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웅진주니어
마침내 시계방 할머니와 마주한 순간, 아이와 할머니 사이에는 놀라움과 안도의 기운이 흐른다. 무뚝뚝한 인상과 달리 시계방 할머니는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먼 길을 찾아온 아이의 옷을 말없이 씻어주고, 살뜰하게 음식을 챙겨준다. 온천을 떠올리게 하는 시계탕 안에는 다양한 시계들이 몸을 담그고 있다. 늘어지고 축 늘어진 시계들의 모습은 크로노스에 지친 현대인의 얼굴을 닮아 있다.
나는 엄마를 기다려주었다.
시계탕에서 모녀의 시간은 회복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하루하루를 나사 조이듯 빽빽하게 조여 살아오던 엄마와 달리, 아이는 엄마가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다. 시계탕 안에는 탈진한 시계들이 가득하고, 기력을 되찾은 시계들은 하나둘 줄을 지어 숲을 빠져나간다. 회복한 엄마 역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살바도르 달리의 명작 '기억의 지속'을 오마주한 장면이다. 본질을 잃고 축 늘어진 시계들 곁에서 편안히 잠든 모녀의 모습은 평화롭다 못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히 부엌일을 하고 있다.
아이는 미소를 띤 채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활짝 편 아이 손바닥 위에는 나사처럼 보이는 시계 부품 몇 개가 놓여 있다. 이 장면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던 아이와 엄마의 시간이 마침내 융화되었음을 보여주는 화해의 엔딩이다.
작가는 크로노스에 젖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어른에게는, 아이 역시 주체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임을 조용히 말한다.
살아가며 진정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집중과 몰입으로 삶을 음미하는 시간이다. 사람은 영원히 쳇바퀴 위에서만 살 수 없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때로 그 쳇바퀴에서 내려오는 용기가 필요하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물길을 바꾸고 파도를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카이로스에 닿을 수 있다.
시계탕
권정민 (지은이),
웅진주니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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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시계 곁에서 잠든 모녀, 왜 뭉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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