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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1.22 16:37수정 2026.01.22 16:37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본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살다 보니, 하루의 중심은 늘 부엌이다. 아침에 밥을 안치고, 저녁에 밥솥 뚜껑을 열 때마다 요즘은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다.
"밥이 또 없네."
뒤돌아서면 배고파지는 한참 먹을 나이의 아이들에 워낙 밥을 좋아하는 밥돌이 남편까지 있어 우리집은 매일 밥을 한 솥씩 해도 저녁 때 보면 밥솥이 텅텅 비어 있다. 반찬이 조금 부실해도 밥만 넉넉하면 하루는 굴러간다.

▲우리 아들 밥그릇 밥돌이 아들은 고봉밥을 두그릇씩 먹는다
본인
계란프라이 하나면 간장에 참기름 넣어 슥슥 비벼 두 공기는 거뜬하다. 그런데 그 '밥'이 이렇게 부담스러운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선거 때 코이즈미가 말했었다.
"쌀값을 안정시키겠다."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트에서 5kg 쌀 가격표를 볼 때마다 숨을 한번 고르고 카트를 밀어야 하는 사람에게 '안정'이라는 말은 희망처럼 들렸으니까. 그러나 그 희망은 얼마 안 가 코이즈미의 낙선과 함께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쌀 재판매 규제(임의 계약으로 방출한 저렴한 정부 비축 쌀 등이 부당하게 비싸게 재판매 되는것을 막기위해 시행된 규제)를 엄격히 하여 쌀이 비싸게 판매되는 일을 막으려고 했던 전 정권의 대책은 이번달 21일 현 정부에 의해 시행이 중지 되었다(출처 リスク対策.com).
정부는 "비축미를 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쌀은 바로 우리 같은 소비자에게 오지 않았다. 경매로 풀린 쌀은 농협이나 큰 도매상으로 갔고, 거기서 다시 유통 단계를 거치며 가격은 내려오지 않았다. 쌀이 시장에 나왔다는 뉴스는 있었지만, 마트 진열대 앞에 서 있는 내 손은 여전히 떨렸다. "풀었다"와 "싸졌다"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
쌀이 부족한 이유는 정부 말보다 단순했다. 작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쌀이 제대로 여물지 않았고, 수확량도 줄었다고 한다. 거기에 관광객은 늘었다. 식당은 쌀이 더 필요해졌고,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은 줄어드니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했다. 이런 상황이니 정부가 조금 쌀을 푼다고 해서 가격이 뚝 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밥이 메인인 식당들도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아는 지인은 한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밥집에서 쌀값 올랐다고 밥을 적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끊길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푸짐한 인심으로 내주던 반찬을 줄이는 것이었다.

▲요즘 일본의 쌀값 5키로 2500엔(2만3천원 정도)정도 였던 쌀값이 5키로 4000엔(3만 7000원 정도)이 넘는다.
본인
쌀값을 내리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말하기 불편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다. 쌀값을 확 내리면 농가가 힘들어진다. 농협도, 농촌도 타격을 받는다. 정치인에게 농촌은 표다. 그래서 "내리겠다"고는 말해도 "확실하게 내리는 정책"은 쉽게 못 낸다.
결국 그 사이에서 아이 셋 키우는 집의 밥상에는 밥 대신 국수나 스파게티가 자주 오르게 되었고
푸짐했던 한국 인심은 얇팍해졌다. 그러나 이건 '약속을 안 지킨 문제'가 아니다. 또한 누가 거짓말을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쌀 정책은 오래된 구조이고, 그 구조 안에서는 쌀값을 단기간에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담은 늘 같은 사람에게 온다. 매일 밥을 짓는 사람, 밥을 좋아하는 아이들 에게 오늘은 국수 먹자고 말하는 사람, 이 마트 저 마트 다니며 100엔이라도 싼 쌀을 찾아다니는 사람, 단골 손님에게 민망한 반찬 그릇을 내미는 사람에게.
오늘도 밥을 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 매일 국수와 빵을 먹일 수는 없으니. 그리고 한 사람 당 한 봉지만 살 수 있는 미국산 쌀을 사봤다. 500엔이나 저렴하니 살짝 품질이 떨어져도 그러면 어떠하리. 정책은 멀고, 식탁은 가깝다. 쌀값 이야기가 숫자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는 걸 요즘 더 또렷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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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와 유학을 거처 일본에 정착한지 24년째인 재외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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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삽니다, 밥솥 뚜껑 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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