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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교통으로 본다" 이 문장을 위해, 일본은 16년을 싸웠다

일본 영화에 자전거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

등록 2026.01.12 17:04수정 2026.01.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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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산업 전환이 본격화된 2026년 한국을 앞두고,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는 일본 사례를 통해 전환금융과 지역 에너지 전환의 조건을 살폈다.[기자말]
 일본 시내에 놓인 자전거의 모습
일본 시내에 놓인 자전거의 모습 녹색전환연구소

일본 영화를 떠올리면 자전거를 탄 주인공이 먼저 떠오른다. 눈 덮인 언덕을 자전거로 내려가는 영화 <러브레터>나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가 낡은 자전거를 타고 공중목욕탕을 오가는 장면들. 일본 영화 속 자전거는 배경 소품이 아니라 일상을 움직이는 존재다.

반면,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등하굣길과 동네 골목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자동차다. 이는 도시에서 자전거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기후위기 시대에 교통 부문 온실가스가 좀처럼 줄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은 자전거를 어떻게 탈탄소 수단이자 고령사회 대책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정부가 어떻게 얽혀 있을까?

이에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일본 국토교통성 자전거본부, 자전거활용추진연구회, 나고야시의 도로 재배분 실험 현장을 찾았다.

 일본 자전거활용연구회와 한국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 구성원들이 도쿄에서 자전거 정책 세미나를 진행했다.
일본 자전거활용연구회와 한국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 구성원들이 도쿄에서 자전거 정책 세미나를 진행했다. 녹색전환연구소

"일본 자전거 문화를 제도화하기까지의 '싸움'"

도쿄에서 처음 만난 곳은 정부가 아니라 자전거활용추진연구회(자활연)란 곳이었다. 일본의 자전거 문화를 제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단체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2000년 고바야시 시게키씨가 만든 곳이다. 현재는 자전거 정책을 연구·제안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자활연 관계자들은 연구소에 2016년 '자전거활용추진법' 제정을 돌아보며 이같이 회고했다. "국회와 관료 조직을 계속 오가며 법에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본다'는 문장을 넣기 위해 싸웠습니다." 자전거를 건강·레저 수단이 아니라 도로와 예산을 배정받는 교통 인프라로 올려놓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이 싸움의 결과, 자전거활용추진법이 제정됐다. 나아가 이 법을 실제로 굴리는 컨트롤타워로 국토교통성 내 자전거본부가 만들어졌다. 주목할 점은 자전거본부에는 도로 담당 부서뿐 아니라 일본 환경성 등 여러 부처 장관이 위원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환경·관광·안전·건강 정책 속에 흩어져 있던 자전거 과제를 한 테이블에 모아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는 구조다.


중앙정부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고, 광역지자체는 그에 맞는 자전거 활용계획을 수립한다. 이어 기초지자체 200여 곳이 자전거 사상자 감소, 출근시간대 자동차 이용률 감소 등 정량 목표를 담은 계획을 만든다. 기준에 따라 도로를 재편하는 지방정부에는 국비 보조가 붙는다. 추진 상황은 일본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일본 시내에서는 '마마차리'라고 불리는 생활형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일본 시내에서는 '마마차리'라고 불리는 생활형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병원·마트를 혼자 갈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발'


국토교통성 자전거본부의 이와부치 타헤이 부장은 일본 자전거 문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일본에서는 자전거와 철도가 한 세트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자전거는 통학이나 통근의 첫 1~3km를 맡는 수단입니다." 집에서 자전거로 역까지 이동해 대형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 두고 전철을 이용한 뒤, 도착역에서는 다시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구조가 정책 설계의 전제로 설명됐다.

타헤이 부장은 자전거본부의 역할이 명료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존재하는 자전거 이용 생활 패턴이 도로 기준과 예산, 계획 속에서 교통수단으로 인정받도록 뼈대를 세우는 일이라는 것.

자전거 중심 교통 구상은 일본이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면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여러 지자체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전면허 반납 운동과 전기자전거 보급 지원을 함께 추진하고 있었다. 일부 지자체는 운전면허를 자발적으로 반납한 고령자가 전기자전거를 구입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했다. 적게는 1만 5000엔(약 13만 9000원)부터 많게는 5만 엔(약 46만 원)이었다.

