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물마을학교 사람들(엄문희, 김성규, 고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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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물은 생존이고, 공동체이고, 기억이다. 제주에서 마시고 쓰는 물 대부분은 비가 스며들어 만들어진 지하수다. 그런데 골프장과 도로, 리조트가 늘어나고 해군기지와 진입도로가 들어서면서 제주의 물이 위협받고 있다. 물의 위협은 곧 삶의 위협으로 이어졌다. 땅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물의 흐름은 바뀌었고 인간의 감각에서도 멀어졌다. 제주에서 물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 것은 삶과 공동체를 되찾는 것과 같다. 물에 대해 다시 배우고 묻는 사람들, 물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인 강정 물마을학교 사람들을 만났다.
밥을 주던 땅이, 전쟁을 부르는 땅이 되다
강정이라는 이름은 '강 강(江)에 물가 정(汀)', 물이 풍부한 마을을 뜻한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가 시작된 곳도 강정이었다. 2007년 국방부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공사비 총 1조 231억 원을 들여 2016년 완공됐다.

▲제주해군기지 정문 강정마을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를 시작했던 장소는 현재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군사기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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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 "강정 향토지를 보다가 가장 먼저 벼농사를 지었던 논의 주소를 찾았어요. 강정동 2797-1번지였는데, 그게 지금 해군기지 정문이에요. 밥을 주던 곳, 벼농사를 지었던 곳, 그 자리가 생명을 빼앗고 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군사기지의 입구가 된 거죠. 그래서 강정에서는 매일 아침 7시에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생명평화 108배를 해요. 이 섬에서 가장 먼저 밥을 주던 자리, 그 자리에 지금도 매일 서 있는 거예요."
강정의 물은 땅의 역사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엄문희: "제주가 하나의 섬이라고 해서 물 환경이 다 같은 건 아니에요. 강정이 있는 이 지역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에요. 200만 년이 넘었죠. 반면 동쪽이나 서쪽 지역은 3천~4천 년 전의 신생 화산 지대예요. 땅의 나이가 다르니까 암석도 다르고, 물이 스며드는 방식도 다르고, 지하수의 흐름도 완전히 달라요. 강정은 그만큼 물이 풍부했고, 그래서 제주에서 가장 먼저 벼농사가 가능했던 곳이기도 해요. 이 물의 구조가 한 번 깨지면 되돌리기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강정의 물 문제는 강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에 대해 두려워해야 해요
상수도 보호구역이자 지하수 특별관리구역, 절대보전지역이기도 한 강정천은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로 큰 변화를 겪었다. 불과 2km 남짓한 4차선 도로는 당초 6년 계획이었지만, 최종 공사 완료까지 16년이 걸렸다.
엄문희: "강정은 제주에서 두 번째로 큰 상수도 보호구역이고, 서귀포 시민 대부분이 이 물을 마셔요. 같은 물을 먹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되는 거예요.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이후로, 이전에는 없던 위험한 물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물은 땅 아래 있어서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감각에서 멀어졌어요. 저는 물을 보호해야 한다기보다, 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 자체를 정말 두려워해야 한다고요. 이건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예요."
제주에는 '용천수(龍泉水)'라고 불리는 샘물이 해안가를 중심으로 600여 개 이상 분포하고 있다. 한라산에 내린 비가 지하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물이다. 예로부터 물이 부족했던 제주도민들에게 용천수는 식수, 농업용수, 각종 생활용수의 역할을 담당해 왔고 이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이후, 강정천과 용천샘에서는 이전에 없던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마을학교 교사 고권일은 물의 오염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냇길이소 제주의 지하수가 얼마나 풍부한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용첨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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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난개발과 과도한 지하수 사용은 물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았다.
고권일:"제주 지하수 사용량을 보면 농업용수가 40% 정도로 가장 많고, 생활용수는 15% 정도예요. 골프장은 25%를 차지해요. 20여 개밖에 안 되는 골프장이 농업용수의 절반 가까운 물을 쓰고 있어요. 문제는 물을 많이 쓰는 것뿐만 아니라, 골프장이나 도로 같은 시설들이 불투수층을 만들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솔박소나 냇길이소 같은 곳에 늘 맑은 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이 고여 썩거나 이끼가 끼는 모습이 보이고 있어요."
늘 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았던 물
농부시인이자 강정마을 주민인 김성규는 늘 함께 있었기에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았던 물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해군기지 문제는 물의 변화를 만들었고 마을의 옛모습을 잃게 했다.

▲제주바다 제주의 바다, 제주의 물이 해군기지 건설과 골프장 리조트 건설등의 난개발로 오염되고 있다. 더 많은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난개발을 막아내고 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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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강정 사람들은 물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늘상 우리랑 같이 있는 거니까요. 그냥 같이 쓰고, 마시고, 풍요 속에서 살아온 거죠.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사람들이 뭔가를 보호하려고 하고,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잃어져 가는 것 같아요. 물 수량이 줄고, 살던 생물들도 사라졌어요. 다양한 생물들의 개체수가 예전보다 너무 줄었죠."
"서귀포 일대 식수원으로 쓰면서 하루 1만 톤이 아니라 2만 톤 이상을 뽑아버려요. 물이 없을 때는 정수장 밑까지 관을 내려 펌프로 끌어올리고요. 도로가 늘어나면서 물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바다로 흘러가요. 숨골(빗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구멍이라는 제주어. 숨골을 통해 빗물이 지하동굴로 유입되며 지하수의 일부가 되거나 다른 곳으로 흘러 가게 된다) 같은 구조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죠. 해군기지 문제는 외면하려고 해요. 깊이 들어가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니까요. 그래도 이 마을이, 이 아이들이 그냥 그대로 쭉 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까운 거예요."
제주는 한 그릇의 물을 나눠 먹는 공동체
물마을학교는 제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물의 변화에 대해 그 원인을 함께 공부하고 물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강정 할망물 식당 엄문희씨는 평화라는 건 함께 밥을 나눠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할망물 식당은 강정에 오는 연대자들과 함께 밥을 나누는 곳이다. 식당 앞에는 문정현 신부가 만든 '밥이 하늘이다', '법보다 밥'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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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문희: "제주에서 물은 그냥 자연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생존이고, 공동체고, 역사예요. 제주에는 육지처럼 1년 내내 흐르는 강이 거의 없고, 물의 98%가 지하수예요. 농업용수든 생활용수든 산업용수든 전부 같은 물이에요. 그래서 저는 제주를 '한 그릇의 물을 나눠 먹는 공동체'라고 말해요. 이 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오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함께 배우지 않으면 지금 제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마을학교를 시작했어요."
강정 물마을학교는 물을 보고, 걷고, 이야기하며 끊어진 감각을 다시 잇는다. 단순히 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강정에서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싸움은 오늘도, 물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명의 편에선 당신에게 7 - 제주 물마을학교 사람들 편은 새알미디어 유튜브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링크 : https://youtu.be/3cCCCk1fXRc?si=ivFQJTNlmaE7Dm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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