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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의 '나의 좌우명'

[붓의 향연 64]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 독재 종식과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도입에 기여했다.

등록 2026.01.21 15:42수정 2026.01.2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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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1월 2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송건호 한겨레신문 발행인이 한겨레 신문 창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88년 1월 2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송건호 한겨레신문 발행인이 한겨레 신문 창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건호(宋建鎬, 1926~2001)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호는 청암(靑巖), 한남상업학교를 거쳐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나왔다.

언론계에 입문하여 대한통신사를 시작으로 한국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이 되고, 언협 기관지 <말>을 창간하였다. 1986년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호헌철폐 및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군부 독재 종식과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도입에 기여했다.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하여 1987년 12월 초대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고 1993년 퇴임했다.

저서에 <민족지성의 탐구>, <단절시대의 가교>, <한국 현대인물사론>, <의열단> 등 전집 20권이 있다.

소개하는 글은 '나의 좌우명'이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좌우명'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는지 모르나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것이 없이 사는 데에 특징이 있는 것도 같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기분 움직이는 대로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곳에 현대인의 철학이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나이 40이 넘고, 자식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내 자신의 인생관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문필가란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형편없는 존재다. 그러나 얄궂게도 이름 석 자만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직업치고는 고약한 직업이 이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이름 석 자가 바로 내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먼 훗날 내 자식들이 성장한 뒤에도 아무개 자식이라고 할 때, 그들이 떳떳할 수 있는 '재산' 이름 - 이름 석자 - 을 남겨놓자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30년, 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라는 생각과, 또 그러한 먼 훗날에도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사람 말대로, 크게는 이 민족을 위해서 작게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야 있겠느냐 라는 점을 생각해본다. - <소크라테스의 행복>, 동광출판사, 1979년, 168~169쪽.

덧붙이는 글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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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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