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학교·유치원 현장에서 사용되는 관찰 기록지의 전형적 구조를 AI로 재현한 참고 이미지. 시간·행동·조치만 기록하며, 학대 여부나 평가 판단란은 없다.
서정은
독일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이웃이 찾아왔다. 아이가 다니는 킨더가르텐(유치원) 교사가 말하기를, 아이가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하니 언어치료를 알아보는 게 어떻겠느냐 했단다. 이웃은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나는 놀이 장면과 또래 상호작용, 지시를 잘 이해하는지 등을 살폈다. 그리고 아이는 단지 수줍음이 많을 뿐이라는 내용을 담임교사에게 전하라 했다. 이 말을 들은 보육교사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달리했다. 놀이와 활동에서 말은 더 단순하고 쉽게 했고, 친한 아이와 짝지운 활동을 늘렸다.
이 보육교사는 부모를 방임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부모는 이민자 아이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갈등을 빚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동학대 사안은 교권과 아동권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늘 이상하다. 아동권과 교권은 원래 충돌하지 않는다.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서는 교사가 안정적으로 교육할 수 있어야 하고, 교사가 불필요한 처벌과 민원 공포에 놓이지 않으려면 아동권 판단이 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같은 체계 위에 놓인 권리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이 둘이 적대적 관계처럼 보인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동권리를 늘렸지만, 아동이 위험하다고, 보호가 필요하다고 누가 판단하는지, 그 판단은 언제,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제도와 구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교권 보호를 위해 아동복지법에서 교사를 제외해야 하고,
'정서적 아동학대'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를 예외로 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2024년부터 국회에 계류 중이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을 줄이려면, 관련 법과 제도에서 아동권은 오히려 더 보강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아동학대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문장을 법에 담자는 제안이 나온다. 더 단순하게 묻자. 이것으로 과연 교권은 보호되는가.
교사들에게 필요한 건 '시스템'이다
독일의 아동보호 체계에서 교사는 학대를 판별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의 역할은 위험 신호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전문 평가로 연결하는 데 있다. 교사는 '이건 학대다'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대신 '이 생활 조건이 위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가'를 묻는 절차를 연다.
영국의 중등학교 교실에서도 교사는 자신의 교육적 개입을 판단하지만, 그 개입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생활지도와 아동보호 판단은 분리돼 있다. 학생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조치는 즉시 기록되고, 학교의 지정 보호책임자(DSL) 체계로 연결된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즉각적인 교육적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학대 여부 판단은 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개인의 재량이 아니라 법과 행정 지침에 따른다.
기본 틀은 독일 사회법전 제8권(SGB VIII)이다아동의 복지가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 위험 평가와 보호 개입의 책임은 아동 보호 행정(Jugendamt)에 있다.(관련기사 :
"아이돌 무대 서도 되나요?" '정부 허가' 받는 유럽... 한국은 계약서로 끝? https://omn.kr/2goid)
독일 여러 주의 학교 지침에는 "평가는 교사의 임무가 아니다(Bewertung ist nicht Aufgabe der Lehrkraft)"는 원칙이 명시돼 있다. 교사가 학생을 교실 밖의 지정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조치는 가능하지만, 이는 처벌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후 필요한 판단은 학교 회의나 외부 전문기구로 이관된다.
국제 기준에서 정서적 학대는 일회적 훈육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행동 패턴을 뜻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제13호는 상습적 모욕, 지속적 위협, 고립과 배제처럼 아동의 정서 발달에 구조적 손상을 주는 행위가 누적된 경우를 정서적 학대로 본다.
독일에서 "아이의 기분이 상했다"는 진술만으로 정서적 학대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정서적 불쾌감과 정서적 학대는 다른 개념이다. 단순한 언성, 질책, 공개적 지적만으로는 법적으로 학대 성립이 어렵다.
한국의 문제는 아동권리 판단 주체가 구조 안에 없다는 데 있다. 교육청은 사후 대응 중심이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학교 일상과 분리돼 있다. 경찰과 검찰은 사건화 이후에야 개입한다.
아동권은 개인의 도덕과 윤리로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정서 학대의 개념은 모호하고, 생활지도 사안을 흡수할 절차와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을 해야 한다.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아동학대를 허용하는 문장이 필요한가, 아니면 교사가 권리 판단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한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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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출강. 아동인권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등 해외 체류 경험을 아동권과 연결하였다. 아동권리 교육, 연수와 강연, 정책 토론 61348b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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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정서적 아동학대' 예외로? 독일 사례에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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