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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1.23 15:20수정 2026.01.23 15:20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음 주 한파라는데... 블루베리 나무 얼까 봐 걱정이네."
시골에 밭을 사자마자 나는 줄곧 "블루베리 블루베리" 노래를 불러댔다. 농막이 완성된 후 남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블루베리 묘목을 산 것이다.
유튜브로 블루베리에 관한 정보들을 열심히 뒤적이더니 어느 날 블루베리 묘목 8그루, 전용 화분, 전용 부엽토인 피터 모스가 배달되었다. 남편은 나무에 돈을 들여보기는 처음이라며 거금 40만 원이나 썼다고 큰 소리를 쳤다. 사자고 조른 사람은 나니까 남편으로선 거금을 쓴 것이 맞다.
적당량의 부엽토를 전용 화분에 옮겨 닮고 작은 블루베리 묘목을 나누어 심은 후, 남편은 정말이지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밭고랑으로 향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먼저 블루베리 표정부터 살폈다. 부엽토의 수분 상태를 체크하고 호스를 연결하여 물주는 일에 부지런을 떨었다.
주말에 일이 생겨 시골에 못가게 되기라도 하면, "블루베리는 물을 잘 줘야 한다던데" 하며 걱정했다. 어떤 때는 평일인데도 블루베리가 걱정되어 퇴근 후 잠시 시골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덕분에 지금껏 블루베리는 잘 자랐다.
한파 대비 블루베리 하우스
겨울이 되면서 남편은 종종 혼잣말처럼 걱정을 내뱉곤 했다.
"블루베리... 날씨가 추워지면 보온을 해줘야 한다던데... 남쪽 지방은 괜찮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줘야 하는 거야?"
"바람만 막아주면 되는 것 같은데..."
농사가 처음인 남편은 도움이 되지 않는 아내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많은 듯했다. 직장일에, 가족 여행에 시간은 흘러갔고 다행히 블루베리는 그럭저럭 얼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문제는 이번주부터 한파가 계속된다는 일기 예보를 본 후다. 남편은 행동을 개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밭에 깔아둔 제초매트, 걷어내야 한다네."
"왜? 밭이 숨을 쉬어야 해서 그런가?"
"그게 말이야, 벌레들이 매트 안에서 월동한다네."
남편은 블루베리 보온과 제초매트 제거 작업을 해야겠다며 지난 주말 혼자서 시골에 갔다(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잡초를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우리는 빈 밭고랑에 검정색 제초매트를 깔아 두었었다). 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동행하지 못했다. 제초매트 제거할 때 흙먼지가 날릴 수 있으니 마스크 단단히 하고 쉬엄쉬엄 하라며 함께 가지 못한 미안함을 전했다.

▲블루베리하우스 이번주에 한파가 몰아친다기에 남편은 지난 주말 서둘러 블루베리를 위해 바람막이를 손수 만들었다.
이정미
지난 일요일 밤, 저녁을 먹은 후 소파에 앉았다. 남편이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응, 이거, 블루베리 이렇게 했는데..."
남편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나는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고춧대로 사용했던 막대로 기둥을 만들고, 제초매트로 사용했던 검정 매트를 두르고, 검정 그물로 지붕을 만들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멩이를 총총 놓아 고정시켜 두었다.
"하하하, 어머나, 너무 잘 만들었네. 귀여워."
나는 웃으며 칭찬을 쏟아부었다. 남편으로 말하자면 '똥손'이다. 가끔 나는 손이 매우 서툰 남편을 '똥손'이라고 놀리곤 했다. 결혼 초창기에는 벽에 못질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었다. 얌전한 센님같은 남편은 영락없이 오롯한 문과 남자였다. 그런 남편이 은퇴 후에 농사일을 하고 싶다니, 어머님도 두 손 들고 말리셨다.
그런데 농사일을 시작한 후로 나는 가끔 남편이 그렇게 기특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지난 늦가을 양파 모종을 심을 때였다. 양파는 11월 초입에 모종을 심으면 긴 겨울을 나고 이듬해 6월 초에 수확을 해야한다. 양파 농사의 관건은 겨울나기라 보면 된다. 보온을 위해 양파를 심을 밭고랑에 검정 비닐을 씌우는 것은 간단했는데, 모종을 심을 구멍을 뚫는 일이 문제였다. 비닐에 구멍을 뚫는 기계가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작동하지 않았다.
"비닐 구멍을 어떻게 뚫을지 고민이네."
"가위로 일일이 동그랗게 잘라가며 구멍을 내야 하나?"
잠들기 전에 둘이서 이런 저런 궁리를 나누다가 나는 잠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남편이 양파 심을 밭두렁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 살펴보니 한 손에는 끝이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나무 막대, 또 한 손에는 가스불을 붙이는 점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무 막대에 불을 붙여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검정 비닐을 녹여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우와, 당신 머리 좋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어? 기특하다!"
27년 함께 살면서 남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사람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남편은 심한 겨울 바람에 비닐이 벗겨지기라도 하면 양파 모종을 살살 다루며 제 구멍을 찾아주고 얼지 않게 잘 덮어준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부작 사부작, 꼼지락 꼼지락 농사일이 남편에게 딱 맞구나!' 생각하고, 꾸준하게 함께 할 수 있기를 다짐하게 된다.

▲제초매트걷어내기 밭에 난 잡초를 수월하게 관리하기 위해 빈 밭두렁에 씌워두었던 제초매트를 남편이 깔끔하게 걷어내었다. 양파 모종이 겨울을 잘 나고 있다.
이정미
문과 남자지
아는 선배 언니 차를 타고 행사에 참석하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이가 드니 남편들이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말이 오갔다. 작년에 은퇴를 한 언니의 남편도 애교를 떨곤 한다며 "나이 드니 제일로 편한 사람이 남편이다"고 했다.
나는 지난 일요일 남편이 블루베리 하우스를 만들었는데 엄청 귀엽더라며 언니 말에 공감했다. 행사 시작 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1층 카페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블루베리 하우스 사진 보여줘 봐봐."
언니는 사진을 보더니 대뜸 웃으며 말했다.
"문과지?"
"밑에 돌을 총총 놓은 것 하며 이과 남자가 만든 것 같지 않아서... 하하."
이과 남자와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른다. 그들이 물건을 어떻게 다루고 만드는지. 이런데서도 차이가 있다니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남편이 만든 '한파 대비 블루베리 하우스'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문과 남편이 만든 '한파 대비 블루베리 하우스'가 내 마음에는 딱 든다. 추운 날 혼자서 이 궁리 저 궁리했을 남편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거다. 8그루 옹기종이 모아둔 블루베리 나무가 한낮에는 햇볕도 받고 찬 바람은 적당하게 피하며 이번 한파를 잘 이겨낼 것 같다.
농사도 자기 스타일로 지으면 된다. 서툴면 서툰대로 재미있게, 사부작 사부작, 욕심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배우며 농사의 기쁨을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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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남자가 만든 것 같지 않은, 한파 대비 블루베리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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