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l Program 1897년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는 유대 민족의 고향을 시온주의의 목표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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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의도야 어쨌든 민족의 고향은 대외적으로 비정치적인 목표로 선전되었다. 1922년 영국의 처칠 백서는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인구나 언어, 문화가 종속되거나 사라질 만한 일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한 자치 정부 수립을 장려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애초에 유대 국가를 원하지 않았다. 영국의 중동 정책은 이라크 유전 지대를 확보하는 데에 있었고, 팔레스타인은 유사시에 군대를 파견할 통로로 필요했다. 그런데 프랑스도 팔레스타인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위해 민족의 고향을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팔레스타인을 독차지한 것이다.
1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거금을 빌려준 대가로 유대 국가를 약속받았다는 서사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빌려준 사람도, 빌린 사람도, 금액도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전후에 영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밸포어 선언은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정책이었다. 이 역시도 거짓이다. 미국의 참전은 밸포어 선언보다 반년 이상 앞선다.
밸포어 선언이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는 서사는 이 모든 역사적 배경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에서 특정 진영이 만들어낸 '위서'다. 유대 사회 내부에서조차 유대 국가에 대한 반대가 강했던 사실을 감추고, 영국의 약속이 이스라엘 건국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선전해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외교부의 팔레스타인 개황은 밸포어 선언이 "유대인 국가"를 약속했다고 기술한다. 국립외교원 전·현직 인사, 중동 전문가 등 대다수 학자들도 유대인들이 전공을 세워 유대 국가를 약속받았다는 서사를 책과 언론, 강의 등에서 공유하고 있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서사는 수십 년간 반복해서 인용되며 사실처럼 굳어져 중동판 환단고기를 만들어냈다.

▲외교부 팔레스타인 개황(p. 18) 밸포어 선언이 유대인 국가를 약속했다고 잘못 기술한다.
외교부
이 연재물에서는 이러한 비역사적 서사가 제작되고 유통되는 구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무엇이 진실인가를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개선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환단고기는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그릇된 역사적 인식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팔 분쟁을 '피치 못할' 불운한 갈등으로 그려냈고, 그 과정에서 가해자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1919년 미국의 킹-크레인 위원회가 팔레스타인 현지를 조사하고 남긴 기록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선명히 밝힌다.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의 고향은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로 만드는 것과 같지 않다. … (그런데도) 시온주의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토지를) 매입해 팔레스타인의 비유대 주민들을 거의 모조리 쫓아내려 하는 사실이 유대인 대표단과의 회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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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독립연구자.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저술(2023 우수출판콘텐츠, 2024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 선정). 서울국제도서전(2024), 대한적십자사, 월드비전 등에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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