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신 서린 호수

민족 시인의 저항 정신과 총독부의 농민수탈사가 함께 남아 있는 현장

등록 2026.01.15 09:03수정 2026.01.1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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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수성못
▲ 겨울 수성못 김명희

아득한 옛날 대구는 땅이 아니라 거대 호수였다. 시내 중심부로부터 멀고 높은 앞산의 고산골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이 그 증거이다. 공룡이 대체로 초식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공룡발자국이 있는 위치는 풀이 잘 자라는 물가인 까닭이다.

금호강과 신천이 계속 흙을 실어와 대구 분지를 메웠지만, 대구에는 호수가 굉장히 많이 남아 있었다. 1970년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대구교육대학 정문 앞, 경북대학교 북문 오른쪽, 달서구 감삼동 일원, 두류문화예술회관 앞 등등은 모두 호수였다. 하지만 다 매립되었다.


지난 12일 수성못을 찾았다. 현재 대구에 남아 있는 가장 큰 호수는 수성못이다. 고려 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수성못은 다른 호수들과 달리 종전보다 더 커졌다. 1927년 일본인 수기임태랑이 총독부 등의 지원을 받아 확장 공사를 마무리한 결과이다. 수기임태랑 등은 둑을 크게 축조한 뒤 못 아래 수성들 농민들에게 물세를 받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낳은 '봉이 김선달'이었다.

 수성못 뒤의 수기임태랑 묘소
▲ 수성못 뒤의 수기임태랑 묘소 김명희

총독부 등이 수성못 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1926년, 이 못둑에 올라 울분의 민족시를 읊은 시인이 있었다. 이상화였다. 그가 이곳에서 착상한 시가 바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시는 1926년 6월 발표되었고, 시를 게재한 당대 최고 잡지 <개벽>은 그로 말미암아 강제 폐간 당했다.

그 뿐 아니다. 충남 당진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있던 청년 윤봉길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고 의열 투쟁을 결심했다는 전언도 있다. 이는 김상기 교수가 2013년에 펴낸 <자유의 불꽃을 목숨으로 피운 윤봉길>에 나오는 내용으로, 윤 의사의 동생 윤남의(윤봉길 의사의 본명은 윤우의)의 증언에 바탕을 둔 기술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그에 걸맞게 수성못 중에서도 두산오거리 쪽 들머리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와 이상화 시인 흉상이 있다. 또 그 일대에는 '상화 동산'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안내판들도 세워져 있다.

민족시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총독부의 농민 수탈 실상을 동시에 듣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성못은 대구 대표 역사 여행 답사지의 한 곳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못 둘레에는 각양각색의 식당들이 제 각각의 맛을 뽐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도 있다.


놀이기구 구역 끝에서 왼쪽으로 100미터쯤 내려가면 대구시 기념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도 있다. 둘러보면 역사공부도 되는 곳이니 수성못을 찾은 김에 꼭 둘러볼 만한 답사지이다(관련기사: 대구 수성못 아래 고인돌 유적). 요즘은 겨울철이라 운행이 중단되고 있지만 날씨가 화창할 때면 오리배를 탈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시인의 흉상 앞에서 "올해는 빼앗긴 들을 되찾은 지 81년째 되는 해입니다. 오는 2월 4일이 입춘입니다. 머잖아 많은 시민들이 찾아뵐 것입니다" 하고 묵념을 했다. 시인이 미소를 짓는 듯했다.

주요 지리정보

#이상화 #조선총독부 #수기임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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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자영업자로 살아 왔고, 이제 은퇴를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꿈꾸었던 여행을 다니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삶의 여백을 가꾸어볼까 합니다. 가능하면 책도 한 권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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