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일
조경일
북향민 호칭 변경 필요성에 대하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조경일 작가입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님, 그리고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 관계자 여러분과, 이 방송을 보시게 될 국민들께, 오늘 저는 통일부의 북향민 정책이 나아가야 할 철학적 방향의 전환이 될, '북향민'이라는 호칭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당사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 출신으로, 2004년 말에 한국 사회에 정착한 시민입니다.
현재 우리 정부의 북향민 지원 정책은 비교적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습니다. 초기 정착금부터 주거, 교육, 취업 지원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장치는 나날이 보완돼 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여전히 일반 국민의 3배 가까이 됩니다. 수천 명이 제3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단순히 정책 지원 부족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비극적인 숫자는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섞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가 북에서 온 사람들을 호명하는 '탈북자(탈북민)'라는 호칭이 이데올로기적 낙인으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제도는 보완돼 왔는데, 북향민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탈북민'이라는 호칭은 의도와는 다르게, 이들을 심리적으로 동등한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 인식하기보다 '북한'이라는 부정적 배경과 연결된 '특수한 타자'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북향민들의 사회적응 실패는 정책 부족에 따른 '물질적 결핍'이 아닌, 정체성이 평가절하 되는 '존재의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북향민들이 북한에서 살아낸 삶과 기억들, 생존의 경험과 지혜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련된 한국사람이 되기 위해 씻어내야 할 '오염'이나 '낙인' 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 통일 후 동독 출신 사람들을 '학습하고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그들의 삶을 평가절하하고 타자화 했던 서독 사회에 팽배했던 부정적 시선을 강력히 비판한 메르켈 총리의 지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언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반영합니다. '탈북민'이라는 호칭은 내면의 무의식적 차별과 타자화를 정당화하고 이데올로기적 패배와 승리를 증명하는 기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북향민이라는 호칭은 2012년쯤부터 당사자들이 직접 제안하고 써왔던 호칭입니다. 이 호칭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져서 많은 단체와 기관들에서 적극 사용하다가 현재 많은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부에서 공식 대체 용어로 수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탈북민 호칭 대신 '북향민(北鄕民)' 호칭을 공식용어로 채택해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철학적 당위성입니다. '북향민'은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는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을 기존에 탈북, 즉 '탈출'이라는 과거의 사건으로서의 행위가 아닌, 누구나 갖고 있는 '고향'이라는 보편적 근원으로 전환시키는 철학적 사유입니다. 고향(故鄕)은 이념적이지 않습니다. 고향은 모든 인간이 지닌 실존적 뿌리이자 정체성의 원천입니다. '북향민' 호칭은 이들에게 기존의 '탈북자'라는 호칭에 내재된 '탈출자, 이탈자'라는 부정의 낙인을 지우고, '고향을 가진 존재'라는 온전한 인격적 지위를 회복시켜 줍니다.
둘째, 사회·문화적 당위성입니다. '북향민'은 '이탈자'나 '이방인'이 아닌, 그저 '북쪽이 고향인 우리 이웃'으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합니다. 이는 '실향민', '호남향우회', '영남향우회' 등 한국 사회 내의 출향민(出鄕民) 개념과 동일 선상에 위치함으로써, 북향민을 타자화 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셋째, 존재론적 당위성입니다. '북향민'은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별개로,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유년의 기억과 살아온 삶을 긍정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기존 '탈북자'라는 호칭이 과거와의 단절을 강요했다면, '북향민' 호칭은 과거의 고향을 껴안고 현재 한국 사회에 서서 미래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의 연속성'을 보장합니다. 즉 북향민 호칭은 이데올로기의 구속을 벗어나는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해방을 의미합니다.
넷째, 정책적 당위성입니다. '북향민'은 더 이상 기존의 '체제이탈자'나 '자유투사'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수사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남과 북의 삶을 모두 살아내고 경계를 뛰어넘은 '창조적 경계인' 이 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기존 '탈북민' 호칭이 남북을 가르는 '단절선'을 상징했다면, '북향민'은 남북을 잇는 '연결고리'이자 '다리'로서의 정책적 역할을 상징합니다. 이런 존재론적 확장 위에서만 북향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북향민 정책은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두 체제에서의 삶, 경계적 경험을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북향민 호칭은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닙니다. 이는 '이탈자'라는 단절된 존재로 부정의 낙인을 지우고, 대신 지금은 갈 수는 없지만 '고향이 있는 존재'로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며, '관리'의 대상에서 '통합'과 '연대'의 대상으로, 나아가 '통일'의 주체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혁신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북향민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채택하고 관련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한 단계 높이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탈북'이라는 과거 행위로 정체성을 묶어두지 말고, 그들을 북향민이라는 주체로 호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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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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