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요리 싫어하는 엄마가 '조림핑 최강록'을 보고 한 다짐

<흑백요리사2> 최종화를 보고... 요리사 최강록의 서사와 철학에 감동

등록 2026.01.17 11:30수정 2026.01.17 11:30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요리가 싫다. 한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뱉는 게 죄스럽지만 요리의 지난한 과정이 내게는 기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종갓집에서 자란 내게 요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상이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매일 무언가를 썰거나 다듬거나 끓였고 손녀 둘은 줄곧 그 곁에 앉아 작은 손으로 어른들 흉내를 내야 했다.

대가족이 사는 집의 부엌은 불이 꺼지지 않았으니 그녀들에게는 작고 서툴러도 손 하나가 더 보태지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 시절엔 공부보다 음식 만들기가 즐거웠으니 나와 언니는 자주 나란히 앉아 푸성귀를 다듬고 만두를 빚고 메주를 만들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삶 속에 자연히 깃들어 나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기본 음식은 쉽게 만들어 내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럼에도 나는 요리가 즐겁지 않다. 시간을 내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썰고 무치고 찌고 볶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내내 서 있어야 한다. 어머니 세대 때는 쪼그려 앉는 것도 포함이었으리라. 노력한 시간에 비해 먹어치우는 시간은 극히 짧다. 몇 시간의 정성과 노력은 단 몇 분으로 사라진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또 어찌나 고된지. 이 고된 일련의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먹어야 살 수 있기에 하루 일정 시간은 조리대 앞에 선다.

이런 나에게 가장 신기한 직업은 요리사다. 내가 결코 택하지 않을 직업이라 더 존경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 박물관에 전시할 수도 없고 영원히 박제할 수도 없는 한순간의 맛을 위해 기꺼이 온종일의 시간을 바치는 사람들이 바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내게 요리는 과정에서의 행복이 특히나 더 중요한 분야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멸할 운명을 위해 매일 온종일의 시간을 바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실력만으로 차지할 수 없는 우승의 자리

 요리사 최강록이 남긴 말, "이 세트는 다 허구다"
요리사 최강록이 남긴 말, "이 세트는 다 허구다" 넷플릭스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백 명의 흑백요리사 경연이 끝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흑백요리사2) 최종화가 지난 13일 공개됐다. 결승전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이날 결승전에는 먼저 결승에 올라온 백수저 최강록 셰프와 중식 대부 후덕죽 셰프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흑수저 요리괴물 이하성 셰프가 맞붙었다.

'나를 위한 요리'. 늘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던 요리사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였다. 이하성 셰프는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을 갈 때마다 먹었던 순댓국을 파인다이닝 셰프답게 재해석해 선보였다. 최강록 셰프는 따뜻한 국물 속 깨두부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가게에 남은 닭뼈를 구워 국물에 넣었던 경험, 대파를 잔뜩 넣고 해장했던 추억 등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국물 요리를 만들었다. 음식과 어울리진 않지만 자신을 위한 노동주인 소주도 곁들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흑백요리사2) 최종화 한 장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흑백요리사2) 최종화 한 장면. 넷플릭스

결과는 만장일치로 최강록 셰프의 승리였다. 맛에 있어서 이미 정평이 난 이들이 벌이는 마지막 대결에서 무엇이 두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만장일치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게 했을까.

최강록 셰프는 흑백요리사의 무대가 허상, 가상의 세계라고 말한다. 잘 짜인 각본, 칼각을 맞춘 조리대, 나눠지고 떠오르는 무대, 무한으로 제공되는 식재료 등 흑백요리사 속 모든 것은 인위적이다. 인간의 완벽한 기획과 컨트롤 속에 제작되는 프로그램인 것. 요리사들에게 이곳은 꿈의 무대이자 쉽게 꿈꿀 수 없는 가상의 무대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우승의 자리는 실력만으로 차지할 수 없다. 그날의 컨디션, 경연 주제, 팀원과의 호흡 등 수많은 변수와 운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자리다. 마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이 영화 속 주인공은 빈민가에서 자랐지만 온갖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 억대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최강록 셰프는 그 고난도의 대결에서 십여 년만에 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한다. 십여 년 전 <마스터셰프 코리아2>에서의 우승이 우연이라면, 이번 <흑백요리사2>에서의 우승은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필연의 서사는 최종화에서 그의 신중한 언행과 제작진의 절묘한 편집으로 여지없이 펼쳐진다.

