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이후, 한국은 무엇을 하지 않았나. 에단 와터스(Ethan Watters)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정신질환이 보편적 실체처럼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특히 서구의 진단 범주가 다른 사회로 무비판적으로 이식되는 위험-을 비판적으로 추적했다. 이 책의 출발점이 된 사례 중 하나는 홍콩의 정신과의사 싱 리(Sing Lee)의 연구였다. 그는 1990년대 초, 홍콩의 거식증 환자 다수가 ‘살찌는 공포’ 없이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통해, 섭식장애가 단일한 임상 실체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의식은 한국에서 거의 계승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일부 의미 있는 연구가 존재했음에도, 섭식장애는 공중보건의 의제로도, 사회적 논쟁의 주제로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 섭식장애는 여전히 개인의 의지나 외모 집착의 문제로 축소되고, 문화적·구조적 분석은 실종된 상태다. 와터스가 경고했던 ‘진단의 세계화’에 대해 한국은 비판도
Simon & Schuster
이 지점에서 그의 연구는 섭식장애를 '이상적 신체상(body ideal)'의 문제로 환원하는 통념을 흔든다. 흔히 섭식장애는 "마르고 싶어서", "근육질 몸을 갖고 싶어서" 발생한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모노셀로가 강조하는 것은, 이상적 신체상은 섭식장애의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고통이 사회적으로 설명 가능해지는 언어에 가깝다는 점이다. 즉, 이상적 신체상은 출발점이 아니라 통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섭식장애적 실천은 단순한 미적 집착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다시 말해 '존재의 정당성(legitimacy of existence)'이 흔들리는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작동한다. 몸은 이 정당성이 시험되는 가장 직접적인 장소가 된다. 어떤 몸은 자연스럽게 공간 속에서 사라질 수 있지만, 어떤 몸은 늘 먼저 드러나고 평가되며 설명을 요구받는다.
이런 조건 속에서 몸을 줄이거나 통제하려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과잉 가시화된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이 된다. "이상적인 몸을 가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약속은 때로 "아예 몸이 없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논리로까지 밀려간다. 이는 외모 강박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몸을 통해서만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다.
모노셀로의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 남성의 섭식 문제를 새로운 '위험군'으로 추가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섭식장애를 이해하는 틀 자체를 다시 보게 만든다. 섭식장애는 특정한 이상적 몸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몸이 사회적으로 과도하게 드러나거나 충분히 사라질 수 없을 때—그리고 그로 인해 존재 자체가 끊임없이 의심받을 때—촉발될 수 있다.
이 질문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섭식장애를 여성의 문제, 개인의 문제, 심리적 취약성의 문제로만 다루는 한, 많은 고통은 계속해서 이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섭식장애를 다시 묻는다는 것은, 결국 누가 사회적으로 '있어도 되는 존재'로 인정받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다.
※ 이 글은 약 3만 자 분량의 원고를 축약한 버전입니다. 전체 글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원문에 포함된 주요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몸의 어떤 측면은 생리학이 아닌, '문화'로만 설명된다
○ 벨리즈, 피지, 동아시아
○ 홍콩과 한국
○ '에틱(etic)'과 '에믹(emic)'
○ 젊은 백인 여성의 섭식장애
○ "문화적 합치성(cultural consonance)"
○ 앨라배마, 케이팝 아이돌, 청년 남성 당사자 경험
○ 문화적 합치성과 남성적 이상
○ 한국 젊은 남성이 공감하는 '너무 마름–적당함–너무 뚱뚱함'의 기준
○ 남성의 이상적 신체상의 다중성과 '문화적 합치의 공간'
○ 몸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존재들: 섭식장애와 '있어도 되는 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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