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주)CPN문화재방송국
이병기(李秉岐, 1891~1968)는 국문학자·시조시인으로 호는 가람이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한성사범을 졸업하고 휘문고보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 교수와 전북대학 문리과 학장을 지냈다.
시조문학의 부흥을 위해 <가람시조집>을 간행하는 등 애쓰고, <역대 시조선>, <한중록>, <어우야담> 등을 간행하고 <국문학 전사>, <국문학 개론> 등을 저술하였다. 소개하는 작품은 <매화옥>이다.
화초를 기르는 일도 적이 괴롭지 않음은 아니되 그 괴로움을 잊어야 한다. 괴로운 그곳이 고리어 함직하다. 손수 심고 옮기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복도 돋우고 하는 것이 실로 관심이 깊고 애정이 붙고 기쁨이 크게 된다.
분벽사창(粉壁紗窓)에 문방제구(文房諸具)와 서화골동(書畵骨董) 등을 비치하는 건 황금만 있으면 될 수 있으되 이건 황금만으로도 될 수 없다. 상노(床奴)나 원정(園丁)을 맡겨둔다면 한 권세요 거오는 될지언정 화초를 기르는 그 진의와 묘경(妙境)은 도저히 이르러보지 못하고 말 것이다.
나는 좁은 방에다 난 매화 수선 서향(瑞香) 수십 분(盆)을 들여놓고 해마다 한겨울을 함께 난다. 어떤 친구는 와 보고 "이건 한 식물원이군" 하고 동네 부인들이 모이고 보면 "사내 양반이란 한 가지 오입은 다 있다. 이 집 양반은 화초 오입을 하시는군" 하고 우리 집을 화초집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과연 나는 화초를 좋아하고 화초로나 더불어 일생을 소견(消遣)하려는 바 날마다 화초를 보고 거두는 것이 나의 한 일과다. 천복이다. 훌륭한 온실을 따로 지어놓고 거두는 것보다 이 모양으로 협착한 냉들에서 살을 마주 대고 추위를 겪는 것이 더욱 따뜻하고 정다워진다.
벽 한편 위에 걸린 '매화옥(梅花屋)'이라는 현판은 나의 친구 한 분이 어디서 추사(秋史)의 진적(眞積)을 얻어 모각하여 준 것이다. 추사 글씨란 워낙 범상치 않은데 전(篆)도 예(隸)도 아닌 이 매화옥자(字)는 더구나 이상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무슨 물형(物形)도 같고 된 듯 만 듯한 그것이 그 밑에 흐트러져 놓인 필연(筆硯) 책자 화초분들과는 꼭 조화가 된다.
조화 아닌 조화와 정제 아닌 정제와의 신운(神韻)과 향기가 서로 교유되는 그 속에 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누웠다 하며 때로 법희(法喜)와 미소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