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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쫓겨난 노인, 지역에서 쫓겨난 주민

[주장] 한국사회 '돌봄의 비극'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대전·충남 통합 담론'

등록 2026.01.17 11:28수정 2026.01.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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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통합 인센티브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통합 인센티브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살던 집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나라 노인의 약 80%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거쳐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이는 OECD 평균(40~50%)이나 네덜란드 등 복지 선진국(20% 미만)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노인들은 시설 입소를 꺼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보내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왜 이런 불행한 구조가 반복될까? 한마디로 '돌봄의 공백' 때문이다. 시니어 케어 기업 케어닥 보고서에 따르면, 사적 간병인 월 고용비용은 432만 원(2025년 기준)에 달하고, 국가 지원을 받아도 하루 3~4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온전히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결과 간병을 위해 직장과 꿈을 포기하는 '숨겨진 환자(가족 간병인)'들이 양산된다. 청년층 간병인(영케어러)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포기하게 되어, 생애 전반에 걸친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른다. 인프라 부재로 집에서 존엄하게 늙어갈 수 없으니, 원치 않아도 시설로 떠 밀려가는 것이다.

이러한 '돌봄의 비극'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전·충남 통합(이하 '대충통합') 담론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두 사례 모두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기초 인프라의 공백이 이동을 강제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1. '지방소멸'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비명이다

'대충통합'의 핵심 명분은 '지방소멸 대응'이다. '지방소멸'이란 폭력적인 가상 언어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지방의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이 아니다. 인구감소가 가장 치명적인 곳은 중소도시와 농어촌이다.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는 이유는 대도시가 화려해서가 아니다. 살던 곳에서 일하고, 의료·돌봄·교육·교통 등 최소한의 생활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초적 여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는 집에서 돌봄을 받을 수 없어 시설로 향하는 노인의 처지와 닮아 있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품위 있게 살 수 있다면, 굳이 집값 비싸고 공기 나쁜 대도시로 향할 이유는 없다. 결국 지방소멸의 본질은 지역의 매력 부족이 아니라, 지역을 지탱할 '생활 인프라의 공백'에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중소도시와 농어촌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2. 거대 통합이 가져올 '지역 내 격차'라는 역설


 지난 14일 충남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충남행정 통합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지난 14일 충남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충남행정 통합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부는 지역 주도의 균형발전을 내세우지만, '대충통합' 논의는 여전히 중앙정부의 특례와 예산 확보에 매몰되어 있다. 그 돈으로 광역교통망 등 거대 인프라를 구축해 수도권과 경쟁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광역교통망을 건설한다고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나. 광역교통망은 지역 간 접근성을 높이겠지만, 일자리와 생활 서비스가 없는 지역에서 이동은 양방향이 아니라 일방향이 된다. 교통망은 중소도시와 농촌을 살리는 수단이 아니라, 대전·천안·아산 등 거점 도시로 더 빨리 이동하라는 신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집에서 살 수 없는 노인들을 시설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점 대도시만 키워 주변 지역의 인구를 흡수하는 방식은 결국 지역 내 격차를 심화시키고, 주변부의 쇠퇴를 가속화할 뿐이다.

3. 일자리의 환상과 기초 체력의 무시

'지방소멸'의 원인을 흔히 일자리 부족에서 찾는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합론자들은 AI, 반도체 등 대기업 중심의 '양질의 일자리'를 약속한다. 하지만 '대충통합'을 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보장은 없다. 더욱이 고도로 자동화된 첨단 산업은 고용 유발 효과도 낮다. 고용의 80%를 지탱하는 것은 중소기업이며, 지역의 기반은 농업이다.

진정한 지역 재생은 대기업 유치라는 신기루를 쫓는 것이 아니라, 지역 중소기업과 농업을 살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현장형 일자리'를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기초 체력을 외면한 채 몸집만 키우는 통합은 사상누각이다.

결론,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야 한다

덴마크는 1987년 '신규 요양원 건설 금지법'을 제정했고, 여러 선진국은 시설이 아닌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왔다. 우리 정부가 늦었지만 2026년 3월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을 시행하는 것 역시 '시설 대신 집'에서의 노후를 지향한다. 그것이 인간 존엄성을 지키면서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방 시대의 해법도 이와 같아야 한다. 통합이라는 거대 구조물을 짓기 전에, 그 막대한 예산을 중소도시와 농어촌이 '사람 살 만한 곳'이 되도록 하는 데 우선 투입해야 한다. 기초가 튼튼해지면 거점 도시는 자연스럽게 네트워크의 중심으로서 활력을 얻게 된다.

주변 지역을 희생시켜 거점만 살리는 통합은 결국 거점 스스로도 고립되어 무너지게 만든다. '살던 곳에서의 노후(Aging in Place)'가 존중받아야 하듯, '태어난 곳에서의 삶(Living in Region)'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방시대의 출발점이다.
#대전충남통합 #지방소멸 #광역교통망 #돌봄의공백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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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사 석사 도쿄대학 경제학박사 충남대학교 명에교수 지역재단 상임고문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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