"사실 저는 특별한 요리사는 아니고요. 그냥 모든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티 나지 않게 하고 있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데, 저도 그중 한 사람인데 운이 좋아서 조림핑도 돼 보고."

"저는 특출 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시는 요리사분들,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얘기 말고 음식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 <흑백요리사2> 13화 중 최강록 어록

최강록 셰프는 요리계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 아니다. 음악을 하고 스페인어과에 다니다 중퇴하고 해병대에 입대하고, 동업을 하다 그만두고 반찬가게를 접고, 늦은 서른의 나이에 요리 유학을 떠났다 돌아오고 다시 음식점을 하다 빚더미에 앉았던 사람이다. 그러다 마주한 게 <마스터셰프 코리아2>였고, 십여 년 후 <흑백요리사> 재도전이었다.

누군가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대중적으로 알려진 서사 말고도 그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음영의 시간들이 숨어 있을까. 그의 어눌한 말속에는 긴 부침의 시간 동안 쌓아온 농축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터져 나온 이야기 속에는 오래 뭉근하게 끓인 육수처럼 진한 자신만의 철학이 묻어 있다.

최종 경연에서 만들어낸 그의 요리에도 그 서사와 철학이 정직하게 녹아있지 않았을까. 심사위원들은 그 정직함에 만장일치의 표를 던지고, 제작진은 담백한 연출로 자신들이 지은 가상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으며 마무리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 중 상당수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그들의 밥상을 기꺼이 받는 이들이고.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영업자 비중이 무척 높은 나라에 속한다. 그중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식음료업계다. 각 가정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매일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이들이 있다. 허상의 끝을 깨고 최강록이 던진 마지막 말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모자람 없이 넉넉했다.

차오르는 감동을 뒤로하고, 다시 주방에 들어선다. 내게 주방은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공간이자 내 책상 하나 없던 시절 오랜 시간 글을 쓴 장소이기도 하다. 방학이라 종일 집에 있는 아이들이 끼니 때마다 맛있는 걸 해달라며 졸라댄다. 음식 레퍼토리가 별로 없는 내게 이 시간은 곤혹스럽다.

똑같은 주방이지만 조금 다른 마음으로 서 본다. 언젠가 나도 이 일을 아주 약간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매일은 아니라도 어쩌다 한 번이라도 정성껏 음식을 차려보겠노라 다짐한다. 진심을 조리는 '요리사 최강록' 덕분에.

"먼 훗날에 내가 굳이 기억될 일도 없겠고, 기억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어떤 계기로 문득 나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가 좋겠다. 요리사 최강록."
- <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글, 클 출판

 <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글
<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흑백요리사2 #최강록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세대 아파트 상가인데 '텅텅'...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호황' 천세대 아파트 상가인데 '텅텅'...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호황'
  2. 2 윤석열 '입틀막'에도 차분했던 앵커, 왜 장동혁에게 '목소리' 높였나 윤석열 '입틀막'에도 차분했던 앵커, 왜 장동혁에게 '목소리' 높였나
  3. 3 윤석열 시절, 택시에서 자주 들었던 저주의 말들 윤석열 시절, 택시에서 자주 들었던 저주의 말들
  4. 4 코스피 5천, 돈 얼마 벌었냐고? 2000년생 동창들의 대화 코스피 5천, 돈 얼마 벌었냐고? 2000년생 동창들의 대화
  5. 5 저가항공이니 탑승동? 인천공항의 같은 돈, 다른 서비스 저가항공이니 탑승동? 인천공항의 같은 돈, 다른 서비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