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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남편의 뒷모습 보며 매일 내가 소망하는 한 가지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남편, 더 많은 시간 함께하길

등록 2026.01.18 19:37수정 2026.01.1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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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되어 가장 편안한 것은 아침 기상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젊어서 직장에 다닐 때는 피곤이 풀리지 않은 몸을 일으켜 출근 시간에 쫓겨 살아야 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 직장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아침잠을 설쳐야 했다. 그뿐이랴, 딸들이 학교 다닐 때는 더 많이 종종 대며 도시락을 쌌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자녀들도 독립하고 결혼하면서 모두 떠난 빈 둥지 같은 집에 노부부만 남았다. 출근할 일도 없고 시간 맞추어 나가야 할 일도 없는 지금, 아침 시간이 자유롭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자유로워 참 좋다'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 말이 있다. 또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이제 비워내야 하는 시기, 욕심이 있다면 한 가지

 노년인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하듯 마음을 모으는 것.
노년인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하듯 마음을 모으는 것. ninanaction on Unsplash

그러나 내 대답은 한결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고. 젊은 날, 세상 모든 풍파 다 지나고 삶의 여유가 찾아온 지금, 나는 나로 살고 있는 지금이 더없이 편안하다. 돈이 많아야겠다는 욕구도, 자녀들이 성공하면 좋겠다는 욕망도, 내가 무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이젠 비워 내야 하는 시기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을 낸다. 가당치 않은 욕심은 버리는 게 현명하다. 다만 욕심을 부린다면, 지금처럼 내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고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나 건강상의 이유로 불편을 주지 않고 살고 싶다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딸들 가족들이 건강하게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다. 더 많은 걸 가지려면 마음 안에 번뇌와 갈등이 생길 수 있어 힘들다.

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보다, 무엇을 위해 살고 갈 것인가 하는 삶의 목표가 더 중요함을 알고 매일 기도하듯 마음을 모은다. 망망대해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지금까지 선장 역할을 해온 남편은 온 마음으로 배를 저어 목적지인 안전한 곳에 닻을 내렸다. 가정을 잘 이끌어 왔다는 것은 삶을 잘 살아왔다는 의미와 같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남편, 그의 삶의 족적을 알기에 나는 남편을 더 존경한다. 말없이 자기 할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한 사람.

이 순간, 참 편안하다


나이 90이 다 되어가는 남편은 요즈음은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거의 없어 집 안에서 지내면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티브이와 하루를 보낸다. 그것도 정치 이야기만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티브이 소리가 마치 이불인 듯 덥고 오수를 즐기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서재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던 나는 가끔 남편을 점검하려 거실로 나간다.

혹여 소파에 누워 그냥 주무시면 감기라도 들까 싶어 작은 이불을 덮어 드린다. 낮에는 서로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나도 거실 소파에 앉아 남편의 손을 잡아 드리며 티브이를 함께 시청한다. 아무리 같은 공간이지만 곁과 거리가 다르면 마음으로 느끼는 온기가 다를 수 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 나는 최선을 다 한다. 손을 잡고 티브이를 보고 있는 순간이 참 편안하다.


남편과 같이 보는 프로는 테마 여행 뿐이다. 서로의 취향이 달라 다른 프로그램은 같이 안 본다. 나는 낮에 혼자 온통 정치 뉴스만 봤으니 밤에는 내가 좋아하는 프로 좀 보자고 말하면 슬그머니 리모컨을 밀어준다. 다만 내가 보는 프로는 재미없는지 남편은 슬그머니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남편의 취침 시간은 정확히 밤 10시,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취침 시간을 지키신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비틀 걸음으로 안방으로 건너가시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애잔하다. 하얀 머리에 등은 살짝 굽고 걸음걸이도 흔들린다. 나이 89세인 분이 예전과 같은 모습일 수는 없겠지만, 57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나이 들고 점점 노쇠해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시리다.

남편의 취침이 시작되는 오후 10시부터 티브이는 내 차지가 되지만, 마음은 등 굽은 모습으로 안방으로 들어간 남편 생각으로 가득하다. 원래 자기 주장이 강한 성격의 남편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언제 이별할지도 모르는 나이. 이젠 나도 모든 걸 내려놓고 내 마음에 맞추기보다 남편 의견을 존중하며 부드러운 언어로 남편 마음을 채워 주려 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사랑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의지 할 수 있는 남편,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남편 #티브이 #안방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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