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정말 섭식장애와 무관할까

[섭식장애와돌봄의정치 (6)] 한국 젊은 남성의 섭식 문제와 신체상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로렌스 모노셀로

등록 2026.01.16 13:33수정 2026.01.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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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W2026 특집]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섭식장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미적 기준의 영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 신체, 관계, 사회 구조, 의료 체계, 기술 환경이 서로 깊게 얽힌 정치적·물질적·제도적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논의는 오랫동안 개인 책임, 가족 문제, 혹은 의학적 진단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는 이러한 협소한 틀을 넘어, 세계 각지의 연구자·활동가·정책 전문가·당사자 연구자들이 경험과 지식으로 구축해온 더 넓은 정치적 지평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지만 섭식장애를 이해하고 돌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법, 젠더, 노동, 디지털 기술, 불평등, 거버넌스, 당사자 경험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해 전하며, 한국의 독자 — 특히 당사자, 활동가, 정책 입안자, 연구자 — 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기획·글: 박지니 (작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활동가)

섭식장애는 오랫동안 '여성의 질병'으로 이해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섭식장애는 주로 젊은 여성의 문제로 분류되고, 남성의 몸과 섭식은 '운동중독'이나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따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익숙한 구분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가린다. 섭식장애는 정말 특정 성별과 특정 문화에 고정된, 보편적인 임상 범주일까.

한국 젊은 남성의 신체상과 섭식 문제를 연구해 온 의료인류학자 로렌스 모노셀로(Lawrence T. Monocello)는 이 질문을 정면에서 다시 묻는다. 그의 연구가 출발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섭식장애'라고 부르는 임상적 범주와 측정 도구는 대부분 서구 사회, 그중에서도 젊고 백인이며 비교적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이 범주들이 다른 사회로 그대로 옮겨질 때, 무엇이 포착되고 무엇이 사라지는지는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

“몸의 문제”로 퉁쳐진 질문들. KBS 시사직격 159회 '피지컬 전쟁, 몸을 향한 유혹'(2023년 4월 7일 방영)은 여성의 섭식장애와 남성의 운동 집착·스테로이드 남용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며, ‘몸을 향한 강박’이라는 느슨한 공통분모로 두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은 섭식장애의 당사자 경험을 지닌 여성 시청자들에게 깊은 실망과 분노를 안겼고, 동시에 남성의 경험 역시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섭식장애를 구조적·관계적 고통이 아니라 개인의 집착이나 선택 문제로 축소하는 한편, 남성의 몸을 둘러싼 취약성과 섭식 문제를 근육 집착이나 약물 남용으로만 환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경험을 지우는 동시에, 모노셀로가 지적해 온 것처럼 남성의 섭식 문제와 신체 불안을 이해할 언어 역시 제공하지 못한다.
▲“몸의 문제”로 퉁쳐진 질문들. KBS 시사직격 159회 '피지컬 전쟁, 몸을 향한 유혹'(2023년 4월 7일 방영)은 여성의 섭식장애와 남성의 운동 집착·스테로이드 남용을 병렬적으로 배치하며, ‘몸을 향한 강박’이라는 느슨한 공통분모로 두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방식은 섭식장애의 당사자 경험을 지닌 여성 시청자들에게 깊은 실망과 분노를 안겼고, 동시에 남성의 경험 역시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섭식장애를 구조적·관계적 고통이 아니라 개인의 집착이나 선택 문제로 축소하는 한편, 남성의 몸을 둘러싼 취약성과 섭식 문제를 근육 집착이나 약물 남용으로만 환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경험을 지우는 동시에, 모노셀로가 지적해 온 것처럼 남성의 섭식 문제와 신체 불안을 이해할 언어 역시 제공하지 못한다. KBS

모노셀로의 접근은 섭식장애를 '수입된 진단명'으로 전제하지 않는다. 그의 연구는 섭식장애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립하고 작동하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했다. 즉, 서구에서 개발된 척도와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도 같은 의미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번역·왜곡·탈락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연구는 섭식장애를 개인의 병리로 보기보다, 사회가 고통을 분류하고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분석한다.

서울에서 장기간 필드워크를 진행한 그는 헬스장, 대학 캠퍼스, 친구 모임 등에서 한국 젊은 남성들이 몸과 외모, 음식 조절에 대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관찰했다. 설문과 인터뷰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종종 질문에 답하기를 망설이거나 농담으로 넘겼고,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체중, 음식 통제, 외모 관리와 관련된 문항에서 이런 반응이 두드러졌다.