고령자에게 전기자전거는 자동차 면허 반납 이후에도 일상 이동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수단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자립적 이동수단에 가깝다. 자활연 역시 자활연은 "언덕이 많고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동네에서 전기자전거는 병원·마트·복지관을 혼자 갈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발"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이동권·건강권·돌봄 부담 완화 한 번에 묶은 정책 도구 = 자전거

일본에서 자전거는 노인 이동권·건강권·돌봄 부담 완화를 한 번에 엮는 정책 도구다. 국토교통성 자전거본부가 설계한 도로 기준과 계획은 이런 복지·건강 정책의 인프라 바탕이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기자전거 비중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전기자전거는 전체 자전거의 약 7%에 불과하지만, 신규 판매 자전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사실 자전거가 자리 잡은 배경에는 자동차를 마음껏 쓰기 불편하게 만든 제도 덕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승용차 차고지 증명제'다. 1960년대부터 일본은 자동차를 사려면 일정 반경 안에 자신의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증명하도록 했다. 물론 불법 노상주차도 있었고 부유층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한동안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자 도쿄·오사카 등 일본 주요 대도시는 경차까지 차고지 증명 대상을 확대하고 단속을 강화했다. 지금은 주차 공간이 없는 집에서는 차를 아예 사기 어렵다. 땅값이 비싼 도시에서 자동차를 위해 땅을 떼어 두느니, 집 앞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가고 나머지 이동은 철도정기승차권으로 해결하는 쪽을 택한 가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서 국가 계획이 인정하는 자전거 통행공간은 크게 세 가지다. 왼쪽부터 자전거도, 자전거전용통행로, 차도혼재의 모습.
현재 일본에서 국가 계획이 인정하는 자전거 통행공간은 크게 세 가지다. 왼쪽부터 자전거도, 자전거전용통행로, 차도혼재의 모습. 녹색전환연구소

일본의 자전거 도로 체계도 한국과 다르다. 일본에서 국가 계획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자전거 통행공간은 세 가지다. 보도와 차도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 자전거도, 차도의 일부를 자전거만 다니도록 지정한 자전거전용통행로, 자동차와 자전거가 속도와 차로 폭을 조정해 함께 다니는 차도혼재 도로다. 국토교통성과 경찰청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도 위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장기적으로 줄여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 세 유형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새 도로를 내기 어려운 곳에서는 기존 자동차 차로 폭을 줄이고 색과 차선 구성을 바꾸는 차도혼재형 도로가 많이 도입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나고야시는 이런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자동차 통행량이 많은 국도 19호 '오스 지구'에서 시는 넓은 다차로 중 한 차로를 과감히 떼어내 자전거 전용 통행로로 바꾸는 사회실험을 진행했다. 인도 쪽 첫 차로를 자전거 공간으로 지정하고 색깔 포장과 폴을 설치한 것이다. 이후 흐름을 분석한 결과, 자전거의 차도 주행 비율은 크게 늘고 보행자와 자전거 충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인도 폭은 넓어지고 차로 수는 줄었지만, 우려했던 자동차 정체는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시는 나고야역·시청 인근 구간에서도 비슷한 실험을 이어가며 차도를 재배분해 보행과 자전거를 앞세우는 상설 구조로 갈 근거를 쌓고 있었다.

 일본의 소도시에서 한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 중이다.
일본의 소도시에서 한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이동 중이다. 녹색전환연구소

따릉이를 많이 타도 '교통수단분담률'이 그대로인 이유는

한국에서도 따릉이 같은 공공자전거 이용은 급증했지만, 전국 어느 도시나 자전거의 교통수단분담률은 2%대에 그친다. 교통수단분담률은 사람들이 통행할 때 하루 중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분포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한강 같은 하천변 레저용 자전거도로와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계속 늘어나지만, 학교와 직장을 잇는 안전한 자전거 네트워크와 자동차 차로를 재배분한 구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전거도로 총 연장은 2만 7754km다. 이 중 74.4%가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이고, 전용도로·전용차로·우선도로를 모두 합쳐도 4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일본은 자전거도로 통계를 낼 때 보도 위 보행자·자전거 겸용구간은 장기적으로 줄여야 할 대상으로 보고 제외한다.

대신 자전거도, 자전거전용통행로, 차도혼재(차로 재배분) 세 가지 형태만 '자전거 통행공간'으로 집계한다. 이 연장이 2024년 기준 약 7570km다. 자전거도로 총 연장만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긴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유형의 자전거도로를 어디에 깔아 교통수단으로서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본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일본에서 만난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자전거를 여가용 기호품이 아니라 도시 생활을 떠받치는 사회 인프라로 볼 것인가가 출발점"이라고. 한국에서 필요한 것도 자전거를 고령사회 대책, 탈탄소 정책, 생활 교통의 한 축으로 묶어내는 컨트롤타워다.

자동차 차로와 주차 공간을 조금 덜 편하게 만드는 대신 아이와 노인이 안심하고 페달을 밟을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선택이다. 그런 선택이 이뤄질 때, 한국 영화 속에서, 실제 도시의 거리에서도 자전거가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고이지선씨는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장입니다.
#녹색전환연구소 #일본 #자전거 #교통 #전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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