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39주기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 없어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서 추모제 열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참석

등록 2026.01.12 11:43수정 2026.01.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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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전 길놀이 공연을 펼치는 춤패 '마구잽이' ,서강대학교 탈춤반·풍물반 출신 동문들로 구성되었으며, 민주화 운동 관련 행사에서 꾸준히 헌신적인 공연을 펼쳐왔다.
식전 길놀이 공연을 펼치는 춤패 '마구잽이' ,서강대학교 탈춤반·풍물반 출신 동문들로 구성되었으며, 민주화 운동 관련 행사에서 꾸준히 헌신적인 공연을 펼쳐왔다. 이호인

10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 교육동 다목적홀에서 '제39주기 박종철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군사정권에 의해 남영동 대공분실에 강제 연행된 뒤 고문사한 박종철 열사를 기리기 위한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박종철기념사업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였으며,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문부일 전 검찰총장, 이부영 자유언론인실천재단 이사장,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 정·관계 및 시민사회 주요 인사를 비롯해 시민 120여 명이 참석하였다.

추모제는 먼저 민중의례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 간 영령들을 위해 묵념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후 인사말에 나선 박동호 신부 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몇해 동안의 국내외 정세를 언급하며 국가 폭력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박 이사장은 "전쟁 등 끔찍한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우리나라도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혼란스러웠다"며 "법과 이성보다는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진리와 자유 같은 숭고한 가치가 잊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하며 "비록 요란하지 않더라도 서로 손을 잡고 폭력과 위협을 막아내며, 한 걸음씩 역사를 진척시켜 나가자"고 당부했다.

 인사말을 전하는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을 전하는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이호인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번 추모제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정식 개방된 후 열리는 첫 행사라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 이사장은 "해방 후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자유당,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정권 등 42년여 간 비민주적인 정권이 유지되었다"며 "오늘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인사의 희생 위에 세워졌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6월 항쟁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말도 안 되는 비상계엄 사태를 시민의 힘으로 단시간에 극복해냈다"며 "이는 우리 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한 이 이사장은 "이번 39주기 추모제가 단순한 개인에 대한 추모를 넘어,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이 발붙일 수 없도록 다짐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사말을 전하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인사말을 전하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호인

추모사의 첫 시작은 예정에 없던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권 장관은 단상에 올라 "보훈부 장관으로서 이곳에 처음 왔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열사의 부친 박정기 씨가 남긴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국가 폭력으로 자식을 잃고도 마음껏 울지 못했던 시대의 침묵과 공포를 되짚었다.


이어 권오을 장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텔레비전으로 '12.3 계엄 소식을 듣고 '장난하나',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는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도둑질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한 권 장관은 "시민들이 깨어 있었기에 계엄을 극복할 수 있었다"며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권 장관은 25년째 표류 중인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제정에 대한 강한 추진 의지를 보였다. "장관 취임 후 아직도 이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박종철, 이한열 등 많은 분이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금년 중에 반드시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리라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사회를 맡은 이현주 박종철 센터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밝힌 독립·호국·민주의 균형 잡힌 보훈 정책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것 같다"며 화답했다.

 추사를 전하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현직 보훈부 장관이 추모제에 참석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사를 전하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현직 보훈부 장관이 추모제에 참석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호인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박종철 열사 죽음의 역사적 무게를 강조했다. 장 회장은 "우리가 왜 박종철을 기억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박종철은 단순한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든 상징"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종철이의 죽음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그로 인해 지금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한, 박종철이라는 이름은 결코 잊힐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학교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이강준 의장은 동료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선배 박종철 열사를 기리는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 의장은 기념관 소개 책자에 적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조항을 언급하며 "이 문장들은 그저 종이에 적힌 글자가 아니라, 박종철 선배님과 같은 수많은 이름 위에 쓰인 약속"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고문실에서 거짓을 강요받지 않지만, 여전히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고 강조한 이 의장은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단지 교과서 속 문장으로 남기지 않겠다. 민주주의를 돌아볼 때마다 다시 떠올려야 할 살아있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그 뜻을 전달하겠다"고 다짐하며 "박종철 선배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추모사를 맺었다.

 추모사를 전하는 이강준 서울대학교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의장과 단과대 회장들
추모사를 전하는 이강준 서울대학교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의장과 단과대 회장들 이호인

박종철기념사업회가 2025년 신설한 청년 지원 사업 '박종철의 친구들' 1기 대표로 연단에 오른 신민석 씨는 먼저 서울 관악구 '박종철 거리'를 걸으며 느낀 소회를 전하며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민주화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숨과 시간, 결연한 의지로 지켜진 것임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추모가 과거의 의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신씨는 "기억은 애도의 형식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며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고, 하찮게 취급될 수 있는 일의 가치를 증명하며 노동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겠다"고 밝히며 "오늘 이 자리에서의 기억을 내일의 책임으로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2025년 박종철 청소년 장학금을 수상한 경문고 인권동아리 '키비처'의 이선우, 강윤동 학생이 추모사를 전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선우 군은 "장학금을 받은 후 제주 4.3 추모, 실미도 유적지 답사, 세계 난민의 날 플래시몹 등 다양한 평화 활동을 이어왔다"고 활동 내역을 보고하며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봉사가 아니라,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념을 지킨 열사의 모습을 보며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어 강윤동 군은 "장학금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기억을 현재로 이어가라는 무거운 책임임을 깨달았다"며 "기억은 되새김에 머물 때가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박종철 열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었다"며 "2026년에는 평화 조형물 설치 등을 통해 폭력이 아닌 연대와 존엄의 가치를 일상 속에 새기겠다"고 약속했다.

추모제 말미에는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가 유족 인사를 전했다. 박 씨는 "유족이기 이전에 민주시민의 이름으로 제안한다"며 내년 40주기를 앞둔 각오를 밝혔다.

그는 "더 이상 영정 속의 박종철이 아니라, 살아서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펄쩍펄쩍 뛰는 박종철이 친구들의 손을 잡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해 정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추모의 물결은 행사 당일로 끝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월 10일부터 16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지정해, 민주화운동기념관 5층 조사실(509호) 앞에서 시민들이 헌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4층 전시실에서는 열사에게 편지를 남기는 행사도 진행된다. 서울 관악구 박종철센터에서도 오는 17일까지 추모 사진전이 열려 시민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이날 권오을 장관의 남영동 방문은 한 부처 장관의 의례적 추모를 넘어, 보훈 정책의 지향점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훈'은 주로 국권을 되찾은 '독립'과 외부 위협으로부터 영토를 지킨 '호국'에 무게가 실려 왔다. 그러나 권 장관은 취임 이후 강조해온 '독립·호국·민주의 균형' 기조를 현장에서 드러내며, 국가 권력의 폭력에 맞서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민주화운동' 역시 국가가 예우해야 할 보훈의 한 축임을 분명히 했다.

최근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자체가 국가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더욱 부각되는 상황에서, 보훈의 외연 확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제기된다. 권 장관이 언급한 '민주유공자법의 연내 제정'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보훈이 '독립·호국·민주'라는 세 축 위에서 재정립되는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종철 열사 39주기 추모제의 현장 분위기와 그 속에 담긴 '보훈의 확장'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장 르포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박종철 #박종철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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