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MA 4층 405 갤러리]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 연작(No. 5, No. 22). 새해 첫날,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된 듯한 방에서 색채가 건네는 정직한 위로에 몸을 맡겼습니다.
문현호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마크 로스코의 방. 새해 첫날의 오픈런 덕분에 저는 이 아름다운 방을 오롯이 홀로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과 저만 존재했던 그 환상적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형태를 지우고 오직 색채의 층만을 남긴 로스코의 거대한 캔버스는 지친 영혼이 기댈 수 있는 거대한 어깨가 되어주었습니다.
로스코은 자신의 작품을 45cm 거리에서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한적한 고요 속에서 색채의 떨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색면이 저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제 내면의 가장 깊은 곳과 대화를 시작하는 듯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그 시간, 저는 비로소 예술이 건네는 가장 정직한 위로를 맛보았습니다.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가장 진실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팝아트] 캔버스 너머, 일상의 신화로
앤디 워홀은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로 바꿨습니다. 모든 것이 동등하다는 그의 선언을 보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이 어떻게 예술로 치환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평범한 식탁 위의 풍경조차 누군가에게는 반짝이는 영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일상을 조금 더 소중하게 만듭니다.
![[MoMA 4층 412 갤러리]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Campbell's Soup Cans)'. 일상의 흔한 소품이 예술이라는 반짝이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순간입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115/IE003571202_STD.jpg)
▲ [MoMA 4층 412 갤러리]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Campbell's Soup Cans)'. 일상의 흔한 소품이 예술이라는 반짝이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순간입니다.
문현호
MoMA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마주한 한국 작가 안민정의 작품 '자화상-라하프(Self-Portrait-Rachaph)'는 저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작가는 출산 후 겪은 신체적, 정서적 변화를 건축 도면이라는 차가운 형식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조차 그 정확성에 감탄했다는 이 정교한 도면 안에는, 남편의 잔소리를 개 짖는 소리 회로로 치환해 놓은 유쾌한 위트가 숨어 있습니다.
라하프(Rachaph)는 히브리어로 '보호하다', '알을 품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모성애의 서사를 과학적 도식으로 시각화하여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놀랍습니다. 차가운 선과 기호로 가득한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흐르는 뜨거운 기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도구로 감성의 깊이를 증명해 내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삶의 가장 정교한 설계도는 결국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MoMA 4층 417 갤러리] 안민정 작가의 '자화상-라하프(Self-Portrait-Rachaph)'. 모성애를 정교한 설계도로 풀어낸 화면 속에서 차가운 선보다 뜨거운 기도를 발견합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115/IE003571204_STD.jpg)
▲ [MoMA 4층 417 갤러리] 안민정 작가의 '자화상-라하프(Self-Portrait-Rachaph)'. 모성애를 정교한 설계도로 풀어낸 화면 속에서 차가운 선보다 뜨거운 기도를 발견합니다.
문현호
다시, 일상이라는 예술로 나가는 길
MoMA의 5층에서 시작해 2층까지 내려오는 여정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고흐의 뜨거운 캔버스에서 생의 열망을 읽어내고, 모네의 끝없는 수련 연못에서 내면의 평온을 되찾습니다.
특히 안민정 작가의 정밀한 도면 앞에 서서는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사랑이나 유대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의 거리를 차가운 도표와 선으로 기록한 그녀의 지도를 보며, 문득 저의 관계들을 복기해 보았습니다. 막연한 감정에만 의존했던 관계들도 때로는 도면을 펼치듯 세밀하게 살피고, 어디가 헐거워졌는지 정성껏 보수해야 하는 소중한 설계도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현대 미술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세상을 향해 균열을 내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 균열 사이로 비쳐 드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미술관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MoMA에서 건져 올린 이 다정한 사유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잔잔한 힐링으로 스며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미술관 밖의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겠지만, 우리의 시선에는 이제 거장들이 나누어준 작은 불꽃 하나가 켜졌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공유하기
미국 산부인과 의사가 감탄한 자화상... 한국 작가 작품이라네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