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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섬을 '아는 사람'이 되어서 다행이다

[섬을 지키는 문장] 여름에 가덕도 외양포 포진지에서 보고 온 것

등록 2026.01.13 14:17수정 2026.01.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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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신공항 건설 논의 속에서 섬의 역사와 생태,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이 지워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연재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연구자가 함께 가덕도를 다녀온 후 기획되었습니다. 매회 필진이 릴레이 형식으로 원고를 이어받아, 섬의 다양한 풍경과 장소성을 문학적 언어로 기록합니다. 이 연재가 성장 중심의 논리에 가려진 가치들을 되묻는 연대의 목소리가 되길 바랍니다.[기자말]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녹음이 우거진 포진지라고 썼다 지운다.

'녹음이' 지우고, '우거진'을 지우고, '포진지'만 남는다. 외양포 포진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낱말들 같아서. 그러나 내가 그 여름에 보고 온 그곳은 온통 초록이었다. 아주 짙은 녹음 아래 햇볕은 잠시 비껴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흥건해지는 폭염의 날씨에도 정작 포진지를 그대로 보존한 그곳은 서늘한 기운마저 들었다. 그러니까 제방을 쌓은 진지 주위로 대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은 요새에 가깝다. 그래서 이렇게 적막하고, 어둡고, 축축한 것일까.

잊지 말고 기억하기 위해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100년 전에 여긴 전쟁을 벌이던 곳이었다. 이 터 입구에 적힌 안내문에도 간략하게 설명되었듯이, 이곳은 주민들을 몰아내고 일본군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주둔한 현장이자 외양포의 아픈 역사다. 그리고 진지를 세운 터가 바로 여기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전쟁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벽에 움푹 팬 것은 어쩌면 포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리 크지 않은 터를 돌아다니며 보게 되는 것은 발사대나 화약고, 상황실 등이다. 그 터에 남은 몇 개의 동굴 같은 곳을 들어갔다 나올 수가 있는데, 그 안은 마치 시대를 거슬러 간 느낌을 준다. 그만큼 역사적 현장이 잘 보존되어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터를 관리하는 직원이 상주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쩐지 습한 기운과 함께 서늘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아무래도 이곳에 서린 영혼이 여기를 가꾸고 있는 것만 같고. 내내 그런 생각을 한다. 어디선가 일행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져 오는 것을 들으며, 크지 않은 터를 걷다가 말이다. 생각과 생각을 이어 붙인다. 이 우거진 녹음이 전쟁의 흔적과 어우러진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 또한 인간과 자연이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표인 것만 같다.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가덕도에 만약 신공항이 건설된다면 이 터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쟁의 상흔을 경험할 기회마저 빼앗기게 될 터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책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는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역사적인 공간을 굳이 찾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잊지 말고 기억을 하기 위함이니까.

가덕도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에게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함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곳, 지켜내야 할 당위를 그대로 전해주는 곳. 특히 내겐 가덕도를 알게 된 게 어쩐지 운명 같다.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이미지가 가덕도의 국수봉을 오르는 길에 실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치한다는 느낌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내게 떨어진 100년의 시간, 그리고 가덕도의 시간, 생태의 시간.


여름을 지나면서 가덕도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외양포 포진지에서 조금만 몸을 돌려 나오면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고, 김현욱 활동가님을 따라 그곳을 오르면서 우리는 가덕도에 관한 역사와 생태계를 알아간다. 앎은 우리를 확장시킨다. 모두 여름에 있던 일들이다. 역시 이번 여름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불쑥 떨어진다. 맞아떨어지는 이 기이한 느낌. 귀한 사람들과 함께 기후환경 프로젝트로 여러 지역을 방문해 활동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며 나는 가덕도의 영혼과 맞닿는 운명을 다시금 느꼈으니 말이다. 그리고 외양포나 대항항이나 눌차도나 국수봉이나 가덕도의 곳곳을 보고 걸으면서 인간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덕도도 역시나 지역 발전이라는 계획 속에서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논리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발전이란 명목하에 파괴될 위기에 처한 곳이 어디 한둘일까. 무리한 그 계획에 의해 추진되려는 신공항 건설은 무조건 막아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가 오른 가덕도의 산은 아주 오래된 숲이었고,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된 섬이었고, 차라리 아름다운 관광지라도 좋으니 남겨두어야 하는 곳이었다.

여름 숲은 모기가 들끓고, 빽빽한 나무들로 우거진 곳이라 험난했고,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는지라 방문한 인간들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데도 아주 오래된 나무 둥치를 만지게 한다. 꼭꼭 숨겨둔 풍경을 보여준다. 반딧불이나 잘 모르는 꽃을 보여주고, 지친 우리를 퍼져 앉게 한다.

그제야 그 숲을 알게 한다. 초봄이면 동백꽃으로 우거진, 자연적으로 생성된 꽤 큰 동백나무 군락지. 해변으로 이어지는 그 동백나무 숲에 앉아 땀을 식히며, 한낮임에도 조도가 낮아 어두운 숲에 깔리는 그 적막을 본다. 거기 앉아 시간의 더께를 생각해 본다. 녹음 아래 가덕도의 곳곳은 굳건히 그대로 있다. 이런 곳을 한순간에 제거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왜 인간 따위가 세계를 결정하고 침범하고 파괴하게 두나. 신 따위는.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사진 한연희

이제 나는 이 여름을 지나면서 가덕도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 쪽보다는 아는 사람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진다. 죄책감은 수시로 내게 달라붙는 감정이기에, 가덕도와 여름은 내내 죄책감과 자주 겹친다.

가덕도를 겨우 두어 번 마주친 것에 불과하지만,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이 아름다운 섬이, 바람의 뼈대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섬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가덕도를 알게 된 사람이고, 이 섬을 지키고픈 사람이고, 마음 졸이는 사람이 되었다.

이 섬의 허리를 베어내고 굳이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줄 필요가 있을까. 이 터에 머무는 그 수많은 생명들은 어디로 이주해야 하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존재조차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고 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어떡해야 할까. 그저 이 터를 내버려두는 방법 외에는 해결법은 없는데. 이걸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속수무책인 겨울에 여름을 돌이켜본다. 가덕도의 겨울은 또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다시금 귀를 기울여 봐야지.

[필자 소개] 한연희 시인: 2016년 <창작과 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데뷔. 시집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공저 <연희와 민현> 이 있다.
#가덕도 #섬을지키는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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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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