. 다이어리에 계좌 잔고를 정리하는 일이, 숫자를 기록한다는 그 말이, 적어도 내게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한해를 마감하는 정직한 숫자들의 움직임 속에 숫자의 기록은 내 삶을 말해주는 또 다른 문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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