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사회 1-2월호 특집 '헌법 업데이트 중'
참여연대
내란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내란 연루자들에 대한 사법적 심판은 사건발생 1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다. 탄핵과 조기대선이라는 정치적 파고가 사회를 휩쓸었지만, 광장의 응원봉이 요구한 변화는 요원하다. 이 와중에 내란의 필연적 원인이 구태의연한 '87년 체제'의 한계에 있었다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8년 전에도 지금의 양상과 비슷한 격동이 있었다. 권력의 사유화에 분노한 '촛불'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실현되었고,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때도 전 정권에 대한 엄단은 흐지부지되었고, 촛불이 요구했던 변화는 요원했으며, 촛불의 요구가 개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87년 체제'로 일컬어지는 헌정질서의 도래는 대문자 K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한국의 출발점이었다. 그 헌정질서가 오늘날에는 민주주의의 지체를 유발하는 구체제의 유물로 취급되고 있다. 개헌론은 두 차례의 탄핵 시기만이 아니라 현행 헌법의 등장 이후 수도 없이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각각의 과정에서 개헌론은 정치권의 전략적 구호로 소비되거나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주권자인 국민은 그 논의구조 안에서 역할을 할 여지가 없었고, 그 결과 개헌은 필요하지만 불가능한 과제로 남아 왔다.
폭력의 헌정사와 개헌의 트라우마
대한민국은 제정헌법부터 현행 9차에 걸친 개정헌법까지 모두 10개의 헌법을 경험했다. 이전의 헌법들은 평균 4년 남짓한 기간을 연명했을 뿐이지만, 현행 헌법은 만 39년간 유지되어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헌헌법은 해방정국에서 주권자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한 제헌헌법조차도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권자의 참여는 거의 배제된 채 만들어졌다. "헌법실천의 주체가 없는 모래밭 위의 신기루"라는 제정헌법에 대한 혹평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이후 1차와 2차 개헌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 5차 개헌은 박정희 군부의 권력장악, 6차·7차 개헌은 박정희의 영구 독재, 제8차 개헌은 전두환 신군부의 집권을 목적으로 감행되었다. 여기에 주권자의 의지는 개입될 여지가 없었고 오히려 주권자는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포장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동원되었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폐기된 채 폭력을 동원한 전시체제의 유지에 헌법이 동원되었다.
반면, 이승만 정권을 종식시키고 탄생한 1960년 헌정질서는 4·19혁명을 통해 발현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주권자의 염원을 담아 출범했다.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주권자가 직접 구성한 헌정체계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항쟁의 주역인 시민, 그리고 7·8·9월 대투쟁의 주체인 노동자가 헌법실천의 주체로 나서 새로운 헌정질서를 요구한 결과물이다. 현행 헌법이 다른 헌법에 비해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
개헌이 권위주의 정권의 생명연장을 위한 기술적 도구로 전락해왔던 지난 헌정사는 주권자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왜곡된 헌정사를 경험한 주권자는 개헌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개헌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헌법실천의 주체로서 주권자가 헌법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나 87년 헌법 이후 계속된 개헌 논란은 주권자의 직접적이고 주체적인 참여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진행되어왔다.
1990년 벽두에 벌어진 노태우 정부의 3당 합당 조건 중 하나는 내각제 개헌이었다. 그러나 헌법개정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특히 현행 헌법개정 당시 대통령 직선제가 가장 큰 의제였던 점 등의 요인으로 인해 내각제 자체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개헌은 유야무야되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시기에 유사한 내용의 개헌론이 제기되었으나 역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2007년 1월 초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원포인트로 하는 개헌을 제안했다. 임기 말의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전격 제안한 이 개헌안은 주권자의 의사 수렴조차 없이 돌발적이고 졸속적이라 비판받으면서 사그라들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역시 정권의 불안정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개헌론을 꺼내들었다. 이 대통령은 2010년 8.15 경축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되던 상황에서 위기의 돌파구를 개헌에서 찾으려던 것이었다. 박 대통령도 2016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을 피력했으나 이때는 이미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탄핵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개헌을 정부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이전의 정부들이 개헌론을 정권 말기 또는 레임덕의 초래 후 위기극복을 위한 퇴로로 이용했던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이 개헌 시도 또한 개헌 저지선을 쥐고 있던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16~2017년 탄핵정국의 촛불을 개헌의 주체로 내세우지도 않았고 촛불의 요구를 개헌안에 명확하게 반영하지도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내란으로 정권이 몰락할 즈음에야 여당이 개헌을 운운했고, 탄핵심판 중 내란 수괴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복귀하여 개헌으로 국가적 위기를 해소하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 이처럼 87년 이후 전개된 주요 개헌논의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헌법실천 주체인 주권자의 참여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기 돌파를 목적으로 이해득실에 몰두한 정치권의 개헌론에는 주권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지난 2025년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1호 의제로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에도 같은 취지의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취임 이후에는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고, 순차적 개헌 추진을 언급했다. 이후 국회와 여당은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1차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정황상, 이 안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개헌의 난관 – 절차적, 정치적, 정서적 문턱들
개헌이 어려운 이유는 우선 절차의 높은 문턱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개헌을 발의하고,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며, 이후 국민투표에서도 유권자 과반수 투표와 그중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 대표적 경성헌법이다. 이처럼 강력한 절차 규정은 제헌헌법 이래 일관된 것이다. 정권의 이해에 따라 개헌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헌정질서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주권자의 총의를 모은 개헌의 실현에는 난도가 매우 높다. 정치세력 간 합의가 상당 수준 이뤄지지 않으면 시도 자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 사회적 대타협이 있어야만 개헌이 가능하다.
