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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배송으로 샀는데... 유통기한 넘긴 두부가 남긴 질문

'탈팡' 고객 유입위해 대형마트 등에서 더 빠른 배송 경쟁에 뛰어든다는 뉴스를 보며

등록 2026.01.20 12:11수정 2026.01.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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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을 탈퇴하는 고객을 겨냥해
유통업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2026. 01. 08 MBC 뉴스)

열흘 전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며 습관처럼 틀어놓은 TV에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직진으로 달려왔다. 이미 쿠팡의 대처나 '탈팡'에 관한 뉴스는 유행이 지난 유머처럼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날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탈팡 고객을 유입하기 위해 기존 이커머스 업체는 물론 대형마트까지 '더 빠른' 배송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였다. 당일 배송은 기본, 거리가 가까우면 한 시간 안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한다는 것이다. 로켓배송을 겨냥한 이 경쟁은 마치 하늘로 주문서를 보내면 번개처럼 곧장 내려꽂히는 속도에 도전하는 듯했다. 화면 속에는 카트를 밀며 주문 상품을 담는 마트 직원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보였다.


MBC뉴스 탈팡이슈에 이은 빨리빨리 배송 뉴스에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MBC뉴스 탈팡이슈에 이은 빨리빨리 배송 뉴스에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MBC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 사회가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하는 데 분명한 역할을 해왔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속도를 만들었고, 위기의 순간마다 빠르게 움직이며 회복해 왔다. 한국 사회를 성장시킨 동력이었지만, 그 속도가 언제부터 일상의 기준이 되었는지는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필요한 물건은 꼭 '빠른 배송'이어야만 하는가. 속도는 언제부터 '필요'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을까.

매달 체류 비용만 지불하고 있는 멤버십들
휴업중인 멤버십 새벽배송과 무료배송을 이유로 가입한 쇼핑몰 멤버십. 생각보다 급한 일은 없었나보다.
▲휴업중인 멤버십 새벽배송과 무료배송을 이유로 가입한 쇼핑몰 멤버십. 생각보다 급한 일은 없었나보다. 정현주

"취사를 시작합니다."

전기밥솥 버튼을 누르고 잠시 얻은 휴식 시간.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하나씩 적어보았다.

쿠팡와우 멤버십 월 7,890원
마켓컬리 멤버십 월 1,900원
네이버 플러스 스토어 멤버십 월 4,900원
유니버스클럽 멤버십 연 30,000원

클릭만 하면 새벽 도착, 무료배송이라는 이유로 가입한 것들이다. 하나하나 앱을 열어 최근 구매일을 확인했다. 네 개의 멤버십 중 두 개는 지난 몇 달간 주문 기록이 없다는 안내만 남아 있었다. 빠른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 준비해 둔 장치들이 정작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매달 체류 비용만 지불하고 있었다.

디톡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내 속도 앞에서, 멤버십 해지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당일 배송에 길들여진 내 속도를 잠시 늦춰보는 연습이었다. 필요한 물건이라도 며칠쯤 기다릴 수 있는 마음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은 습관처럼 휴대폰으로 향한다. 화면에는 한 번만 만져달라고 애원하듯 푸시 알림들이 줄을 서 있다. 이 간절한 눈망울에 마음이 약해져 터치를 하면 쇼핑 창으로 원스톱 도착이다.

얼마 전에도 이 알림에 흔들려 계획에 없던 주방 기구를 샀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도착한 프라이팬은 아직도 포장 상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오늘은 휴대폰 머리부터 발끝까지 준비된 알림을 밀어버린다. 유혹을 한 번에 물리치듯이.


그런데 하필 냉장고에 기본 재료들이 떨어졌다. 집밥을 고수하다 보니 어묵, 콩나물, 무 같은 재료들이 필요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메모해 간 재료들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호떡 하나를 사 먹었다. 꿀맛이다.

확실히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줄었다. 예전에는 필요하지도 않은 옷과 가구, 가전제품을 쇼핑 앱에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곤 했다. 그냥 그렇게 떠돌았다. 천천히 사도 되는 것들에 중심을 두니, 휴대폰 안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시간이 사라졌다.

급하게 사는 삶은 대부분 정말 급해서가 아니라, 급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불안을 배송 속도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북엇국을 끓이다 달걀이 떨어져 아들에게 슈퍼에 다녀오라고 했다. 방에서 뒹굴던 아들은 한참 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배달앱으로 주문하면 2만 원 이상 사야 무료배송이니, 달걀 말고 더 필요한 게 있느냐고. 없으면 과자랑 음료수로 금액을 채우겠다고 한다. 아들 말을 듣고 달걀은 포기 하기로 했다. 달걀이 풀리지 않은 맑은 북엇국도 꽤 괜찮았다.

심부름을 배달앱으로 패스하려든 아들의 첫 심부름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두부 한 모를 사 오라는 심부름에 아이는 깡충깡충 뛰며 집을 나섰다. 베란다에서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었다. 꼬물꼬물하던 아이가 어느새 다 커서 심부름을 하다니 감격스러워서. 아이는 생애 첫 심부름 값으로 다음 날 달디단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다녀오는 경험보다 주문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에게 속도는 편의가 되지만, 아이에게 속도는 경험을 건너뛰는 방식이 된다. 심부름 하나로 집을 나서고, 헤매고, 돌아오는 길은 '배송'으로는 배울 수 없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멤버십 해지 버튼을 누르다

유통기한 지난 두부 새벽배송으로 받아서 결국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는 냉장고 속 두부. 두부한테 미안하다.
▲유통기한 지난 두부 새벽배송으로 받아서 결국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는 냉장고 속 두부. 두부한테 미안하다. 정현주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다.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두부를 언제 샀더라. 2주 전쯤 새벽 배송으로 샀던 두부인 게 생각났다. 그날 아침, 나는 정말 이 두부가 필요했던 걸까.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냄비 뚜껑을 닫으며 휴대폰을 열었다. 하나둘 멤버십 해지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더 빠른 내일을 준비하느라, 정작 오늘을 충분히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느린 선택은 게으름처럼 보이고, 기다림은 준비 부족처럼 취급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빨리 사는 법만을 연습하고 있다.

세상에는 급하게 다가오는 일도 분명히 있지만, 대부분의 일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고 온다. 다들 빠르게, 빠르게 외치며 달리고 있지만, 조금은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겠다. 적어도 무슨 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의 속도를 조금 낮추어 가보기로 한다. 오늘 저녁은 이 속도로도 충분하다.

애증의 쿠팡 그래도 혹시..하고 두었다가 결국 멤버십 해지를 했다. 필요한 물품들은 미리 생각해서 구입하거나 없으면 없는대로 살기로 했다.
▲애증의 쿠팡 그래도 혹시..하고 두었다가 결국 멤버십 해지를 했다. 필요한 물품들은 미리 생각해서 구입하거나 없으면 없는대로 살기로 했다. 정현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멤버십 #해지 #탈퇴 #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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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중파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광고홍보 프로덕션 운영. (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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