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시민행동이 지난 5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에서 기자회견 후 '탈핵희망전국순례'를 시작한 모습.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부산 고리핵발전소를 출발 세종, 청와대까지 16일간 신규 핵발전소 반대 도보 행진을 펼친다.
연합뉴스
특히 문제적인 부분은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관련된 경제성 평가다. 1차 토론회의 발제에서는 원전의 경제성을 논하면서도, 노후 원전을 10년씩 두 차례 연장해 총 20년을 더 가동할 경우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최신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설비 보강 비용, 장기 가동으로 추가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 사고 위험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그로 인한 원전 인근 지역 주민 피해, 그리고 수명 연장 이후 불가피하게 커지는 폐로 비용 등은 경제성 평가에서 구조적으로 누락되거나 미래로 미뤄졌다.
안전 문제 역시 경제성 논의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노후 원전의 경우 원자로 압력용기의 중성자 취화, 주요 기기와 배관의 재료 열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릴 수 없이 누적된다. 이러한 노후화는 단순히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을 넘어서면 비선형적으로 위험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특히 2차 수명 연장 국면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결함이나 사고 확률 증가를 배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누적 안전 리스크가 에너지 수급 안정성 분석이나 장기 시나리오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토론회에서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수치상 탄소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 시민의 안전을 전제로 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신규 원전 건설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송전망과 지역 수용성이다. 대규모 원전은 이를 수요지로 보내기 위한 초고압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동서울변환소 사례에서 보듯, 송전망 건설은 지역 주민의 반대와 갈등으로 수년, 때로는 십 년 이상 지연돼 왔다.
발전소 부지를 확보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는 한, 생산된 전기는 수요지로 전달될 수 없다. 이 경우 신규 원전은 전기를 생산해도 보내지 못하는 '유령 발전소'가 될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송전망 건설의 현실적 제약과 사회적 갈등 비용은 원전 경제성 논의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최근 신규 원전 건설의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것이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전망이다. 원전 수십 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반복되지만, 그 상당수는 검증되지 않은 업계 추정치를 정부가 그대로 인용한 자료에 기반한다. 전력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과 가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과다 추정된 수요가 원전 건설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력은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수요 전망이 과장될수록 공급 확대 논리는 강화되지만, 그 부담은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장밋빛 기술 낙관에 기댄 수요 전망을 정책 판단의 전제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2차 토론회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출력 제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계통 모의 결과에 따르면, 2030년 경부하 시간대에는 태양광 출력 제어가 급증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아니라, 출력 조정이 어려운 원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구조적 조건이다.
원전 비중을 유지하거나 확대한 상태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출력 제어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전원 구성 선택의 결과다. 그럼에도 정부는 원전의 '경직성 완화' 기술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아직 실증되지 않은 기술을 전제로 현재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접근이다. 기술이 실패하거나 지연될 경우의 대안, 기술 이전에 가능한 정책적 조정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깜깜이' 여론조사와 민주주의의 후퇴

▲ 정부세종청사 6층에 위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모습.
환경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번 주 시행되는 ARS 여론조사다. 기후부는 질문 문항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국민 3천 명의 응답으로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AI 시대를 위해 원전을 건설하는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과 "우리 지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답변을 낳는다. 질문의 방식과 맥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에도, 조사 설계의 투명성은 확보되지 않았다. 이는 과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가졌던 최소한의 숙의 기간과 정보 제공 절차조차 무시한 졸속 행정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비판이 제기되면 '공론화 결과'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이라기보다 정치적 책임 회피에 가깝다.
에너지 정책은 여론조사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과 비용, 책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다. 공론화는 그 결정을 보완하는 수단이지,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다. 현실의 에너지 정책은 유한한 자원, 제한된 공간, 갈등이 내재된 사회적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답정너'식 공론화를 중단하고, 전문가들 사이의 공개적이고 반복적인 검증을 통해 쟁점과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시민은 가치 판단의 영역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 결정과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책임 있는 정치다. 그렇지 않다면 '공론화'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요식 행위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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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에서 이런 일 있을 줄이야... 점입가경 국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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