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는 1925년 11월 3일 현계옥과 현정건이 영선못에서 밤마다 만났다고 보도했다.
국사편판위원회
"(두 사람은)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그(현정건)의 집에서 십 리나 되는 영찬못(영선못)이란 연못가에서 밤마다 밤마다 시간을 정하여 두고 보고싶은 사람을 찾아 애타는 마음을 녹였다 하니 그들의 한번 포옹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최계복의 사진과 촬영 내력을 영선못터 안내 빗돌에 새겨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진건과 현계옥의 애잔한 연애 이야기도 빼늫을 수 없다. 못의 이용 가치, 그리고 최계복, 현정건, 현계옥이 모두 등장하는 비문을 직접 한번 작성해 본다.
"이곳 영선시장과 주택가 일대 2만여 평은 영선못이 있던 자리이다. 영선못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이래 농업 용수로 쓰였고, 가뭄과 홍수 조절 기능도 했다. 또 시내에서 가깝고 물이 많은데다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제1세대 사진작가 최계복의 첫 작품 '영선못의 봄'이 이곳에서 탄생했고, 저명한 독립운동가 현정건('운수 좋은 날' 소설가 현진건의 형)과 최초 여성 의열단원 현계옥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이전 연애 장소로도 애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시 확장 과정에서 1970년 매립되었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대구교육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영선시장, 아니 '영선못 터'를 찾는 분들을 위해 영선못의 탄생과 멸실, 그리고 최계복, 현정건, 현계옥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다. 사람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자리는 어디든 역사가 서려 있다. 영선못 자체는 없어졌지만 영선못의 역사는 오늘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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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부터 자영업자로 살아 왔고, 이제 은퇴를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꿈꾸었던 여행을 다니고, 문화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삶의 여백을 가꾸어볼까 합니다. 가능하면 책도 한 권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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