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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독서하기 좋은 때

[붓의 향연 65] 문장가·혁명가·풍류가·작가·서출들의 벗

등록 2026.01.22 16:14수정 2026.01.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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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나무위키

조선왕조에서 복제하고 싶은 인물이라면 허균이다. 문장가·혁명가·풍류가·작가·서출들의 벗...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이루고자 했던 이상주의자이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한정록> 중 '정업'에 실린 '독서하기 좋은 때'이다.

독서에도 때가 있는데, 동우(董遇)가 말한 '삼여(三餘)의 설'이 가장 일리가 있다. 그가 말했다.

"밤은 낮의 나머지다. 비 오는 날은 갠 날의 나머지다.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다. 이 세 가지 나머지에는 사람의 일이 마땅히 조금 뜸하므로 내가 뜻을 모아 학문에 힘을 쏟을 수가 있다."

무슨 말인가? 한밤중에 가만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끓이노라면 온 세상은 적막한데 성근 종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이처럼 해맑은 광경 속에 책과 마주하여 피곤을 잊고, 이부자리를 걷어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으니,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닫고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의 왕래도 끊고 서책만 앞에 가득하다. 흥에 따라 뽑아서 뒤적인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 벼루를 씻는다. 이처럼 그윽하고 적막한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또 한 해도 늦어 잎 다 진 숲에 싸락눈이 살풋 내리거나 흰 눈이 쌓였을 때, 바람은 마른 가지를 흔들고, 찬 새는 들판에서 우짖는다. 방 안에서 난로를 끼고 앉아 차 향기에 술이 익는다. 예전 지은 것을 읊조려 외우노라면 완연히 좋은 벗과 마주한 것만 같다.

이러한 정경이야말로 세 번째 즐거움이다. 내가 일찍이 이 같은 맛을 얻었기에 동우의 설을 부연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하려 한다. (정민, 오직 <독서뿐>. 길영사, 2013)

덧붙이는 글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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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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