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가 공개한 시중은행 직원들간의 담합과정이 담긴 메시지 내용.
공정위
공정위 조사 결과, 4대 시중은행은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 이르는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장기간에 걸쳐 상호 교환했다. 정보 교환은 특정 회의체나 공식 문서가 아니라, 각 은행의 실무 담당자들 간 1대 1 요청과 제공방식으로 이뤄졌다. 필요할 때마다 경쟁 은행 담당자에게 연락해 지역별·부동산 종류별 담보인정비율을 받아보는 식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법 위반 가능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정황이다. 실무자들은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 기록이 남는 수단을 피했고, 직접 만나 인쇄물 형태로 정보를 전달받은 뒤 이를 다시 엑셀 파일에 수작업으로 입력했다. 전달받은 문서는 곧바로 파기하는 방식으로 흔적을 제거했다. 공정위는 이를 두고 "경쟁제한적 정보 교환이라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은밀하게 이뤄진 담합"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정보 교환은 일회성도 아니었다. 담당자가 교체될 때마다 은행별 정보 교환 상대, 방법, 관행을 정리해 인수인계가 이뤄졌고, 그 결과 담보인정비율 정보 교환은 조직적으로 지속됐다. 공정위는 이를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체계적·계속적인 공동행위로 봤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의 '활용 방식'이다. 4대 은행은 경쟁 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을 기준 삼아 자사 비율을 조정하는 내부 기준을 운영했다. 특정 지역이나 부동산 유형에서 자사 비율이 경쟁 은행보다 높으면 "대출 회수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낮췄고, 반대로 지나치게 낮으면 "고객 이탈 우려"를 이유로 올렸다. 결과적으로 각 은행은 경쟁을 통해 차별화하기보다, 서로의 수준에 맞춰 비슷한 담보인정비율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은행들끼리 조용한 정보 담합으로 막대한 이익 올려

▲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 담합행위를 적발하고 과징금 부과와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다.t
공정위
이에 따라 4대 시중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은 장기간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공정위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이들 은행의 평균 담보인정비율은 정보 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비담합 은행보다 7.5%포인트 낮았고, 공장·토지 등 기업대출과 직결되는 비주택 부동산의 경우 그 격차는 8.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시장 점유율 약 60%를 차지하는 4대 은행이 동시에 보수적 기준을 유지하면서, 차주들의 선택지는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경쟁 은행의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담보인정비율을 통한 경쟁 자체를 회피함으로써 영업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반면, 차주들은 더 낮은 담보인정비율을 감내하거나 추가 담보 제공, 고금리 신용대출로 내몰리는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번 제재의 의미는 분명하다. 금융 안정이나 리스크 관리라는 명분 아래 이뤄져 온 은행 간 '조용한 정보 공조'도 경쟁을 제한하면 담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특히 2021년 12월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 이후 경쟁제한적 정보 교환을 명시적 금지 대상으로 본 첫 대형 금융사 제재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금융권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도 나오지만, 공정위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을 피하기 위한 신호로 사용됐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이번 결정은 은행권 전반의 영업 관행과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공유하기
"문서 찢어 흔적 제거"... 4대 시중은행 '조용한 카르텔'에 2720억 과징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