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1.06 17:44수정 2026.01.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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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요, 사람들이 웃어주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요."
경남 진주 상대동에 거주하는 황서백(38)씨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노래강사이자 무명가수다. 6일 상대동 한 카페에서 서백씨를 만나 용접사에서 가수로 도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13년 전 우연히 주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결혼식 사회자와 돌잔치 MC로 무대에 서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의 노래를 따라 배우고 응원하는 이른바 '어머니 팬'만도 천여 명에 이른다. 서백씨는 무대 위에서뿐 아니라 사람들 곁에서 웃음과 힘을 건넨다. 지금은 무대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지만,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긴장으로 손이 떨릴 만큼 서툴렀다고 고백했다.
"무대가 가장 행복해요"

▲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황서백
"무대서 조명받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준비한 말에 사람들이 웃음이 터질 때마다 너무 신났어요."
주말에만 있는 결혼식과 돌잔치 사회자로 생계를 이어가기엔 벌이가 수월치 않아 평일에는 공사장 일용직과 대리운전, 청소 용역, 농장, 떡집 아르바이트까지 가리지 않고 생계를 이어갔다. 고된 나날이었지만 무대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늘 '남자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22살에 용접 자격증을 따 방위산업체에서 3년간 일했는데, 정말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묵묵히 일만 하는 것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황서백
결국 그는 '주말 특근 불참'을 이유로 공장에서 해고됐다. 생계는 막막했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공장을 떠나 무대를 택했다. 한때는 남성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한 기획사 대표님의 권유로 2023년 노래강사도 데뷔했다. 중앙시장과 자유시장 상인회 노래교실을 맡으면서 '노래강사 황서백'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동부새마을금고, 새진주신협, 명석면 주민자치센터 등으로 활동 무대가 점차 넓어졌다.
"부모님은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임영웅만큼은 못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 어머니들은 '영웅이보다 우리 서백 선생님이 더 낫다'면서 정말 큰 사랑을 주시죠."
서백씨의 인생에 '노래강사'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계획돼 있던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래교실에서 만난 어머니들의 뜨거운 응원은 그를 더 움직이게 했다.
그는 전국의 유명 노래강사들을 찾아다니며 노래 방식과 무대 매너, 관객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부르고 또 부르며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갔다.
그의 SNS에는 노래교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황서백
노래교실은 진주를 넘어 함안, 마산, 진해, 남해, 고성, 부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그가 가르치는 회원 수는 300여 명, 전국에서 그를 응원하는 어머니 팬은 천 명에 가깝다.
"어머니들이 저 볼 때마다 잘 묵어야 한다면서 밥이랑 간식을 너무 많이 사주셔서 노래교실 하면서 15kg이나 쪘어요."
아직 '무명가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는 그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2023년 3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노래 〈멋진 인생〉을 발표했다.
"화려한 스타 될 욕심 없어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황서백
"한 번뿐인 내 인생 후회 없이 살련다, 나는 멋진 남자이니까..."
노래 가사처럼 그는 '멋진 인생'을 향해 걷고 있다. 오는 7일에는 KBS <아침마당> 무대에 설 예정이다. 어머니팬들은 "우리 선생님 꼭 아침마당에 나가야 한다"며, 서백씨를 응원했다. 그도 못이기는 척하고 아침마당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 진주와 함안 곳곳에 붙이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이 과정에는 노래교실 어머니 팬들의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거리로 나서주셨다.
"화려한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노래하는 게 좋고,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노래를 가르치며 그의 진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저 같은 무명가수에게 어머니팬들의 박수와 앙코르는 전부예요. 그 소리가 있으니까 다시 무대에 설 힘이 나요.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저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에게 트로트를 잘 부르는 비결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자신감이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그 노래가 가진 배경이랑 사연을 알아야 해요. 트로트는 깊이와 울림이 있어야 하거든요. 감정이입이 안 되면 전달이 안 돼요. 노래강사를 하면서 일주일에 150곡, 한 달에 600곡 정도를 불러요. 노래교실 덕분에 반강제 훈련이죠. 복식에 힘이 좋아야 하고, 음악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해요."
그는 노래할 때 지난 공장에서의 시간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용접하던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이나,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노래할 때 살아나요. 힘들었던 경험들이 오히려 감정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것 같아요."
그에게 가장 인상 깊은 노래교실 참가자를 묻자, 그는 새진주신협 노래교실에서 만난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냈다.
"뇌졸중으로 10년 가까이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가족들의 극진한 돌봄으로 기적처럼 깨어나신 어머니가 계세요. 지인의 추천으로 제 노래교실에 오셨는데, 결석 한번 없이 꾸준히 나오셨던 분이라 기억에 남아요. 어느 날 병원에 다녀왔다며 환하게 웃으시더라고요. 담당 의사가 '요즘 무엇을 하시길래 뇌가 이렇게 건강해졌느냐'라고 물었다면서요. 노래교실 다닌다고 했더니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특히 함께 모여 노래 부르면 치매나 우울증 예방에 좋다고 했대요. 그럴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노래교실에는 혼자 사는 어머니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들, 자식보다 어린 강사에게 노래를 배우는 70~80대 어르신들, 그리고 아흔셋의 초고령 어머니까지 함께한다.
서백씨는 어머니들의 연세와 상관없이 모두를 '어머니'라 부르고, 어머니들의 이름을 외워 수업 중간중간 직접 불러준다.
"이름을 불러드리면 '50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네'라며 깜짝 놀라세요. 늘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만 불리다가 여기 와서 자기 이름을 들으니,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에는 어머니들과 함께 떠난 경주 여행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는 그날 어머니들의 가슴에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아드렸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이름표지만, 그것을 달아주는 순간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주로 떠난 소풍 날, 어머니들은 다시 소녀가 되어 함께 사진을 찍고, 웃으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인생의 절반을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어머니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추억을 쌓는 시간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의 미소 뒤에는 불안함도 여전히 남아있다. 노래교실 수입은 인원에 따라 들쭉날쭉해 늘 불안정하고,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서백씨는 오늘도 사람들 곁에서 노래한다. 다시 태어나도 그는, 노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꿈을 포기하지 않은 용접사의 ‘가수’ 도전 이야기
황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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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가수' 부끄럽긴요... 화려한 스타 될 욕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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