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인민위원회 조직도 청주인민위원회 조직도
박만순
인민군이 입성하자 환호작약하는 사람도 있었고, 국가로부터 배척을 받은 사람들은 우호적 입장을 가졌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분노를 가슴에 안은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민군은 위 두 부류의 사람들을 기본으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인민위원회는 행정조직으로 평시에나 전시에 모두 있어야만 하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보도연맹원은 인민위원회를 비롯한 인공시기 다양한 조직에서 중책을 맡지는 못했다. 한 번 변절한 사람(국민보도연맹원)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즉 생존 보도연맹원들이 인공시절 노동당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또한 인민위원장이 좌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특히 면과 마을 단위에서는 더욱 그렇다. 면인민위원장(면장)과 리인민위원장(이장)은 전쟁 전 좌익경력보다는 면과 마을에서 지역민들에게 두루두루 존경받는 인물이 맡은 경우가 많았다. 무색무취한 인물이 마을과 면의 수장이 되는 것이 전쟁피해가 적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주민들의 선택에 가장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맡은 인민위원장들은 주민들에게 인심을 잃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청주시 인민위원장에는 1대에 청원군 옥산면 출신이자 청주중학을 나온 임상순이, 2대 위원장에는 김상주가 맡았다. 김상주는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과 충북지부 부위원장을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위 김상주가 경남 진주 출신으로 남로당 진주시위원장을 맡은 후 청주로 이전해 영운동에서 풍로공장을 운영한 김상수(金相洙)와 동일 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청주시 인민위원회 내에는 문화선전과, 로동과, 양정과, 서무과, 상공과, 농림과, 사회생활과, 도시경영과, 교육과, 재정과, 보급과, 보건과가 구성되었다.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서였다. 사실 누가 권력을 잡든 반드시 필요한 행정조직이었다.
직능단체로는 민청, 여성동맹, 국유건물관리소, 농민동맹, 직업동맹이 있었다. 또한 각 동별로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사직동, 수동, 서운동, 모충동, 우암동, 남문로, 북문로 등 모든 동에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인민위원장(동장)이 임명되었다.
인민위원회와는 독립적인 기구도 구성되었다. 정치보위부(검찰청), 내무서(경찰서), 인민재판위원회(법원), 교화소(형무소), 노동당이 만들어졌다. 특히 노동당은 인민위원회보다 상급조직의 성격을 갖는다. 청주시당 위원장은 신정식이 맡았다. 신장식은 청원군 강서면 원평리 출신의 좌익 활동가로 전쟁 전 빨치산 활동을 했다.
청원군 인민위원장은 사주면 봉명리(현 청주시 봉명동) 출신으로 청주농업학교를 나온 남정진이 맡았다. 강내면은 김용각·왕익수가, 옥산면은 곽면영·유영준이, 강외면은 장천만이, 오창면은 오형근이 인민위원장을 맡았다(대검찰청, <좌익사건실록 10>, 1973).
세대 조사와 시민 통제

▲ 청주시인민위원회 재무과애서 실시한 세대조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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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인민위원회 재무과는 세대조사에 착수했다. 각 세대의 구성원과 직업, 수입 내역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각 세대에 부과하는 세금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무과에서 조사한 이봉준 세대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세대주: 이봉준(남), 가족 수: 4명
세대주 직업: 자유노동
자택 구분: 자가(自家)
세대주 월평균 수입사항: 1만 원
동거 가족 수입 사항: 무
지방자치세 등급: 5등급
기세액: 700원"
청주시 인민위원회는 시민들에게 공평한 과세를 위해 위와 같이 세대별 재산 내역을 상세히 조사했다. 세대 구성원 숫자뿐만 아니라 집 소유 형태, 동거 가족 수입 유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필자가 확보한 인공(인민공화국) 시절 청주시 인민위원회에서 생산한 <세대 조사표>에 의하면 재산의 등급을 총 6등급으로 구분했다. 등급이 같다 하더라도 과세액은 천차만별이다. 세대주와 동거인의 수입에 따라 과세액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와중에 이렇게 세밀하게 세대조사를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세대조사는 청주시인민위원회 재무과가 주관하지만 실제 조사는 각 동별 인민위원회에서 집행했다.
재무과에서는 세대조사를 하는데 주택과 수입 내역만 조사한 것이 아니다. 자전거와 마필 소유 여부도 조사했다. 1950년 9월 23일 현재 수동 1구 인민위원장 조두식이 청주시 인민위원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 의하면 수동 1구에는 자전거 소유자가 4명이었다. 그런데 자전거가 모두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이유는 '다이야 절단' 때문이었다. 즉 타이어가 펑크 난 것이었다.
마필조사에서는 소가 주요 조사대상이었다. 운천동 445번지 강기화는 4세 된 암소를 한 마리 소유했는데, 가격은 12만 원가량이었다. 이런 세대조사를 근거로 재무과에서는 청주시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동산을 압류하거나 구매하였다. 압류는 청주내무서(현재의 경찰서)에서 집행했다. 즉 세대조사는 동인민위위원회에서, 세금 부과 및 압류 혹은 동원 계획은 재무과에서, 집행은 내무서에서 했던 것이다.
야간 통행 제한과 행정 지휘 체계

▲ 야간통행증명서. 청주내무서장 앞으로 보낸 야간통행증명서 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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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청주시당 위원장 신장식이 청주시인민위원장 앞으로 보낸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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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시절 시민들은 야간에 함부로 다닐 수 없었다. 청주내무서는 공적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만 '야간통행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청주내무서는 남문로 1가 2구 인민위원장 최창성이 신청한 '야간통행 증명교부 신청서'를 발급했다.
충청북도와 청주시 각급 조직이 청주시 인민위원회에 협조 요청한 내용도 확인된다. 노동당 청주시당 위원장 신정식이 청주시 인민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문에 "청주시당 사업비로 사용하고자 하니 석유 10도라무(드럼)를 승인하여 주기 바란다"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직업동맹 충청북도 평의회 위원장 송판석이 청주시 인민위원장에게 보낸 공문에는 "등사기 3대를 유춘길의 책임 아래 등록했음"이라는 내용이 있다. 충청북도 인민위원장 리민용은 청주시인민위원장에게 철원 출신의 리영희를 청주시 국유건물관리소 소장으로 파견하면서 소개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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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공무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인민군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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