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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에 빠진 삵, 그날 나는 야생의 위태로움을 봤다

[주장] 얼음 아래 빠진 삵의 필사적인 탈출... 서식지 파괴가 더 큰 위협

등록 2026.01.07 10:11수정 2026.01.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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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충남 서산 간월호를 찾았다. 겨울 철새를 관찰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날의 기억은 탐조보다 한 종의 포유류로 더 깊이 남았다. 빙판 위에서, 그것도 대낮에 삵을 두 번이나 마주쳤기 때문이다.

삵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야생 고양이과 동물이기도 하다. 호랑이와 표범 등 대형 고양이과 동물이 멸종한 이후, 삵은 사실상 한반도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다.

은밀하고 야행성인 습성 탓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카메라 트랩이나 야간 영상으로만 확인된다. 야생을 자주 다니는 필자에게도 낮 시간대에 삵을 직접 마주친 경험은 흔치 않다.

대낮 빙판 위에서 마주한 멸종위기 맹수

 빙판위를 걷고있는 삵
빙판위를 걷고있는 삵 이경호

첫 번째 조우는 평온했다. 멀리서 얼음 위를 가로지르는 삵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음판 위를 천천히, 그러나 주저함 없이 걷는 모습은 분명 맹수였다. 몸집은 크지 않지만, 긴장감 있는 움직임에서 포식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맹수였기에 오늘 탐조의 '복'을 다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삵은 그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중대백로 몇 마리가 갑자기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장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하늘의 맹금류를 의심했지만, 시선을 물가로 옮기자 그 자리에 삵이 있었다. 정확한 순간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얼음 위에 앉아 있던 중대백로를 노리고 점프한 삵이 얼음물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빙판 아래로 떨어진 삵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살얼음을 딛고 올라서려 할 때마다 얼음은 부서졌고, 삵은 다시 물속으로 빠지기를 반복했다. 허우적대는 몸짓은 긴박했고, 이를 지켜보는 마음도 함께 졸아들었다. 다행히 삵은 짧은 시간 안에 가까운 육지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얼음에서 빠져나오는 삵
얼음에서 빠져나오는 삵 이경호

호랑이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양이과 동물은 물을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삵이 수영을 잘하는지, 혹은 물에 익숙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국내외에서 삵이 하천이나 습지 주변을 주요 서식·사냥 공간으로 삼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류와 양서류, 조류, 설치류 등 다양한 먹이를 포획하는 잡식성 포식자로서 물가 환경은 삵의 중요한 생활 무대다. 그렇다면 이날의 장면은 우연한 사고일 수도 있고, 서식 환경에서 반복되는 위험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물에 빠졌다가 올라온 삵의 몸은 젖어 있었고, 겨울 추위 속에서 그 상태로 버텨야 했다. 걱정이 앞섰다.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생에서의 하루는 늘 이렇게 아슬아슬할 것이고, 겨울은 특히 혹독한 계절일 것이다. 삵처럼 개체 수가 적고 서식지가 파편화된 종에게는 작은 사고 하나도 치명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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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호

우리가 만든 경계선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런 사고는 삵의 서식지 위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간척과 하천 직강화, 농경지 정비, 도로 건설로 인해 삵의 서식지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습지와 초지, 숲의 가장자리를 오가며 살아가던 삵은 이제 인간이 만든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 로드킬과 먹이 감소, 서식지 단절은 삵에게 일상이 된 위험이다.

삵은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다. 겨울 빙판 위에서 허우적대던 삵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만들어온 풍경 속에서 야생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 삵의 생존을 응원한다.
#삵 #멸종위기종 #간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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