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단비 진주대첩 2차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운 장군과 군사를 기리는 정충단비.
이영천
왜군이 불붙은 수레에 기름을 싣고 성문으로 돌진했다. 불길이 문짝을 태우고, 성안으로 검은 연기가 밀려들었다. 황진은 병사들을 독려, 물을 뿌리고 흙을 덮게 했다. 그는 잠시도 성루를 떠나지 않았다.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점차 부상자가 늘고 서서히 지쳐갔다. 그랬어도 수성의 의지만은 강고했다. 왜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들었다. 하늘에는 연기가 자욱했고, 남강은 불빛에 흔들리며 붉게 널름거렸다.
황진과 김해부사 이종인이 동문에서 분투했다. 김천일은 서쪽을, 최경회는 북문을 지켰다. 고종후는 남문에서 지휘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겠다고 다짐했다.
26일, 적의 공격이 한층 거세졌다. 성 밖의 민가들이 불타올랐고, 성안이 혼란에 빠졌다. 황진은 병사들 선두에서 싸웠다. 그는 칼을 휘두르며 적을 베었고, 쓰러진 병사들을 부축했다. 그의 갑옷은 피와 땀으로 얼룩졌다.

▲남강과 촉석루 진주성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성의 남장대인 촉석루. 앞으로 짙푸른 남강이 유유히 흐르고, 촉석루 아래 절벽 밑 의암이 의연하다.
이영천
깊은 밤, 황진이 성루에 올라 남강을 바라보았다. 불빛 하나가 강물을 따라가고 있었다. 누군가 띄운 등불이었다. 임진년 등불처럼 유등을 띄워 밖의 아군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였다. 그 등은 희망보다는 작별 인사였다.
28일 새벽, 동문 밖이 고요했다. 황진이 병사들과 함께 동문으로 향했다. 왜군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밖을 살피던 와중, 시체 더미에서 발사된 왜군 총탄이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검을 쥔 채 그대로 쓰러져 절명하고 말았다.

▲남강과 진주성 의암에서 바라 본 남강과 진주성. 바로 위에 촉석루가 듬직하다.
이영천
29일, 장마에 성문이 허술해져 있었다. 왜군이 귀갑차를 앞세워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종인이 검을 높이 치켜들고 목청껏 외쳤으나, 포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적이 몰려들었고, 불길이 성루를 뒤덮었다. 이종인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다. 여러 장수가 남강에 몸을 던졌다.
죽음이 보였어도 끝까지 싸웠다. 전투가 끝난 뒤, 성은 불바다가 되었다. 남강의 물로도 끝내 끄지 못한 불길이었다. 성안 뭇 생명이 모두 도륙 당했다. 강아지나 닭까지 그러했다. 어느 기록은 7만이 넘는 백성이 죽었다고 적는다. 왜군 사상자도 3만 8천이었다. 성벽이 무너지고, 혼백만 남았다. 말없이 흐르는 남강의 물빛도, 흐리고 탁했다.
남강의 마지막 등불, 논개
전투가 멎었다. 왜군이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벌인다. 성으로 자진해 들어 온 한 여인이 있었다. 논개였다. 그녀가 자청해 왜군의 연회에 나간다. 고운 옷을 입고 술을 따랐다. 왜장이 잔을 들고 웃자, 그녀가 미소로 화답한다. 왜장이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마음속엔 '술은 조선인의 피요, 안주는 군사들의 의기다'라는 비수를 숨기고 있었다.

▲논개(표준_영정) 윤여환 화백이 그린 논개의 표준 영정. 2025년 12월 현재 촉석루 옆 '의기사'는 공사 중이어서, 논개의 영정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영천(국립진주박물관_촬영)
그녀가 왜장을 강가로 유인해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다. 강물이 솟구쳐도, 가락지 낀 손은 풀리지 않았다. 둘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바위는 의암(義巖)이 되었다. 논개의 산화는 결코 복수에 머물지 않았다. 의로운 환생으로 남강의 마지막 등불이었다. 임진년의 수많은 유등처럼 말이다.

▲의암 촉석루 아래 진주 남강에 논개의 의로운 정신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의암. 강물이 논개처럼 맑고 짙푸르다.
이영천
전투가 끝나자 폐허만 남았다. 전화가 모든 걸 삼켜버렸다. 허물어진 성벽이 강으로 굴러 흩어졌다. 말 없는 남강이 모든 걸 품어 안았고, 물결마저 숙연해졌다. 진주성은 무너졌지만, 나라는 살아날 한 줄기 빛을 얻었다.
이 성에서 10만이 넘는 생목숨이 스러졌다. 비극이다. 결코 침묵할 수 없다. 진중한 추모이고, 묵상이다. 뭇 생명이 사라진 불탄 성곽, 그것이 조선의 마지막 방패였다. 수만의 군사를 잃은 왜도 더는 전라도로 진군할 여력을 잃었다. 전투 막바지에, 김시민의 후임인 목사 서예원이 숲으로 달아난다. 겁에 질려 며칠을 숨었다가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그의 죽음은 어떤 기억으로도 남지 못했다. 뇌리에서 지워졌다.

▲촉석루 남강의 의암과 사적비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바라 본 촉석루. 진주대첩의 정신처럼 웅장하고 올곧다.
이영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다. 진주는 이제 폐허가 아니다. 푸르른 남강은 여전히 성벽 아래를 흐른다. 왜적이 불태운 돌은 강가 기단이 되었고, 강물 위로 의암과 촉석루는 늠름하다. 매년 가을 남강에 등불이 뜬다. 아름답게 빛나는 유등 행렬이, 천천히 강 위를 떠가며 옛 전쟁을 회억한다.
남강의 겨울 바람이 맵차다. 흐르는 강물의 파랑에서 격렬했던 전란이 환영처럼 일렁인다. 황진의 매서운 검 끝, 김천일의 외침, 논개의 마지막 숨결이 그 물결에 섞여 있다. 찬연한 가을밤이면 흥겨운 축제의 음악 속에서 강물 위 등불을 바라보지만, 진주성은 알고 있다. 그 등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살아서 싸운 자와 죽어서 지킨 자가 뿜어낸 찬연한 빛이라는 사실을. 차가운 남강이 포근히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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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더미에서 날아온 총탄, 끝까지 맞선 장군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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