정치지형도 개헌을 곤란하게 만든다. 한국의 정당 체계는 단기적 정권 획득 경쟁과 진영 대립에 견고히 구조화되어 있어 개헌에 따른 권력구조 변화와 이해득실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강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식 대통령제 관행과 소수 강성 지지층에 의존하는 정치 엘리트의 행동 방식은 위로부터의 합의를 더 어렵게 만든다. 정치 엘리트 간의 진영 동원과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개헌이 활용되면서 개헌논의와 정권 심판·정치 공방이 뒤섞여 신뢰를 잃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에 더해 대중적 정서의 문제가 있다. 87년 체제는 주권자가 직접 군부독재를 전복하고 직선제를 쟁취했다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민주화의 성과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현행 헌법을 개헌하자는 주장이 권력의 이해에 따른 정치적 타산이 아니냐는 경계심이 상존한다. 특히 전면 개헌의 경우, 한국 사회의 이념·세대·지역 간 갈등을 촉발하면서, 헌법 조항을 둘러싼 해석과 가치관 차이가 그대로 노출됨에 따라 개헌논의가 장기화될 경우 피로감과 회피 심리가 작동한다. 통치구조나 선거제 등 각 진영이 민감하게 대립되는 의제의 경우 합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권자의 개헌논의 참여 의지 자체를 약화시킨다.
내란 이후 시민사회 일각에서 조직적인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이하 시민개헌넷)을 들 수 있다. 시민개헌넷의 개헌방안 및 그 활동을 보면, 존재하는 사회적 의제의 거의 모두를 포괄하는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사회대전환'을 주장하는 일군의 세력은 사실상의 체제전환을 개헌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명문의 규정을 개폐하는 실질적인 개헌을 목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개헌안을 만들고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치는 과정을 통해 낡은 87년 헌법을 폐기하고 사회대전환의 가치가 담긴 개헌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안이 동시에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모든 의제를 다 담은 전면적 개헌은 실질적으로는 제헌에 준하는 사회변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변동은 제헌헌법, 제3차 및 제4차 헌법개정, 그리고 현행 헌법개정 과정에서 드물게 발생했다. 두 차례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2016~2017년 촛불과 2024~2025 응원봉조차 보수정치권의 권력재편과정으로 수렴되고 말았다. 분출하는 사회적 열망이 없이 과연 전면적 개헌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최근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후보인 안토니오 카스트가 좌파인 현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되는 사건이 있었다. 극우세력의 집권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2019년 이래 진행되었던 칠레 개헌운동의 한계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의제를 포괄하는 개헌이라는 건 국가 전체가 비상하게 들끓는 시기에서조차 매우 어렵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유권자의 피로도와 무능한 집권세력에 대한 환멸은 오히려 반동의 득세를 조장할 수 있음을 칠레는 보여주었다.
전면개헌과 부분개헌의 긴장관계 극복해야
다른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현재의 한계가 끝없이 성토되며, 변화를 위한 바람이 무성하게 표출되고, 상호 소통과 합의가 재구성되는 시공간을 개헌의 과정이자 개헌 그 자체로 설정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개헌은 지난한 연속으로 무한반복의 순환고리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순차적인 개헌도 고려할 수 있다. 예컨대 국민발안제 및 국민투표제를 골자로 하는 직접민주제 원포인트 개헌이 그것이다. 또는 개헌이 어려운 고도로 정치적인 규정과 보다 쉽게 의회의 가중다수결(加重多數決)을 통해 개헌할 수 있는 절차적 내지 기능적 규정을 분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 개헌은 기득권 간의 야합을 조장하는 편법이 될 수 있다. 더 나가 전면적 개헌을 봉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전면개헌과 부분개헌은 이렇게 모순적 관계로 대당(對當)하기도 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개헌이 어렵다. 그러나 이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남는 건 둘 중 하나다. 혁명이거나 혹은 반동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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