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가덕도에 만약 신공항이 건설된다면 이 터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경험할 기회마저 빼앗기게 될 터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책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는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역사적인 공간을 굳이 찾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잊지 말고 기억을 하기 위함이니까.
가덕도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에게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함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곳, 지켜내야 할 당위를 그대로 전해주는 곳. 특히 내겐 가덕도를 알게 된 게 어쩐지 운명 같다.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이미지가 가덕도의 국수봉을 오르는 길에 실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치한다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내게 떨어진 100년의 시간, 그리고 가덕도의 시간, 생태의 시간.
여름을 지나면서 가덕도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외양포 포진지에서 조금만 몸을 돌려 나오면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고, 김현욱 활동가님을 따라 그곳을 오르면서 우리는 가덕도에 관한 역사와 생태계를 알아간다. 앎은 우리를 확장시킨다. 모두 여름에 있던 일들이다. 역시 이번 여름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불쑥 떨어진다. 맞아떨어지는 이 기이한 느낌. 귀한 사람들과 함께 기후환경 프로젝트로 여러 지역을 방문해 활동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며 나는 가덕도의 영혼과 맞닿는 운명을 다시금 느꼈으니 말이다. 그리고 외양포나 대항항이나 눌차도나 국수봉이나 가덕도의 곳곳을 보고 걸으면서 인간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덕도도 역시나 지역 발전이라는 계획 속에서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논리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발전이란 명목하에 파괴될 위기에 처한 곳이 어디 한둘일까. 무리한 그 계획에 의해 추진되려는 신공항 건설은 무조건 막아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가 오른 가덕도의 산은 아주 오래된 숲이었고,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섬이었고, 차라리 아름다운 관광지라도 좋으니 남겨두어야 하는 곳이었다.
여름 숲은 모기가 들끓고, 빽빽한 나무들로 우거진 곳이라 험난했고,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는지라 방문한 인간들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데도 아주 오래된 나무 둥치를 만지게 한다. 꼭꼭 숨겨둔 풍경을 보여준다. 반딧불이나 잘 모르는 꽃을 보여주고, 지친 우리를 퍼져 앉게 한다.
그제야 그 숲을 알게 한다. 초봄이면 동백꽃으로 우거진, 자연적으로 생성된 꽤 큰 동백나무 군락지. 해변으로 이어지는 그 동백나무 숲에 앉아 땀을 식히며, 한낮임에도 조도가 낮아 어두운 숲에 깔리는 그 적막을 본다. 거기 앉아 시간의 더께를 생각해 본다. 녹음 아래 가덕도의 곳곳은 굳건히 그대로 있다. 이런 곳을 한순간에 제거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왜 인간 따위가 세계를 결정하고 침범하고 파괴하게 두나. 신 따위는.

▲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이제 나는 이 여름을 지나면서 가덕도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 쪽보다는 아는 사람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진다. 죄책감은 수시로 내게 달라붙는 감정이기에, 가덕도와 여름은 내내 죄책감과 자주 겹친다.
가덕도를 겨우 두어 번 마주친 것에 불과하지만,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이 아름다운 섬이, 바람의 뼈대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섬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가덕도를 알게 된 사람이고, 이 섬을 지키고픈 사람이고, 마음 졸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섬의 허리를 베어내고 굳이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을까. 이 터에 머무는 그 수많은 생명들은 어디로 이주해야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존재조차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고 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어떡해야 할까. 그저 이 터를 내버려두는 방법 외에는 해결법은 없는데. 이걸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속수무책인 겨울에 여름을 돌이켜본다. 가덕도의 겨울은 또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다시금 귀를 기울여 봐야지.
[필자 소개] 한연희 시인: 2016년 <창작과 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데뷔. 시집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공저 <연희와 민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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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섬을 '아는 사람'이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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