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갑작스러운 '핵 논의',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경실련 통일협회 칼럼 시리즈 4편]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핵심 질문

등록 2026.01.08 09:59수정 2026.01.0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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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 시리즈는 2025년 9월 2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진행한 '남북관계 정책방향 전문가 설문조사 기자회견'의 후속으로 기획됐습니다.[기자말]
윤석열 정부의 적대적 대북정책과 계엄 사태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을 때, 많은 이들은 남북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임명과 전 정부 독트린 폐기, 대화 채널 복구 의지 등은 분명한 변화의 신호였다.

그러나 9월 이후 국정의 무게중심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정부는 핵 재처리와 농축 문제를 대미외교의 핵심 의제로 올렸고,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그 논의를 핵추진잠수함, 즉 핵잠으로 확장시켰다. 경제적 목적이라던 초기 설명과 달리 핵잠은 군사적 성격을 분명히 띠고 있으며, 중국과의 관계에 민감한 신호를 던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논의를 빠르게 추진했고, 이는 평화를 강조하던 초기 기조와 묘한 긴장을 만들어냈다.

핵잠 논의는 단순한 무기체계 도입이 아니다. 핵잠 보유는 한국의 안보지형뿐 아니라 한미동맹 구조, 중국의 안보 인식, 대만해협 정세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도의 전략 사안이다. 미국은 핵잠의 건조를 미국 내에서 하길 원하지만, 한국은 국내 건조를 선호한다. 중국은 한국이 핵잠 도크를 확보하는 것 자체를 유사시 미 해군의 전진 거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핵잠은 기술적·군사적 사안이면서 동시에 외교적 신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이 민감한 사안을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개정된 미국의 NSS는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문서에서 북한 비핵화는 뒷전으로 밀렸고, 대신 대만의 안전이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과 일본에는 국방비 증액 요구가 담겼고, 실제로 한국의 내년 국방비는 7.5%나 증가했다. 미국은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더 큰 역할을 수행할 국가로 상정하고 있으며, 한국이 동맹을 유지하는 한 이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의 정면 충돌을 원치 않으며, 대만해협에서의 직접 참전은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국의 요구와 중국의 견제를 어떻게 동시에 관리할 것인가. 바로 여기서 핵잠이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핵잠은 한국이 동맹 기여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미국의 '전면참전 역할' 요구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미국은 자국의 전략자산이 있는 곳을 전장으로 만들지 않는다. 양안문제가 불거지자 대만 TSMC를 대신해 한국 반도체라는 '대안'을 우선 마련하려 했던 트럼프의 행적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이 일정 수준의 전략기술과 전력을 확보하면 미국은 한국을 최전선 전력으로 활용하기보다 후방지원 전력으로 재배치하게 되고, 이는 한국 입장에서 참전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가진다.

동시에 중국에게는 "우리는 전진 기지가 아니라 제한된 지원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즉, 핵잠은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적 위치를 조정하기 위한 장치, 동맹 부담은 감당하되 직접 충돌은 피하는 '역할 재조정 전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남북관계의 미진한 회복도 설명 가능하다.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안정되면 한반도 긴장도가 낮아지고, 이는 동맹 구조 조정이나 핵잠 추진을 정당화할 전략환경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지나친 긴장은 중국과의 충돌을 자극해 핵잠 도입 자체가 외교적 부담이 된다. 결국 한국은 동북아 구조 속에서 '적정 수준의 긴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제약 아래 놓여 있다.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더디게 보이는 이유는 단순한 정책 무능이 아니라, 더 큰 전략 구조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핵잠·핵 재처리 논의는 평화 기조와 충돌하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다. 이는 한국이 변화한 동북아 전략 속에서 어떤 위치를 선택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핵심 질문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만이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속에서 '어떤 전쟁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역할을 조정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외교적 장치를 선택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배정현(경실련 통일협회 간사)
#통일 #한미동맹 #핵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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