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구슬픈 정선아리랑 가락 속에 등장하는 가사다. '소금'. 산골 정선 사람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소금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흔히 소금 하면 서해안의 염전을 떠올리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동해안 백사장 곳곳에서 하얀 소금 꽃이 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환동해학회 김태수 박사가 2025년 강원 역사 총서, '제10권 강원의 소금생산' 공동집필자로 연구한 민속 자료 '동해시 지역 소금의 생산과 유통'은 잊혀져 가던 동해안 '소금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해낸 동해안 소금 역사의 기록이다. 문헌 속에 박제된 기록보다 90대 노인들의 희미한 기억을 붙잡아 완성한 이 연구는 동해시가 치열했던 '소금 생산 기지'였음을 증명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동해안의 소금 생산 방식은 서해안의 천일염과는 달랐다. 조수 간만의 차가 적은 동해안에서는 모래사장에 점토를 깔아 염전을 만들고, 여기서 얻은 고농도 소금물을 가마솥에 끓여내는 '자염(煮鹽)' 방식을 썼다는 것. 특히 주목할 점은 동해시 만의 독특한 '화염(火鹽)'이다. 1960년대 이후 인근 도계 탄광에서 무연탄이 쏟아져 나오자, 값비싼 나무 땔감 대신 석탄으로 불을 때 소금을 만들었다. 이는 동해시의 산업 환경이 빚어낸 독창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김 박사는 "송정, 용정, 망상(노봉) 해변은 과거 거대한 소금 공장이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송정 염전은 1936년 대홍수(병자년 개락)로 사라지기 전까지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당시 염전 운영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해 지역 유지들이 도맡았고, 생산된 소금은 '금(金)' 처럼 귀하게 대접 받았다.
생산된 소금은 어디로 갔을까. 그 종착지는 백두대간 너머 영서 지방이었다. 소금 장수들은 지게 한 가득 소금을 지고 험준한 '백복령'과 '이기령'을 넘었다. 김 박사는 지난 15일 오전 기자와 만나 "소금 한 가마니 가 쌀 한 가마니 값과 맞먹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선 사람들은 콩과 팥을 이고 와서 소금과 바꿨고, 동해 사람들은 그 소금으로 절인 고등어와 방어를 지고 산을 넘었죠"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백복령이 교역로보다 동해안과 내륙을 잇는 '생명줄'이자 '문화 통로' 였음을 강조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오가는 숲길이 되었지만, 그 흙 길 아래에는 소금 땀을 흘리며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가장들의 거친 숨소리가 배어 있다.
하지만 산업화의 물결 속에 동해안 염전은 자취를 감췄다. 민속 자료 맺음말에서 김 박사는 "경북 울진은 소금의 생산 방식과 유통 등 옛 염전 방식을 복원해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강원도에서는 동해시의 백두대간 동해 소금길 조성과 탐방 프로그램이 전부다. 이 글이 현대적 지역다움을 담은 문화 자원으로 재 창조 되는 기초 자료로 적극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박사는 이번 연구가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해 소금길'을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씻어주는 '문화 콘텐츠'로 재 탄생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제안했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동해. 그 해변 어딘가서 펄펄 끓어오르던 가마솥의 열기와, 소금을 지게에 지고 산을 넘던 아버지들의 묵직한 발걸음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역의 '참된 소금의 역사'일 것이다.
- 출처 및 참고자료 : 김태수, '동해시의 지역 소금의 생산과 유통' (2025 강원역사총서, 제10권 강원의 소금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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