중요한 점은, 모노셀로가 이런 반응을 '비협조'나 '부인'으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것을 중요한 데이터로 받아들였다. 질문이 전제하는 서구적 '문제 틀'이 자신의 경험과 어긋난다는 감각, 즉 "이 질문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감각이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때 드러나는 침묵과 회피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말할 언어가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EAT-26 척도를 활용해 조사했을 때 약 20%에 달하는 한국 젊은 남성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섭식장애 위험군에 해당했다. 이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모노셀로는 이 수치를 '충격적인 통계'로 소비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문화적으로 충분히 번역되지 않은 설문과 개념으로는 여전히 포착되지 않는 경험들—'측정 불가능한 영역'—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이후, 한국은 무엇을 하지 않았나. 에단 와터스(Ethan Watters)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정신질환이 보편적 실체처럼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특히 서구의 진단 범주가 다른 사회로 무비판적으로 이식되는 위험-을 비판적으로 추적했다.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사례 중 하나는 홍콩의 정신과의사 싱 리(Sing Lee)의 연구였다. 그는 1990년대 초, 홍콩의 거식증 환자 다수가 ‘살찌는 공포’ 없이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통해, 섭식장애가 단일한 임상 실체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거의 계승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일부 의미 있는 연구가 존재했음에도, 섭식장애는 공중보건의 의제로도, 사회적 논쟁의 주제로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섭식장애는 여전히 개인의 의지나 외모 집착의 문제로 축소되고, 문화적·구조적 분석은 실종된 상태다. 와터스가 경고했던 ‘진단의 세계화’에 대해 한국은 비판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이후, 한국은 무엇을 하지 않았나. 에단 와터스(Ethan Watters)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정신질환이 보편적 실체처럼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특히 서구의 진단 범주가 다른 사회로 무비판적으로 이식되는 위험-을 비판적으로 추적했다.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사례 중 하나는 홍콩의 정신과의사 싱 리(Sing Lee)의 연구였다. 그는 1990년대 초, 홍콩의 거식증 환자 다수가 ‘살찌는 공포’ 없이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통해, 섭식장애가 단일한 임상 실체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거의 계승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일부 의미 있는 연구가 존재했음에도, 섭식장애는 공중보건의 의제로도, 사회적 논쟁의 주제로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섭식장애는 여전히 개인의 의지나 외모 집착의 문제로 축소되고, 문화적·구조적 분석은 실종된 상태다. 와터스가 경고했던 ‘진단의 세계화’에 대해 한국은 비판도 Simon & Schuster

이 지점에서 그의 연구는 섭식장애를 '이상적 신체상(body ideal)'의 문제로 환원하는 통념을 흔든다. 흔히 섭식장애는 "마르고 싶어서", "근육질 몸을 갖고 싶어서" 발생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모노셀로가 강조하는 것은, 이상적 신체상은 섭식장애의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고통이 사회적으로 설명 가능해지는 언어에 가깝다는 점이다. 즉, 이상적 신체상은 출발점이 아니라 통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섭식장애적 실천은 단순한 미적 집착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다시 말해 '존재의 정당성(legitimacy of existence)'이 흔들리는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작동한다. 몸은 이 정당성이 시험되는 가장 직접적인 장소가 된다. 어떤 몸은 자연스럽게 공간 속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어떤 몸은 늘 먼저 드러나고 평가되며 설명을 요구받는다.


이런 조건 속에서 몸을 줄이거나 통제하려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과잉 가시화된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 된다. "이상적인 몸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약속은 때로 "아예 몸이 없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논리로까지 밀려간다. 이는 외모 강박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몸을 통해서만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다.

모노셀로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 남성의 섭식 문제를 새로운 '위험군'으로 추가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섭식장애를 이해하는 틀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든다. 섭식장애는 특정한 이상적 몸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몸이 사회적으로 과도하게 드러나거나 충분히 사라질 수 없을 때—그리고 그로 인해 존재 자체가 끊임없이 의심받을 때—촉발될 수 있다.


이 질문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섭식장애를 여성의 문제, 개인의 문제, 심리적 취약성의 문제로만 다루는 한, 많은 고통은 계속해서 이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섭식장애를 다시 묻는다는 것은, 결국 누가 사회적으로 '있어도 되는 존재'로 인정받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다.

※ 이 글은 약 3만 자 분량의 원고를 축약한 버전입니다. 전체 글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문에 포함된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몸의 어떤 측면은 생리학이 아닌, '문화'로만 설명된다
○ 벨리즈, 피지, 동아시아
○ 홍콩과 한국
○ '에틱(etic)'과 '에믹(emic)'
○ 젊은 백인 여성의 섭식장애
○ "문화적 합치성(cultural consonance)"
○ 앨라배마, 케이팝 아이돌, 청년 남성 당사자 경험
○ 문화적 합치성과 남성적 이상
○ 한국 젊은 남성이 공감하는 '너무 마름–적당함–너무 뚱뚱함'의 기준
○ 남성의 이상적 신체상의 다중성과 '문화적 합치의 공간'
○ 몸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존재들: 섭식장애와 '있어도 되는 몸'의 조건

▶ 전체 글 보기: https://rabbitsubmarinecol.weebly.com/home/-6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섭식장애 #남성섭식장애 #섭식장애인식주간 #잠수함토끼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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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구성된 비영리임의단체로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이름은 '(섭식장애) 환자는 결핍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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